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다이스가] 열아홉.

연성질/안녕큐 2016. 2. 29. 00:03

*메아리님의 열아홉(https://youtu.be/rknGGxWfiWM)’ 보고 쓴 3차 연성입니다.

*과거날조가 있습니다. 캐붕과 저퀄에 주의하세요!

 

우리는 종종 사랑해줘라는 말을 사랑해라는 말로 대신하곤 한다.

 

다이치, 그 말 진심이야?”

 

비극은 그렇게 출발한다.

 

 

 인터하이 예선, 타나카와 부딪힌 이후 눈을 뜬 곳은 불편한 침대 위였다. 갑작스럽게 눈으로 들어온 빛이 강해 인상을 찌푸렸다. 어쩐지 주변이 온통 하얬다. 크게 내 이름을 부르는 스가의 목소리가 확실히 의식을 깨워주었다. 병원인가, 쓰러져버렸구나. 그렇다면 경기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닥쳐 들어온 부모님 탓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염치로 이곳에 있는 거니, 우리 아들이 이 꼴이 된 걸 보고도 네가 그 곳에 서 있을 수 있니? 스가를 다그치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골이 울렸다.

 

 “죄송합니다.”

 

 어색하게 웃은 스가와라는 고개 숙여 인사를 뱉은 뒤 문을 향했다. 나중에 올게, 그 말을 끝으로 시야 밖으로 벗어났다. 머리가 약간 지끈거리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가벼운 뇌진탕,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고 상태가 많이 호전된 이후에는 배구를 계속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다소 어지러운 증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금세 나아질 것이라고, 하루 이틀 정도가 지나면 퇴원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다행이야, 아직 할 수 있어, 배구. 봄고 대회 때까지는 반드시 다 나아서 함께 해야지, 마지막 경기까지.

 

그딴 배구 진즉에 때려치우라고 했잖니. 왜 꼭 이런 꼴을 보게 만들어!”

 

할 만큼 한 것 같구나, 이제 학업에 조금 더 힘 써야하지 않겠니.”

 

 속이 울렁거렸다. 먹은 것도 없는 주제에 모두 게워낼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말들을 기다리고 준비하며 매일을 보내왔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기를 바랐다.

 

 어린 시절, 몸이 약한 것을 걱정한 부모님은 내가 배구를 배우도록 하셨다. 취미라고 할 것이 배구밖에 없어서 인지 꾸준히 했던 것이 중학교 때에, 학교 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즐겁다고 생각했다. 시합에 나가는 것은 다칠지도 모르니까 안 된다고 하신 부모님 몰래 경기를 했고, 이겼을 때 느낀 그 황홀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탐탁지 않아하는 부모님을 뒤로 한 채, 카라스노에 들어갔다. 이 역시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이른 아침마다 일어나 연습을 하는 것이 꽤나 행복했다.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학년 봄고 대회가 끝나고 더 이상 내가 아는 카라스노는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부모님은 나와 배구를 끊어냈다.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은 다르니까, 나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에, 놀란 듯 보이던 스가는 매일같이 나를 찾아왔다. 입부한 이후로 늘 함께였고, 같은 마음이란 것을 확인한 이후에는 친구 이상의 어떤 것을 간직한 사이였다. 그런 그가 부탁했기에 단순히 흔들렸던 것일까, 사실 답은 이미 알고 있다.

 

다이치, 배구 계속 하자.’

 

?’

 

함께 하고 싶어, 다이치랑 하는 배구가 좋으니까.’

 

, 무슨 소리야?’

 

당연한 거잖아! 사랑하는 사람이랑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은 건.

다이치는 안그래?’

 

나도 그래. 나도 너랑 함께 하고 싶어.’

 

 사랑하니까. 배구도, 너도.

 

 부모님께 3학년에도 배구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한 것은 내가 아닌 스가와라였지만, 계속해서 코트에 서 있고 싶다고 강하게 느꼈다. 부모님이 반대했던 것은 잠시 뿐, 나와 스가의 완고한 태도에 그들 역시 손을 들었다. 단순한 취미였던 것이 시간이 지나며 사뭇 달라졌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부모님의 기대보다 배구에 애정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지금의 나는 배구가 생각 이상으로 소중하게 되어버려서, 그래서, 어쩌면 이번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믿음이 어긋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만, 이번에도 지켜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봄고까지 함께하기로 했잖아,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게, 그렇게 돼버렸네.”

 

혹시 아직도 몸이 좋지 않으신 겁니까? 예선까지는 아직 꽤나 시간이 남았으니까 연습량을 줄이고 조금씩 회복해가면 괜찮지 않을까요?”

 

, 다이치선배.”

 

기둥이 되어주던 사람이 갑자기 빠지는 건 조금 걱정 되는데, 사와무라, 꼭 그만둬야하는 이유라도 있는 거냐?”

 

그냥 개인적인 사정입니다. 스가가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그리고 몸이 안 좋아서가 아니니까 자책하지 마, 타나카.”

 

 집으로 돌아가기 이전에 스가와라가 찾아왔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내가 뭔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나는 거기까지만 듣고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별 거 아냐, 사소한 일인 걸. 소문 때문이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그의 말에 그런 거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거 들었어? 배구부 얘기.’

 

, 주장 때문에 기권패한 거?’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리는 바람에 완전 난리 났다면서!’

 

그러게, 이번에는 그런대로 성적이 좋아서 전국까지 가버리는 건 아닐까 기대했는데. 글러먹은 거지, 주장 때문에.’

 

너네 뭐야?’

 

가자, 스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너네. 그런 거 아니야, 다이치 탓일 리가 없잖아. 그딴 헛소리 짓거리지 말라고.’

 

 나는 그렇게 사소한 일 때문에 도망쳐버리는 겁쟁이일 뿐인 걸. 이런 식으로 책임회피라니 완전히 주장 자격 실격이지, .

 

 한심한 모습에 실망할 것만 같아서 스가에게도 말 못할 비밀이 생겼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 겉으로는 내 탓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나를 원망하고 있다면 어떨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미안해졌다. 배구부의 모두를 볼 자신이 없었다. 다음 날, 매일처럼 이른 아침에 학교에 도착해서 더 이상 체육관을 향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고는 계단을 올랐다. 복도의 활짝 열린 창문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속삭이듯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나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 같았다.

 

다이치!”

 

, 스가! 너 연습은 안 가고 왜..”

 

이유같은 거 묻지 않을게, 사람마다 괴로운 일이 있을 수 있는 거니까. 그치만, 그치만 다이치 그 말 진심이야? 진심으로 그만두고 싶은 거야? 그런 게 아니라면 나랑 아사히가 어떻게 해서든……!”

 

진심이야. 미안해 스가와라.”

