[하이큐/츠키야치] 사랑이었다

연성질/안녕큐 2016. 7. 17. 02:13

BGM ; 사랑이었다 태일

https://youtu.be/KVV5Yvr-0Bs

 

저기, 스가와라 선배.”

 

, 저기, , 졸업 축하드려요.”

 

하필 그 잠깐이었다. 사와무라들의 졸업식이 끝나고, 체육관 앞을 지나가던 중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끝나 다음 노래로 넘어가려던 그 짧은 순간, 츠키시마는 일주일 전부터 만지작거리던 작은 선물상자를 뒤에 숨긴 채 답지 않은 억지웃음을 짓는 야치를 보았다. 그리고는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만 남긴 채 가버린 스가와라를 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그녀와 눈이 마주쳐버렸다랄까. 상자를 쓰다듬던 그녀의 동그란 눈이 커졌다가, 작아졌다. 눈물이 잔뜩 고인 붉은 눈으로 3초정도 츠키시마를 바라보더니 다급하게 상자를 숨겼다.

 

, , 그니까 방금 건 말이야...!”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위태로운 모습으로 애써 슬픔을 눌러 담는데, 츠키시마에게 그건 그거대로 신경 쓰였다. 자초지종을 듣는다거나 하는 일에는 분명히 관심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귀찮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미간을 아주 약간 좁히다 말고는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그제야 야치는 울음을 터뜨렸다. 조용하지만 거대하게. 츠키시마로서는 그 거대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중심에 있는 저 작은 상자, 어째서 주지 못한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여기에 담긴 내 마음까지 속이지는 말자고 생각했어.”

 

눈물과 콧물이 범벅 된 못생긴 얼굴로 웃으며 그렇게 답했다. 그 마음이 뭐 대수라고. 아마도 츠키시마는 속으로 비웃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없는 것이었다. 자신보다 소중한 마음이라니, 평생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은 부쩍이나 가까워졌다. 야치야 원래 사교성이 좋은 편이었다만, 츠키시마의 태도가 사뭇 달랐다. 그는 필요 이상으로 그녀에게 신경을 썼다.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그런 장면을 봐버린 탓이라고 단정 지었다만,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눈에 밟히는 이유라 하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오늘 일은 없었던 일로 해 줬으면 좋겠어란 그녀의 말이 어쩐지 자꾸만 생각 나 그 곁을 서성거리게 만들었다. 츠키시마는 항상 그녀를 바라보고 관찰했다. 이따금씩 보이는 굳은 표정 속에서, 그는, 그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웃지 않는 그녀는 새로웠다. 정확히, 그런 그녀를 보며 느껴지는 이상한 분함에 생소함을 느꼈다. 그 명확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츠키시마는 더욱 그녀에게 다가갔다. 두 번째 목격은 우연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 스가와라 선배!”

 

오래간만이지?”

 

그것보다 사실이냐고요, 키요코씨와의 관계!”

 

, , 그렇게 되어버렸네?”

 

그럼, , 얏짱은……,”

 

그 얘기는 좀 나중에 하자.”

 

몇 달 만에 찾아온 스가와라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 둘은 단연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고 그에 대해서는 야치나 츠키시마도 불만이 없었다. 그래서 야치에 관한 이야기는 뭔데, 날이 선 눈빛이 코우시에게 닿았다. 어쩐지 말을 돌린 스가와라는 그의 눈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갔다. 목적을 잃은 눈빛은 돌고 돌아 노란빛 머리에 머물렀다. 밝게 빛나던 이전과 다르다. 전부터 한 번씩 느꼈던 이질감, 그날이 느껴졌던 그 얼굴. 츠키시마의 본능이 외쳤다. 그녀가 또 다시 울음을 터뜨릴 거야. 가서 달래줘, 네가 필요할 거야. 머뭇거리던 발 앞으로 작은 신발이 위치했다. 어느새 그 노란 머리카락들은 츠키시마의 눈앞에 위치해 있었다.

위로해 주고 싶어. 그 생각 하나로 츠키시마는 팔을 뻗었다. 달콤하게 그녀를 감싸 안았고 놀란 동그란 눈에는 금세 물기가 가득 서렸다. 야치의 작은 손가락이 그의 옷깃을 그러쥐었고 그대로 얼굴을 묻은 채 꽤나 오랫동안 훌쩍였다. 어쩐지 짜증난다거나 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귀찮고 성가시다는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단지 그녀가 빨리 울음을 그치고 웃어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을 당장이라도 그만두길 바랐다. 그래서 츠키시마는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 너무했어, 그치.”

 

……뒤통수라도 한 대 때려주지 그랬어.”

 

내가 무슨 수로.”

 

고개를 든 그녀는 다시 웃는 얼굴이다. 그 빠른 감정 변화를 츠키시마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고 느꼈다. 다만, 조금 전보다는 나아보이는 그녀의 기분이 썩 싫지만은 않았다.

 

츠키시마군은 무지 친절한 거 같아. 매번 이런 일도 해주고. 분명 좋은 남자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 ?”

 

좋은 남자친구라니 웃기지도 않아, 한심한 생각이라며 고개를 돌리던 찰나에 마침 야치는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밝은 미소를 보이던 참이다. 최근, 3학년들이 졸업한 이후로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진실한 웃음. 그것을 고작 10cm 거리에서 지켜보았다. 츠키시마는 왠지 그녀가 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달과 별이라니 꽤나 괜찮지 않나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내 바보 같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내저었지만 그 웃음만큼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야치 히토카는 다시금 자신을 되찾았다. 조금의 거짓도 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이전의 모습 그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츠키시마는 이전보다 훨씬 이상해진 듯싶었다.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본다거나 이유 없이 얼굴을 붉히는 일이 많아졌다. 야마구치나 다른 사람들이 어딘가 아픈 것이 아닐까 걱정되어 물으면 덤덤하게 그런 거 없다며 대충 대답하는 것이 전부였다. 어디까지나 야치가 아니라는 가정 하에. 그녀가 물어오자 그는 눈에 띄게 동요했다. 그리고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전혀 다른 것을 되물었다.

