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쿠로켄] 빈자리

연성질/안녕큐 2016. 2. 26. 00:39

*캐붕과 저퀄주의.

*3학년이 졸업한 이후의 이야기 입니다.

 

‘켄마 빨리 일어나 연습 가야지.’

 

‘5분만..’

 

‘분명 야쿠에게 엄청나게 잔소리 들을 거라고!’

 

 몸에 익은 익숙한 상황이 재생되었다. 80%이상의 확률로,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잔소리는 지금 네가 하고 있어, 쿠로. 베개로 귀를 틀어막았다. 어딘가 이상한 소음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쿠로의 목소리도 아니고, 나의 목소리도 아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곁에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사람의 소리라고 하기 어려운 소리, 알람음 정도였을까. 눈앞의 그가 어딘가에 빨려 들어가 듯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컴컴한 세계에서 눈을 뜨자, 지나치게 높은 명도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늦겠네, 화내겠다.

 

…도대체 누가.

 

[켄마, 이번 합숙 때 볼 수 있는 거지? 그치?]_쇼요.

 

그동안 얼마나 지났더라. 인터하이를 위한 합숙 이야기가 오가는 걸 보니, 쿠로들이 졸업한지도 두 달하고 몇 주는 더 지났나 보네. 명확한 날짜 개념이 사라졌다.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날들이기도 했다. 배구를 하자고 내게 끈질기게 달라붙던 사람이 성인이 되어버렸다. 그는, 어쩐지 성숙하면서도 아이 같아서, 피터팬이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배신이랄까 조금은 허전하고 서운한 기분이다. 멍청한 생각이다. 한심한 감정낭비. 내가 이런 느낌을 받는다고 그가 다시 고등학교에 돌아오는 것은 아니니까.

 

“켄마! 늦다고! 벌써 연습 시작했어!”

 

“어어, 미안.”

 

“쿠로오씨가 없으니까 켄마씨는 매일 지각이네여. 어쩌면 둘은 최강 궁합 파트너였을지도 몰라여!”

 

‘당연한 거 아니야? 우리만큼 잘 어울리는 콤비가 어딨다고! 어떠냐, 부럽지 리에프!’

 

“그런 멍청한 소리 할 시간 있다면 리시브 연습이나 해둬.”

 

 바보 같은 것을 떠올려 버렸다. 어쩐지 귓가에 웅웅거리듯 울리는 소리가 없으니 어색한 것도 같고. 늘 내버려두길 바랐는데, 막상 이렇게 남겨지니 그의 빈자리가 크게만 느껴진다. 중학교 때에는 도대체 어떻게 버텼더라. 그 때는 시끄러운 사람이 졸업했다고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몸 이곳저곳을 훑었다. 불쾌하게 오싹한 기분이 싫어 팔을 비볐다. 쿠로가 있었다면 분명 감기냐고 엄청나게 귀찮게 굴었을 거야. 슬핏 웃음이 흘러나왔다. 호들갑 떨면서 뇌라던가, 척추라던가 하는 오글거리는 말을 내뱉고 병들어선 안 된다고 말했겠지. 야마모토의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지금, 이 현실 속 내 옆에는 쿠로오가 없다.

 

 벌써 골든위크 합숙. 그가 없는 시간은 빠르게도 지나간다. 무료하고 지루한 시간은 더디다고 들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게임을 하는 것도 지겹다. 쿠로가 없는 배구는, 다른 것들에 비해서는 양호한 편이지만, 이전보다 훨씬 귀찮고 성가시다. 그래도 오늘은 쇼요를 만나니까 조금은 기분 좋아질지도.

 

“켄마!”

 

“어어, 쇼요.”

 

‘넌 그 카라스노의 작은 녀석만 유난히 좋아한다고.’

 

 그야 재밌으니까. 쿠로만큼이나 재밌는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이 신기하니까. 그러나 뭔가 잃은 것 같은 빈자리는 여전했다. 쇼요의 긍정에너지도 어쩔 수 없는 게 있구나. 그런 게 쿠로와 관련된 일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이렇게 기분이 우울할 때면 귀신같이 알아서 애플파이 먹으러 가자고 해줬는데, 지금은 내게 그런 말을 해 줄 사람이 없어. 멋대로 결정내린 것은 이렇다. 적어도 1년 동안은 일일이 말해주어야만 다른 사람들이 나의 상태라던가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 테니까 그 일이 귀찮을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쿠로가 졸업한 이후, 그동안 내가 느낀 불편한 감정은 그 때문이다. 내 판단은 거의 정확한 편이라고 했으니까, 이번에도 분명히 맞을 거야. 분명히―,

 

“늦었잖아, 켄마. 쿠로오씨가 기다리다가 목이 빠지는 줄 알았다고.”

 

어라―?

 

“잠 못 잤어? 내가 밤에는 게임 하지 말라고 분명히 얘기했잖아.”

 

…쿠로?

 

“근데, 무슨 생각해, 켄마?”

 

“…조금 더 늦어서 쿠로의 목이 빠졌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

 

“너무하잖아, 오랜만에 만나서!”

 

 응어리진 것이 녹아 사라졌다. 어떤 것으로도 메울 수 없던 깊은 골 사이로 무언가 꽉 들어찼다. 새로운 게임을 산 것도, 쇼요와의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닌데 조금은 두근거리고 찡한 기분이다.

 

“몸 풀게 토스 올려줘! 너무 오랜만이라 나랑 하던 감을 모두 잊은 건 아니지, 켄마?”

 

 손을 떠난 공이 느릿하게 날아갔다. 쿠로가 큰 키로 점프하여 공을 노리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공이 바닥을 강타하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아주 잠시 뛰었는데 숨이 가쁘다. 최근 너무 운동에 소홀히 해서 지친 걸까. 아아, 조금 다르다. 이렇게 주변이 일렁인 적은 없었다. 체력이 다했다고 마치 세상에 혼자 남은 듯 느껴지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그 울렁거림은 한 곳에서 파생되었다. 쿠로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걸어왔다.

 

“나 내년에 꼭 쿠로가 있는 학교에 갈 거야. 그곳에서 함께 배구하고 싶어.”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그는 이내 웃어보였다. 우리가 함께 지내던 시간동안 보았던 것 중에 가장 멋있는 모습으로.

 

“그거 끝내주네!”

 

+)

 

“켄마, 작년 골든위크 합숙 기억나?”

 

“쿠로가 팀 과제하는 거 잊고 미야기현에 놀러왔다가 다음 날 잡혀갔던 거?”

 

“…그런 것만 기억하지 말고. 우리 학교에 오겠다고 그 날 말했었잖아, 실제로도 와버렸고.”

 

“응.”

 

“갑자기 왜 이야기했던 거야, 그거?”

 

“오래간만에 쿠로랑 배구하는 게 너무 즐거워서, 계속 함께 배구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쿠로는 의외로 자기 일에 둔하니까 말하지 않으면 모를 테고.”

 

―그리고 항상 함께이고 싶어서.

 

“쿠, 쿠로?”

 

“크흡…. 감동이잖아.”

 

바보같아.


 그치만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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