 

한심해, 한심하다고 다이치. 나는 왜 너 같은 사람을 사랑했을까.”

 

 

 한 번씩 눈을 감으면 3년 전 그 상황으로 돌아가곤 했다. 나는 그의 물음에 답하지 못했고 그는 상처 받은, 실망이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손을 뻗으면 사라졌고 그렇지 않으면 돌아서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끝까지 봐야만 했다. 죄책감을 가졌던 그 때 당시의 나를 욕할 처지는 아니다. 여전히 나는 스가와라라던가 다른 배구부원들 모두와의 연락을 끊은 채로 살고 있으니까. 그러나 매일같이 기도한다. 만약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가 다시 한 번만 스가와라의 앞에 설 수 있다면, 다른 대답을 했을 것이라고. 사실은, 진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이렇게 내 눈 앞에 스가와라가 있어만 준다면,

 

시만. 뭐라고? 


다이치!”

 

 , 꿈인가. 나 아직 잠을 자고 있던 중이었나.

 

이유 같은 거 묻지 않을게.”

 

 그래, 역시 그랬구나. 아니라면 내 앞에 다시 스가와라가 서 있을 리가 없잖아.

 

한심해, 한심하다고 다이치. 나는 왜 너 같은 사람을 사랑했을까.’

 

 그렇게 말해버렸는데, 무슨 생각으로 나를 다시 보겠어. 그렇지? 그치, 이건 꿈인 거지? 늘 꾸던 꿈인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실감이 날까.

 

사람마다 괴로운 일이 있을 수 있는 거니까.

그치만, 그치만 다이치 그 말 진심이야? 진심으로 그만두고 싶은 거야?”

 

 열린 창문 틈새로 바람이 불어왔다. 선선한 바람이 스가와라의 향을 코언저리에 싣고 왔다. 꿈에서 향기? 착각인가? 무의식중에 손을 뻗었다. 그 때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옅게 떨리는 그의 손을 쥐었다. 사라지지 않았다. 허상이 아니었다. 매일같이 꾸던 꿈과는 다르다. 눈물이 고여 벌겋게 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스가와라는 내가 마지막으로 본 그 모습이 아니다. 무언가 변하고 있었다.

 

비극은 이미 출발했어. 돌아갈 수 없어,”

 

나는 더 이상 소년이 아니니까.

 

 사랑했어. 아니, 어쩌면 사랑받길 바란 거야. 부모님께, 배구부 녀석들과 배구에게, 그리고 너에게. 감히 사랑해달란 말을 할 수 없어서 나 자신이 사랑한다고 내뱉을 수밖에 없었어. 끝끝내 도착한 곳에서 더 이상 내가 바란 것들이 내게 사랑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려서, 그래서 도망쳤어, 나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고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몰라.

 

 내가 내뱉는 말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서 있었다. 나 역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지금이라면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하지 않았을 때의 결말은 정해져있지만, 저질러버린 후의 결말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롭다는 것. 내가 모르는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두려워 도망쳤지만, 내게 자격이 있다면, 이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나의, 우리의 비극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그 중심에 선 한 사람 뿐이다. 그것을 끝낸 영향이라던가, 사실은 그 비극이 최선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관한 두려움을 스스로의 힘으로 뿌리쳐내야만 비로소 끝이 난다. 과거, 도망쳤던 자신을 저주하던 수많은 날들을 뒤로 다시 한 번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이유는 모르겠다만, 나의 변화가 모두의 비극을 거두어낼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열아홉의 순정을 꿈꿀 수 없다. 내게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 따위는 없고 우연히 소설 같은 일을 겪고 있는 것 뿐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도망쳐서 얻은 괴로움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사실 이 모든 것이 꿈이었다고 한들, 나는 속였던 진심을 말할 것이다. 그 당시를 바라볼 수는 없다. 셀 수 없이 많은 시간들이 지나갔고, 나는 그저 그 추억 중 한 부분에 서 있을 뿐이다. 그 결과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지, 내가 다시 한 번 과거에서 살아가는지에 대한 것은 미지수이다. 과거를 바꾼 대가를 혹독하게 치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정말로 내가 그 후회를 되돌릴 수 있다면, 지금의 선택으로 무언가 달라질 수 있다면, 다시 한 번 사랑해,’라는 말을 할 용기가 있다면,

 

 열아홉,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도……,

 

나도 아직 하고 싶어!”









너무 멋진 주제를 망쳐버린 것 같아서 죄책감이 쩔어줍니다ㅠㅠ 

짠내나고 찌질한 다이치가 보고싶었을 뿐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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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후타카마] 어두워 길을 잃고는 했다.

연성질/안녕큐 2016. 2. 28. 00:12

*타임버스AU입니다.

*후타카마이지만 카마사키 안 나옴 주의, 캐붕주의

 

재미있었어, 함께 배구 한 거. 골칫덩어리들이긴 했지만.’

 

우승 한 번 못한 배구가 뭐가 즐겁다고. 혹시 고난과 역경을 즐기는 타입?’

 

후타쿠치 이 자식!’

 

참아, 카마사키! 졸업이잖아, 성인이라고!’

 

그래도, 선배랑은 아쉽네요, 꽤나.’

 

, 미쳤냐? 뭐 잘못 먹었어?’

 

당연한 거잖아요, 파트너이기도 하고, 한결같게 반응해주는 선배가 없어지는 건데. 저로서는 손실이 크다구요.’

 

말리지마, 내가 졸업하기 전에 반드시 저 자식을!’

 

, 아오네!’

 

 서로가 파트너란 사실을 알아차리고 나서 50에 멈춰선 숫자는 그 이상 오르지도, 줄어들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런대로사랑했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학교, 도쿄였던가. 멀리도 갔네, 나 보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 그럼 좀 더 귀찮게 굴지도 모르는데, 내가. 조금은 걱정되었다. 멀어지는 것이 육체의 거리뿐이 아니게 될까봐. 두려워한 쪽이 숫자가 줄어들어 맞이하게 될 결말인지, 빛을 잃어버린 이후의 세상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카마사키 선배가 있는 곳만이 아침이었다.