 

넌 이제 괜찮은 가봐?”

 

? 그 사람에 관해서라면 아마도. 행복할 테니까, 이제.”

 

지금 와서 츠키시마는 이런 그녀의 태도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해놓고는 행복해보이니까 괜찮다니, 그게 뭐야. 잔뜩 신경 쓰이게 만들어 놓고는. 그는 자신의 모든 고민과 골칫거리들이 그녀를 향해있다는 사실이 거북했다. 그 미묘한 감정이 자꾸만 그녀를 원한다는 사실이 도저히 알 수 없어서 화가 났다. 츠키시마는 이 복잡한 마음의 정의를 몰랐다. 그것을 표현해낼 방법 역시 몰랐다. 자신을 자꾸만 궁지로 내모는 감정에 단지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바보 같아. 멍청한 짓이야. 그래선 아무것도 되지 않잖아.”

 

그 말은 흐릿한 달빛을 향해 날아갔다.

 

별 다른 일 없이 매일이 지나갔다. 이유 없이 그녀를 몰아세운 이후로 츠키시마는 오히려 곧잘 그 이외의 것들에 집중하여 지냈다. 진즉에 히토카를 밀어내고 잘라냈다면 이렇게 고민하고 힘들어 할 일도 없었을 걸, 괜히 사서 고생했네. 자신의 어딘가 깊이 묻힌 감정을 그는 아마 평생 모르고 살 것 같았다.

무료한 하루는 빠르게 흘렀다. 이제 그 고교시절은 한 줌의 모래 정도. 꽉 쥐어봤자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릴 뿐이다. 그 가운데 묘하게 남은 노란빛깔은 가끔씩 그에게 강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던 도중 히나타의 문자를 받았다. 동창회. 츠키시마는 한참이나 그 글씨를 바라보았다. 선배들이랑 카게야마랑 히토카도 온대. ‘히토카도.’ 한 번 쯤 가는 것도 괜찮겠지, 별로 바쁜 것도 아니고. 재밌게 보냈잖아, 배구 덕에. 괴짜 콤비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궁금하고. 결국 그 핑계들로 덮고 싶었던 것은 그녀의 이름 세 글자란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끝끝내 모든 것들을 부인하며 추억 속으로 발을 들였다.

 

, 츠키시마! 늦었잖아!”

 

저 까칠한 안경은 도대체 왜 불러낸 거야?”

 

까칠한 안경이라니! 성격 나쁜 제왕님 보다는 500배 낫다고!”

 

야마구치. 그만 해.”

 

, , 미안 츠키!”

 

츠키시마는 얌전히 앉았지만 그의 눈동자는 바쁘게 오갔다. 사람들 속에서 찾길 바라는 간절한 무언가. 아마도 그는 밝은 노란 머리카락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눈 속에 가득 찬 그 황홀한 빛을 기억하고자 연신 눈을 깜빡거렸다. 이야깃거리가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래간만에 마주친 그녀를, 본능적으로, 여러 번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야치, 결혼한다고 그랬지?”

 

그래서인지 그 말에 퍽 놀라버렸다. 갈 곳 잃은 동공이 맞은편의 여자아이에게 머물렀고, 무심한 그 눈길에 응당 걸 맞는 눈빛이 되돌아왔다. 그녀가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 츠키시마는 웃었다. 그녀가 알아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야마구치 쯤 되어주지 않으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옅은 웃음이었다만, 그는 필요 이상으로 웃어보였다. 마음이 아픈 정도가 아니다. 얻어맞은 곳을 자꾸만 때려 덤덤해진 통증은 덧없이 두근거렸다. 과거 자신이 끔찍이도 싫어하던 그 거북한 감정이다. 울렁거리는 속을 들키지 않으려고 츠키시마는 애써 태연한 척 숨을 골랐다.

덧없이.’

머릿속이 온통 그녀와 관련된 생각으로 가득 찼다.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는 지는 들리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웃어 보인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오늘 일은 없었던 일로 해 줬으면 좋겠어.’

 

다 알고 있었으면서, 너무했어, 그치.’

 

츠키시마군은 무지 친절한 거 같아. 분명 좋은 남자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그 사람에 관해서라면 아마도. 행복할 테니까, 이제.’

 

그제야 명확해졌다. 그날의 모진 말들은 모두 자신을 향한 말이었다. 그녀가 자꾸만 신경 쓰인 이유, 그 울음을 지나칠 수 없었던 이유, 자꾸만 지켜보고 곁에 있고 싶었던 이유, 지금 느껴지는 이 저릿한 통증의 이유.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졌다. 그럼에도, 모든 사실을 알아버렸음에도, 그녀가 행복하다면 아무래도 괜찮다니. 예상을 한참이나 빗나간 결론이다. 상상한 것 이상의 감정이었다. 츠키시마가 그것을 깨달은 것은 이미 한참이나 봄이 지나버린 계절. 그저 한 때 저보다 소중한 사람이 있었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마도 네가 나의

 

그런대로 잘 됐네, 야치. 축하해.”

 

사랑이었다.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