 

 이미 짝을 찾은 선배들, 혹은 여전히 1에서 머무르는 아오네를 보면서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는 꽤나 공포였다. 숫자가 50을 넘어서고 조금씩, 조금씩 작아지는 것을 보면서 조바심도 꽤나 났다. 이런 남탕에서만 뒹굴다가 죽어버리는 건 정말 억울할 테니. 그러나 역시, 근처에 있을 파트너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오늘도 줄어들었을까, 역시 배구부원이 맞는 걸까. 무의식중에 손목을 확인하곤 했다. 이따금씩 카마사키 선배와 눈이 마주쳤지만, 그저 연습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당연히 모니와 선배의 파트너라고 생각했던 그가, 조용히 내게 찾아와 길 잃은 동공으로 물었다. 혹시 줄고 있? 고개를 끄덕였을 때 선배의 그 난감한 표정은 여전히 잊을 수가 없다. 파트너가 나라서 실망했을까. 하긴, 늘 제멋대로에 사고만치는 건방진 후배와 그에 놀아나는 성격 나쁜 3학년이 파트너라니. 우스운 일이잖아. 그래도, 무엇 하나 제대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파트너가 그 사람이라서 분명 다행이었다. 이따금씩 이유 없는 시비와 어리광도 받아주던, 어쨌거나 내게는 길을 밝혀주는 빛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러나 신은 저보다 밝은 것을 질투하고, 앗아가려 한다. 나와 그 사이에 있어서, 카마사키 선배는 지나치게 눈부신 광원이었기에 쉽게 사라져야만 했다.

 

‘49.’

 

 숫자가 줄어들어 놀랐던 것은 잠시 뿐이었다. 그것은 그저 그 다음 소식에 대한 충격을 조금이라도 흡수해주기 위한 에어백 같은 것이었으니까. 갑작스런 암전에 적응할 암순응 정도로 생각되었다.

 

‘48.’

 

 사고라던가, 의미 불명의 죽음은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이유 없이 자살을 했다고. 같잖은 개소리에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분명 누군가 해친 거겠지, 자살이라니 그 쪽보다는 욱하는 성질에 누군가의 미움을 샀다는 편이 훨씬 설득력 있다고. 그 젠장 맞은 성격, 어쩐지 불안하더라. 반드시 찾아낼 거야, 남은 시간 동안에.

 

‘40.’

 

 가망이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들 그만두라고 나를 말렸다. 이렇게까지 해서 그 결과를 뒤집고자 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유가 있을 리가 없잖아, 죽은 사람이 당신 파트너라도 이성적이게 넘어갈 수 있겠어? 단순한 문제가 아니잖아, 나까지 죽어버리면 그 사람은 정말 그저 세상에 비관적이었던 부적응 자가 되어버리는 거잖아. 씨발, 그렇게 내버려둘 수 있겠냐고. 모니와 선배가 거들었다. 그래서 카마사키 선배를 죽인 사람을 찾아내면 어떻게 할 건데? 난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지.

 

‘20.’

 

 메일이 왔다. 그것도 죽은 선배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읽지 않았다. 범인을 찾아내는 것도 멈추었다. 더 이상 범인을 찾아내어도 카마사키 선배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남은 시간들마저 그 사람을 위해서 쓰기에는 내가 조금 가엾다고 느껴서 일까. 모니와 선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20일간은 카마사키의 파트너가 아닌 후타쿠치로 살아, 범인이라면 내가 찾아볼게. 당신의 파트너가 내가 아닌 그였다면, 더 행복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5.’

 

 카마사키 선배의 소식을 처음 들었던 날을 떠올렸다.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들어있는 기분이었다. 코가네는 항상 이런 상태겠지. 어땠더라, 조금은 슬펐을까. 사실, 나는 그저 숫자가 줄어든다는 두려움만 있었던 거 아닐까. 그렇다면 애써서 그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려 했던 이유는 내가 선배 때문에 죽어야만 한다는 원망 때문? 역시 그랬던 것일까.

 

‘1.’

 

 평온하다. 어제와 같은 날이 반복되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배구를 했고,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 아침 아무렇지 않게 눈을 뜰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확인하지 않은 메일이 거슬렸지만, 그것을 볼만한 용기는 없었다. 죽은 사람에게서 온 메일이라니, 누가 봐도 죽기 직전 심경을 담아놓은 유언장 따위일 것이 분명하잖아. 그가 죽은 49일째 되는 날, 하루 뒤에는 같은 운명을 걷게 될 그 날, 갑작스레 반짝인 빛이 자신을 따르라고 말해왔다. 죽기 직전의 변심 정도라고 해둘까, 원래 사람은 쉽게 마음이 변하곤 하잖아. 어떤 대단한 말이 적혀있나 한 번 보자고. 반짝이며 메일을 확인하라는 그 표시를 향했다. 잠시 망설이다 아직 읽지 않은 것을 클릭했다. 세상은 삽시간에 밝아졌다. 수 많은 날들, 그 어둠 속에서 헤매이던 내가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열두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더 이상 이곳에는 머무를 수 없겠지. 다음 생이란 게 있다면, 카마사키 선배 따위 만나고 싶지 않아. 이건 진심이라고. 두 번 다시 당신 같은 사람은 만나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알겠죠. 이렇게 제멋대로인 사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단 뜻입니다. 

 




제목 こめんねしてる(미안해사랑해.)


사실 인터하이가 끝난 후부터 조금 아팠달까, 겁쟁이라 좀 더 일찍 말해주지 못했어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더라모니와들에게는 모른 척 해달라고 부탁했어나를 미워해줘용서할 수 없을 만큼 원망해줘그래도죽기 전 그 날만큼은많이 억울하겠지만 이해해줘난 네가 많이 보고 싶을 거란 말이지약골자식이라 미안하다빌어먹을 후배 녀석.




 죽어서도 젠장 맞은 사람이네요, 빌어먹을 선배님.”


 비로소 길을 찾았다. 그 동안 뒤는 돌아볼 생각조차 안 했으니 몰랐던 것이었다. 늘 그 곳에 있었는데, 당신이 있는 곳은 이렇게 빛나고 있었는데.










도대체 뭘 쓰려고 했던 거냐 나녀석아!!!!!ㅠㅠㅠ

파트너를 잃어버리고 방황한느 후타쿠치 (19세)가 보고싶었는데

후... 제 뇌는 자결합니다. 신속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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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쿠로켄] 빈자리

연성질/안녕큐 2016. 2. 26. 00:39

*캐붕과 저퀄주의.

*3학년이 졸업한 이후의 이야기 입니다.

 

‘켄마 빨리 일어나 연습 가야지.’

 

‘5분만..’

 

‘분명 야쿠에게 엄청나게 잔소리 들을 거라고!’

 

 몸에 익은 익숙한 상황이 재생되었다. 80%이상의 확률로,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잔소리는 지금 네가 하고 있어, 쿠로. 베개로 귀를 틀어막았다. 어딘가 이상한 소음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쿠로의 목소리도 아니고, 나의 목소리도 아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곁에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사람의 소리라고 하기 어려운 소리, 알람음 정도였을까. 눈앞의 그가 어딘가에 빨려 들어가 듯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컴컴한 세계에서 눈을 뜨자, 지나치게 높은 명도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늦겠네, 화내겠다.

 

…도대체 누가.

 

[켄마, 이번 합숙 때 볼 수 있는 거지? 그치?]_쇼요.

 

그동안 얼마나 지났더라. 인터하이를 위한 합숙 이야기가 오가는 걸 보니, 쿠로들이 졸업한지도 두 달하고 몇 주는 더 지났나 보네. 명확한 날짜 개념이 사라졌다.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날들이기도 했다. 배구를 하자고 내게 끈질기게 달라붙던 사람이 성인이 되어버렸다. 그는, 어쩐지 성숙하면서도 아이 같아서, 피터팬이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배신이랄까 조금은 허전하고 서운한 기분이다. 멍청한 생각이다. 한심한 감정낭비. 내가 이런 느낌을 받는다고 그가 다시 고등학교에 돌아오는 것은 아니니까.

 

“켄마! 늦다고! 벌써 연습 시작했어!”

 

“어어, 미안.”

 

“쿠로오씨가 없으니까 켄마씨는 매일 지각이네여. 어쩌면 둘은 최강 궁합 파트너였을지도 몰라여!”

 

‘당연한 거 아니야? 우리만큼 잘 어울리는 콤비가 어딨다고! 어떠냐, 부럽지 리에프!’

 

“그런 멍청한 소리 할 시간 있다면 리시브 연습이나 해둬.”

 

 바보 같은 것을 떠올려 버렸다. 어쩐지 귓가에 웅웅거리듯 울리는 소리가 없으니 어색한 것도 같고. 늘 내버려두길 바랐는데, 막상 이렇게 남겨지니 그의 빈자리가 크게만 느껴진다. 중학교 때에는 도대체 어떻게 버텼더라. 그 때는 시끄러운 사람이 졸업했다고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몸 이곳저곳을 훑었다. 불쾌하게 오싹한 기분이 싫어 팔을 비볐다. 쿠로가 있었다면 분명 감기냐고 엄청나게 귀찮게 굴었을 거야. 슬핏 웃음이 흘러나왔다. 호들갑 떨면서 뇌라던가, 척추라던가 하는 오글거리는 말을 내뱉고 병들어선 안 된다고 말했겠지. 야마모토의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지금, 이 현실 속 내 옆에는 쿠로오가 없다.

 

 벌써 골든위크 합숙. 그가 없는 시간은 빠르게도 지나간다. 무료하고 지루한 시간은 더디다고 들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게임을 하는 것도 지겹다. 쿠로가 없는 배구는, 다른 것들에 비해서는 양호한 편이지만, 이전보다 훨씬 귀찮고 성가시다. 그래도 오늘은 쇼요를 만나니까 조금은 기분 좋아질지도.

 

“켄마!”

 

“어어, 쇼요.”

 

‘넌 그 카라스노의 작은 녀석만 유난히 좋아한다고.’

 

 그야 재밌으니까. 쿠로만큼이나 재밌는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이 신기하니까. 그러나 뭔가 잃은 것 같은 빈자리는 여전했다. 쇼요의 긍정에너지도 어쩔 수 없는 게 있구나. 그런 게 쿠로와 관련된 일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이렇게 기분이 우울할 때면 귀신같이 알아서 애플파이 먹으러 가자고 해줬는데, 지금은 내게 그런 말을 해 줄 사람이 없어. 멋대로 결정내린 것은 이렇다. 적어도 1년 동안은 일일이 말해주어야만 다른 사람들이 나의 상태라던가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 테니까 그 일이 귀찮을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쿠로가 졸업한 이후, 그동안 내가 느낀 불편한 감정은 그 때문이다. 내 판단은 거의 정확한 편이라고 했으니까, 이번에도 분명히 맞을 거야. 분명히―,

 

“늦었잖아, 켄마. 쿠로오씨가 기다리다가 목이 빠지는 줄 알았다고.”

 

어라―?

 

“잠 못 잤어? 내가 밤에는 게임 하지 말라고 분명히 얘기했잖아.”

 

…쿠로?

 

“근데, 무슨 생각해, 켄마?”

 

“…조금 더 늦어서 쿠로의 목이 빠졌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

 

“너무하잖아, 오랜만에 만나서!”

 

 응어리진 것이 녹아 사라졌다. 어떤 것으로도 메울 수 없던 깊은 골 사이로 무언가 꽉 들어찼다. 새로운 게임을 산 것도, 쇼요와의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닌데 조금은 두근거리고 찡한 기분이다.

 

“몸 풀게 토스 올려줘! 너무 오랜만이라 나랑 하던 감을 모두 잊은 건 아니지, 켄마?”

 

 손을 떠난 공이 느릿하게 날아갔다. 쿠로가 큰 키로 점프하여 공을 노리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공이 바닥을 강타하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아주 잠시 뛰었는데 숨이 가쁘다. 최근 너무 운동에 소홀히 해서 지친 걸까. 아아, 조금 다르다. 이렇게 주변이 일렁인 적은 없었다. 체력이 다했다고 마치 세상에 혼자 남은 듯 느껴지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그 울렁거림은 한 곳에서 파생되었다. 쿠로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걸어왔다.

 

“나 내년에 꼭 쿠로가 있는 학교에 갈 거야. 그곳에서 함께 배구하고 싶어.”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그는 이내 웃어보였다. 우리가 함께 지내던 시간동안 보았던 것 중에 가장 멋있는 모습으로.

 

“그거 끝내주네!”

 

+)

 

“켄마, 작년 골든위크 합숙 기억나?”

 

“쿠로가 팀 과제하는 거 잊고 미야기현에 놀러왔다가 다음 날 잡혀갔던 거?”

 

“…그런 것만 기억하지 말고. 우리 학교에 오겠다고 그 날 말했었잖아, 실제로도 와버렸고.”

 

“응.”

 

“갑자기 왜 이야기했던 거야, 그거?”

 

“오래간만에 쿠로랑 배구하는 게 너무 즐거워서, 계속 함께 배구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쿠로는 의외로 자기 일에 둔하니까 말하지 않으면 모를 테고.”

 

―그리고 항상 함께이고 싶어서.

 

“쿠, 쿠로?”

 

“크흡…. 감동이잖아.”

 

바보같아.


 그치만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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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츠키히나] 滿月 (만월).

연성질/안녕큐 2016. 2. 21. 20:17

*히나타와 츠키시마가 머무르는 곳은 정신병원입니다.

*캐붕과 자살에주의하세요!



“어라? 너구나, 신참?”


 히나타 쇼요. 츠키시마 케이가 그를 처음 봤을때, 도대체 왜 이런 곳에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맑은 웃음으로 츠키시마를 반기는 히나타의 모습은 햇살과도 같았다. 눈을 감아도 저를 비춰오는 밝은 빛에 케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마도, 그가 간절히도 바랬던 조용한 병원살이는 실패인 것 같았다. 혼자뿐인 병실에서 따분했는지, 제 옆에 꼭 붙어서 이것저것 떠들어대는 모습이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조용한 방을 원했던 츠키시마에게는 굉장한 낭패였다. 이곳에서도, 나만의 공간이라던가 시간을 갖는 것은 무리겠네. 그는 커튼으로도 미처 가려지지 않는 햇빛을 피해 침대 위를 올랐다. 그러나 어딜 향하든 빛이 따라왔다. 이렇게나 밝은 곳은 17년 간 처음, 낯선 아침이 츠키시마에게는 버거웠다.


 “츠키시마는 여기 왜 온 거야? 무슨 문제가 있어?”


 “알 거 없잖아.”


 끈질기게 구는 히나타의 머리를 밀어내며 헤드폰을 쓴 그는 생각했다. 내가 왜 이곳에 왔더라. 정확히, 이곳으로 버려졌다는 표현이 옳았다. 츠키시마의 집은 이름있는 기업가였다. 그 주변은 항상 무언가 얻기위해 모여있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케이에게는 형이 하나 있었다. 케이는 그를 존경했다. 그의 형은 때로는 은은하게, 밝고 영롱하게 츠키시마를 비춰주고는 했다. 고고하고 우아한 달은, 태양빛에 감춰지는 동안 남몰래 상처를 남겼다. 조금씩 작아지던 위상이 츠키시마에게 비밀을 들켰던 날, 달은 무너졌다. 츠키시마는 그의 역할을 대신하기에 부족했다. 츠키시마의 아버지는 원망을 케이에게로 돌렸다. 그래서 보다 세상과 단절된츠키시마 케이가 더는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공간이 필요했다. 시끄럽고 부산한 공간보다는 이 편이 낫다고, 케이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에게 깊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츠키시마라는 성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아무도 그에게 츠키시마 아키테루’에 대하여 묻지 않았다. 남에게 지나치게 간섭하는 멍청한 인간이 존재하지 않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옮긴 병동에서 이런 사람을 만날 줄이야. 저의 헤드폰을 벗기는 손길에, 귀찮음이 잔뜩 묻어나는 표정으로 히나타를 돌아본 츠키시마는 세상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그 밝은 태양이 오로지 자신만을 비추었다.


 “응? 왜 온 건데, 츠키시마!”


 이상한 감정. 깊은 곳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 같으면서도 차분했다. 츠키시마는 그 정의할 수 없는 느낌을 애써 감추며 도망쳤다. 히나타가 없는 곳, 다시금 캄캄한 음지로. 그러나 그는 생글거리며 잘도 츠키시마를 찾아보였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그들은 항상 붙어있게 되었다. 물론, 일방적으로 히나타가 다가간 상태였지만, 어느 순간 부터는 츠키시마도 도망치는 것을 멈추었다. 끈질기게 붙어있는 그가 더는 귀찮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츠키시마는, 다소 혼란스럽지만, 이런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그날따라 츠키시마는 잠에 들기 어려웠다. 벌레들이 짝을 찾기 위해 내는 소리를 듣고, 어쩌면 본능적으로 저의 짝이 사라졌음을 깨달은 것일지도 모른다. 뒤척이기를 여러번, 눈을 떠 보니 건너편 침대가 비어있었다. 츠키시마는 일어서 불빛을 따라 걸었다. 이유는 알지 못했다. 그저 반쯤 잠든 정신이 몸을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이윽고, 히나타가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밝은 그곳에 도착했다.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얇은 쇳덩이가 바닥과 부딪혀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두시간 전만 해도 하얗던 환자복이 붉었다. 히나타는 덜덜 떨며 그를 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어떤 목소리도 밖을 향하지 않았다. 고요한 새벽을 깨울 수 있는 것은 수탉의 울음 뿐이다. 츠키시마는 말 없이 몸을 돌렸다. 방으로 돌아와 몸을 눕혔다. 


 “저기, 츠키시마. 그건 말이지…”


 “자신의 몸을 찌를 바에야 차라리 남을 괴롭히는 편이 낫잖아. 한심해.


 내뱉고도 왜 자신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츠키시마였다. 피투성이가 되었던 것은 히나타의 손목인데, 어쩐지 자신의 팔 전체가 욱씬거렸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바보같아. 인상을 쓴채로 돌아서 누웠다. 다음날, 히나타는 츠키시마를 찾지 않았다. 케이는 분명 귀찮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눈으로는 계속해서 히나타를 찾고 있었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아, 볼 수가 없었다. 해가 사라졌기에 어디에도 빛이 없었다. 츠키시마에게 지독한 밤이 돌아왔다. 늘 겪어온 어둠이 이번에는 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 츠키시마는 가장 밝은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가장 높은 곳, 가장 태양과 가까운 곳. 항상 단단히 잠겨있던 곳이 오늘은 열려있었다. 희미한 빛이 새어나와, 츠키시마는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어두워졌기에, 옥상 위를 은은하게 적셔준 것은 달빛이라고 생각했다. 따스한 느낌에, 이 근처 어딘가 그가 찾는 태양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옅은 빛에 젖은 하늘이 너무나 아름다워 가만히 머물렀다. 태양이 있음에 달이 빛난다. 더욱 밝고 선명한 빛을 보낼수록 달은 환하게 밤을 비춘다. 츠키시마는 그 희미한 달빛이 의미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언제나 밤인 날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아침이 찾아온다. 사람들이 밤에 잠을 자는 이유는, 그들에게 어둠을 견뎌낼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츠키시마는 다르다. 그의 세상은 언제나 밤이기에, 어두워지면 비로소 눈을 뜬다. 어디에도 달빛이 어리지 않는다. 그 날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보고 싶다만, 광원을 잃은 위성은 더 이상 빛나지 않는다. 츠키시마 역시 그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밤 하늘 아래, 무언가를 기다린다. 동틀 무렵의 새벽 내음을 맡으면, 슬며시 침대로 향한다. 아마도 그에게 더 이상 아침은 오지 않는다. 


 “보고싶어.”


 짜증나게 눈부시던 해가 다시금 만나고 싶어. 연약한 음성이 흩어졌다. 어둠이 깔린 곳에, 츠키시마는 홀로 서 있었다. 창문을 지나 환한 달빛이 흔들거리는 그를 비춰주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달이 가득 찼다.







+)

다 쓰고 나니까 제멋대로 아무 말이나 지껄여 놓은 것 같네요ㅠ 

혹시라도 이해가 가지않으신다면, 

히나타와 아키테루 두 사람의 자해와 자살,

 그리고 그것을 모두 목격한 케이 정도로 봐주시면 됩니다!

 결말은 몰살! 고멘츳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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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오이이와] かみ (신).

연성질/안녕큐 2016. 2. 21. 03:45
*알디님(@Neillin_rd)의 2차연성 '레스큐일지-14'를 모티브로 한 3차연성입니다.
*오이카와 안나옴 주의. 캐붕, 저퀄 주의.

 오이카와. 시끄럽게 매번 힘들다고 찡찡거리기나 하고 하기 싫다, 일이 너무 많다 투정 부리는 것이 고작인 짜증나는 녀석. 농땡이 부리지 말라고. 그러면서도 수술 때에는 사뭇 진지해져 아주 조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렇게나 바쁜데 누워서 뭘 하는 거냐. 한 생명을, 살릴 때마다 함께 기뻐하고 잃을 때마다 함께 슬퍼했다. 오늘처럼 정신 없이 바쁜 날에는 보란듯 모두 살려내고 술이나 한 잔 하자며 웃음지었다. ―이런 피투성이 모습 대신에.

 “이와이즈미..”

 “... 괜찮아. 수술 준비할게.”

 불안감이 엄습했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구해냈다만, 눈 앞의 단 하나를 잃을까봐 두려웠다. 외출하기 전 재수없게 떠들어버린 말이 끔찍하게 후회되었다.

 ‘이와짱, 나 오늘 정말 이상하다구. 꿈에서 죽을 운명이라던가 그런 거 봐 버린 거 같아!’

 ‘죽어버려, 망할카와. 일이 산더미처럼 많은데 연차라니.’

 ‘정말인데 믿어주지도 않고! 이와짱은 나빠!’

 ‘.. 가다 벽이나 박아버려.’

 단 하루였다. 오이카와가 자신이 지켜내지 못한 이들에게 사죄하러 가는 날은 1년 중 오늘 하루 밖에 없었다. 재수 없게도, 하필 오늘, 큰 버스가 사고가 났고 이를 피하려던 작은 승용차가 벽에 차를 박았다. 다행히도 버스 내에는 큰 부상자가 없었지만, 승용차의 운전자는 중태에 빠졌다. 수 많은 날들, 수 많은 사람들 중 하필이면. 잡생각이 머리를 떠다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와이즈미씨, 수술..”

 “어, 들어갈게.”

 구조대원 녀석들이 어떻게든 이어온 생명을 내가 꺼뜨릴 수는 없지. 죽을 운명이란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 보란듯 살려낼 거라고, 망할카와. 살아나면 오늘 내가 한 일의 열 배는 해야할 거다. 알았냐?

 “혈압이 계속 내려갑니다, 맥박 불안정. CPR 실시하겠습니다.”
 
‘누군가는 기적적으로 살아나고 그만큼의 누군가는 돌연 죽어버려. 죽고 사는 것은 결국 신의 뜻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럼 중간에서 의사는 뭘 하는 거지 생각하곤 해.’

 신 따위가 있을리 없잖아. 정해진 운명따위는 없고, 애시당초 그런 것들을 부정하려고 의사가 되었다고, 나는. 자꾸만 그의 몸을 적시는 죽음의 그림자가 두려웠다. 살려내지 못한 환자에 대한 죄책감은 언제나 컸다. 그럼에도 의사를 하는 이유는 살려낸 환자에 대한 기쁨이 그 두세배는 더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느껴지는 생명의 무게가 다르다. 앞으로 더 몇 사람을 살려낼지 모르는 사람이 수술대에 누워있다. 때로는 내게 원동력이 되어주는 사람이 숨도 제대로 못 가누며 죽음과 싸우고 있다. ―가치를 매길 수 있는 생명은 없다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지닌 사람이다. 그런데 자꾸만 눈 앞에 검은 것들이 아른 거린다. 지키지 못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나를 막아선다.

인간의 무력함을 느꼈다. 처음부터 늘 웃으며 활력이 된다던가 하는 그보다는 나 같이 성격 더럽고 재수 없는 새끼를 데려가는 편이 맞을텐데, 분명 무언가 착오가 있는 것이다. 수술을 마치고도 여전히 위태로운 네 곁을 지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있지도 않은 자신의 신을 향해 하염없이 기도를 내뱉는 일 뿐이었다. 신 같은 것은 믿지 않겠다고 떠들어댄 내가 이런 식이라 열받겠지만,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어보라고. 운명이란 것이 존재하고 오이카와가 정말 죽을 운명이라면, 난 보란듯 당신에게 엿을 날릴 거야. 그리고는 그를 살려낼 거라고, 알아 들어?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직 그의 운명이 결정되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말이지.

“.. 이 망할카와 좀 살려주십쇼, 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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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키야마] 당신의 애완동물을 어쩌구 썰.

연성질/안녕큐 2016. 2. 21. 00:43
 *폰작업 저퀄주의 얌굿 캐붕주의
*상풀, '당신의 애완동물을 조심하세요.' 란 작품을 모티브로 잡았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의 고슴도치 인생 5개월. 실수로 츠키시마의 손을 찔러 간식을 주고 사과를 한 일도, 새로운 사료가 너무 맛이 없지만 츠키시마가 나를 위해 사준 것이니까 눈 딱 감고 먹었던 일도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시끄러워, 야마구치."

 "저기.. 츠키스.. 츠키스으.. 츳키?"

 "... 하아?"

 바보! 츠키시마란 발음도 못하고! 사람이 되면 뭐하냐고.. 헉, 사람이라니.. 내가 사람이 됐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내가 갑자기 왜 사람이 되는 거야! 그러고보니 어젯밤 그렇게 빌었던 것도 같고.. 소원이 이뤄졌어. 나 정말 사람이 됐다고!

 "그러니까 네 말은, 저기 저 케이지에서 살던 그 고슴도치 야마구치가 너란 거지?"

 고개를 끄덕였다. 안 믿겠지? 믿지 않을 거야. 어쩌면 사람인 나보다 고슴도치 쪽을 더 좋아할지도 몰라. 그치만 간신히 이뤄냈는데.. 나 이제 쫓겨나는 건가? 그러면 다시는 츠키시마를 보지 못하는 거야?

 ".. 일단 이리와. 옷은 입어야지."

 "츳키..?"

 "그 츳키는 도대체 뭐야."

 "미, 미미, 미안! 그치만 발음이 되질 않아서.. 그, 그런데 믿어주는 거야? 내가 그 야마구치란 거?"

 "진실여부는 나중에 파악하고, 우선은 감기 걸리잖아."

 츠키시마는 내 말에 크게 한숨을 쉬더니, 저렇게 말했다. 지금 나를 걱정해준 거지? 그치? 츠키시마가 나를 걱정해줬어! 사람이 되는 건 좋은 거구나.. 츠키시마가 가져온 옷들은 나에게 다소 컸지만 익숙한 냄새가 잔뜩 베어 있어서 기분 좋았다. 맞아, 츠키시마 냄새구나..

 "옷, 사야겠다. 너무 크네."

 "응? 아냐아냐, 괜찮아! 언제까지나 이런 상태일리도 없고, 나, 그러니까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밖을 나갈 일도 없는 걸!"

 내 말을 들은 그는 작게 웃었다. 나 방금 우스운 이야기를 했던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웃음이었다. 어쩐지 부끄러워 얼굴을 살짝 붉히고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큰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맞네, 야마구치."

 가슴이 철렁 하는 느낌이었다. 자꾸 무언가 뭉클하고 먹먹한 것이 목구멍 위로 올라오려는 듯 했다. 행복감에 젖어 눈 앞도 뿌옇게 변하였다. 당황한 츠키시마가 그만두라며 내 등을 토닥였다. 고마워, 츠키시마.

 "저기 츳키. 나 지금 너무 좋아. 이거 꿈인 거 아니겠지?"

 바, 반대로 말해버렸다! 이를 어쩌지? 어떡해야하지?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나는 꿈 쪽이 더 좋은 걸, 이라고 말해버릴 거라고. 싫어, 그런건!

 "나도 네가 사람인 편이 좋은 거 같기도."

 "츠, 츳키!"
 
 "여전히 시끄러워, 야마구치."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정말, 정말로 행복한 고슴도치야!

_(어젯밤)

 으응? 무슨일이지? 어쩐지 힘 없어보이네, 츠키시마. 우, 우는 거야? 안돼, 안돼. 위로해 줘야만 하는데.. 울지마, 츠키시마. 간혹 츠키시마는 알 수 없는 우울함을 보이고는 했지만 오늘은 유난히 슬퍼했다. 그를 안아주고, 달래주고 싶은데 나는 그럴 수 없다. 제 무릎을 모아 얼굴을 묻는 그의 등을 토닥여주고 싶은데 나는 할 수 없다.

 "... 시끄러워, 야마구치. 이 밤 중에 그렇게 케이지를 두드리면 어떡하란 거야, 멍청이."

 무의식중에 코를 벽에 부딪힌 것 같다. 가까이에서 본 츠키시마의 얼굴은 훨씬 엉망이었다. 눈물이 가득해 붉어진 눈은 아마 내일이면 퉁퉁 부어오를 것이다. 츠키시마는 부드럽게 나를 쓰다듬었다. 지금 보듬어져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데. 아아, 나 정말, 진심으로

 '사람이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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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아오야치] 발렌타인데이 뒷북글

연성질/안녕큐 2016. 2. 15. 20:32
 봉사활동에 다니게 되었다. 후쿠로다니의 엄청나게 미인인 매니저씨가 소개시켜준 곳인데, 도쿄에서 하는 일이라 매주 일요일마다 신칸센을 타게 되었다. 그렇게 예쁜 사람과 함께 봉사활동이라니...! 나, 이번엔 정말 암살 당할지도 몰라. 긴장하며 두리번거렸는데 아직까지는 수상하다던가 무서운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다행이야, 그치만 긴장을 늦춰서는 안돼!

 지하철 문이 열리고 어쩐지 하나 남은 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아서 달려가 앉아버렸다. 헤헤, 꽤 럭키일지도. 옆에서 달달한 밤 냄새가 나 돌아보았다. 크, 크다, 것보다 무서워..! 봄고 대회 때 본 적 있는, 다테 공업의 어마어마하게 커다랗고 무섭게 생긴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 살려주세요...!

 "과자."

 "으에, 에?"

 "과자 먹어도 된다."

 그 달콤한 냄새는 그가 손에 꼭 쥐고 있는 밤과자에서 나는 듯 했다. 다소 붉어진 얼굴로 내게 과자를 하나 내밀었다. 나, 나 또 사람을 얼굴만 보고 판단해버렸어! 벌 받을 거야!

 "감사합니다! 맛있어요!"

 그는 뻣뻣하게 굳은 목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 뭔가 또 실수했나? 어쩌지. 어떡하면 좋지? ―에?

 내 손 위로 아직 반이나 남은 과자봉지를 내려놓고는 벌떡 일어섰다. 큰 소리와 함께 머리를 부딪힌 것 같아서 괜찮은지 물으려고 했는데 급하게 나가는 바람에 아무 말도 못 했다. 그가 준 밤과자는 정말 달콤했다. 하얗고 상냥해.. 북극곰 같아.

_

 그 이후로, 봉사활동에 가는 날마다 커다랗고 상냥한 북극곰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매번 내 손에 밤과자를 쥐어주고는 급하게 내렸다. 이렇게 받기만 하면 안될테니까, 마지막 봉사활동에 가던 날 쿠키를 만들었다. 근데 사실 과자는 밤과자 이외에 안 먹는다던가.. 모양이 못생겨서 싫어한다던가.. 으아아 어떻게 건내주냐고!

 "저, 저기.."

 "아오네."

 "아! 네, 그, 아오네씨 매번 밤과자 주셔서 그러니까 이건 보답이라기엔 굉장히 못생기고 밤 맛이 나는 것도 아니고...!"

 "잘 먹겠다."

 우와. 받아줬어! 기뻐서 그런지 자꾸만 두근거려서 얼굴로 피가 몰렸다. 혀, 혈액순환 지나치게 잘 돼. 오늘은 차에서 내릴 때까지 화끈해진 볼을 매만지며 혈액순환에 대해 생각해야만 했다.

 _

 봉사가 끝난지 일주일이 지났다. 오늘은 무려 발렌타인 데이!  ―그렇다고 해서 내가 초콜릿을 받는 일은 없겠지만. 달콤한 것을 주고 받는 날인 만큼, 구름도, 하늘도, 태양도 달콤했다! 행복해!

 "얏짱 오늘 유난히 들떴네. 초콜릿 많이 받았어?"

 "전혀요!"
 
 "그렇다면 주고 싶은 사람이라도?"

 주고 싶은 사람?

 '과자 먹어도 된다.'

 왜인지 스가와라씨의 말을 듣자 북극곰씨.. 그니까 아오네씨가 생각 났다. 우와, 나 또 두근거려. 그 날 내 쿠키를 받아준게 아직도 기쁜 거야?

 "있구나? 늦으면 후회할 거라고~"

 "에이, 없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꾸만 아오네씨가 생각났다. 얼굴이 뜨끈뜨끈해지는 느낌. 왜 오늘같은 날 자꾸 아오네씨가 생각나는 거지? 오늘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인데.

 "허억. 나 혹시..!"

 "야치."

 "흐에엑! 아, 아오네씨!"

 여기 분명 카라스노 앞인데, 어째서 아오네씨가! 나 무의식 중에 다테공업 앞까지 와버린 거야? 그럴리가 없잖아, 저기 니시노야씨들도 있고! 이곳, 설마 공간의 경계라던가.. 여길 넘어가면 다테공업에 갈 수 있는 건가? 하하, 그럴리가 없지, 나도 참~ ... 그렇다면 아오네씨는 여기 왜 있는 거지?

 "초, 초콜릿이요?"

 "오늘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면 기뻐할 거라고 후타쿠치가 말했다. 지난 번에 기뻐서 오늘은 야치가 기뻤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알겠다. 이제야 알아버렸어. 나 어쩌면 엄청나게 둔할지도. 입가에 걸린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손 위에 올려진 초콜릿의 무게가, 실제로는 60g이 고작이겠지만, 대단히 무겁게 느껴졌다. 이거 진심이야. 정말, 진짜라고!

 "응! 엄청 기뻐요!"





+) 지나가던 모니와
"아, 아오네가 두 문장이나 말했어..!"(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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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쿠로츠키] 그 남자의 사정

연성질/안녕큐 2016. 2. 14. 03:30
*폰작업 저퀄, 캐붕 주의. 쿠로오 자존감 낮음 주의.
*쿠로오와 츠키시마는 여름합숙 때부터 사귀었다는 전재입니다.

 안경 쓴 까칠한 녀석이었다. 자존심이 강해 조금만 건드려도 자극할 수 있는 쉬운 타입이면서도, 어딘가 단단히 어긋나 금세 손을 놓아버렸다. 그 알 수 없는 건조함에 관심이 생겼다. 여름 합숙의 짧은 기간에 관심은 더욱 깊은 감정으로 변하였고, 내가 내민 손을 그는 조금 망설이더니 기꺼이 잡아주었다. 손에 가득 채워지는 그의 온기가 따뜻했다.

 처음에는, 맞잡은 나의 손마저 놓아버릴까봐 걱정했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그의 손을 붙잡은채 매달려야할지, 아프지 않게 보내주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들이 정말 쓸데 없는 걱정임을 알았다. 더욱 견고하게 조여오는 손가락 사이의 압박감이 적어도 나의 고백을 거절하지 못하여 사귀는 것은 아니라고 안심시켜주었다. 어른인척 구는 그가 이따금씩 내게 기대어 온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 그는, 항상 감추려하지만, 감정을 쉽게 들키는 타입이었다. 싸움도 없이, 단란한 연애였다. 츳키와의 연애는 매일이 행복했다. 나는 그 행복을 유지하기를 원했다.

 츳키는 고등학생, 나는 성인이다. 공부에 치이는 그와 돈에, 학점에 허덕이는 나는 서로에게 소홀해질지도 모른다. 나는 지레 겁을 먹었다. 어느 순간 그가 도쿄에 오는 것을 껄끄러워하면 어쩌지. 나와 만날 시간이 사라지면 어쩌지. 과제에, 알바에 밀려 더 이상 츳키와 시간을 맞출 수 없으면 어떡하지. 그저 나의 노파심이었다. 우리는 문제 없이 앞을 향했다. 다만, 그는 고집이 강했고, 나는 그런 그에 대한 걱정을 잊으려 저런 의미없는 생각을 되뇌었을 뿐이다. 나로인해 츠키시마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포기해버릴 까봐. 그렇게 된다면 내 쪽에서 그를 놓아줘야할테니까.

 츳키가 고3이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사귀는 중이다. 그는 공부할 시간을 버리며 나를 찾았고, 나는 이기적이게도 그런 그를 거절하지 못했다. 가끔은 밤을 새워 피곤한 눈을 하기도 했는데, 오늘치 일을 몰아서 끝내느라 그랬다고 대답했다. 사랑의 시작은 어슬프기에 위험하다. 그는 온전치 못한 마음을 내게 주려다 조금씩 망가지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결심했던 말들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던 거짓을 내뱉었다. 그 여름날, 얼음이 녹아도 짙어, 씁쓸하던 커피 앞에서.

 “벌써 2년째네, 우리 만난 거.”

 “그렇네요. 쿠로오씨랑 2년이나 만나게 될 줄이야.”

 “2년이나 됐으니까 이제 그만둬도 괜찮잖아? 오래 만났으니까.”

 2년이나 만났으니 헤어져도 좋다니. 우습지도 않은 말을 내뱉고는 일어섰다. 넘쳐 흐르던 감정은 그 작은 커피잔에 몰아넣고 모두 녹여냈으니 더는 신경쓸 것도 없다. 츳키는 뭐든 철저하니까 내가 없다면 더는 망가지는 일도 없을 것이고, 분명 금세 좋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은 성숙해진 것으로 진짜 사랑을 이룰 것이다. 나와의 연애는 그저 성장을 위한 연습 경기였으니까. 배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다음이 없다는 것, 정도일까.

 츳키가 보고 싶어지면, 욕심 내지 않은 자신을 탓했다. 가끔씩, 술에 취할 때 라던가, 모른 척 그에게 전화를 걸면 항상 꺼져있는 츳키의 핸드폰이 그를 대변해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너무 힘들어서, 나와의 이별이 못견디게 괴로워서 아프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들려오는 소식 속 그는 여전했다. 다행이야. 분명 그게 맞는데, 어쩐지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서운하긴 하네.

 오늘은 억지로 이끌려 나갔던 소개팅에서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고 누군가를 소개 받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하고는 멋있게 도망쳤다. 츳키와 헤어진 계절은 여름이었는데, 어느새 바닥에는 낙엽이 잔뜩 깔려있다. 그 날 이후로 그 카페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커피에는 입도 댈 수 없었다. 그를 잊기위해 모든 추억을 돌고 돌아 피했다만, 언제나 가장 최악의 순간에 마주쳐 나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오늘, 바로 지금처럼.

 “쿠로오씨.”

 머리가 멈추어 버렸다. 가끔 시험지를 보고서 이랬던 경험이 몇 번 있지만, 오늘은 유난히 당황스러웠다. 심장 소리에 묻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조금 마른, 그렇지만 여전히 심술궂은 그 얼굴이 반가워 울음이 터져나올 뻔 했다. 아, 츠키시마. 바보 같은 호명이 내 최선의 대답이었다. 성대가 제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을 간신히 꺼내어 내뱉은 말이니까.

 “잘 지내시는 것 같네요. 그럼 가볼게요.”

 츳키가 너무나도 의연해서, 당황해서 머리까지 멈추었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눈 밑이 따끔거리고, 목구멍이 꽉 막혀 아팠다. 그가 걸어온 길을 따라 반대편으로 멀어졌다. 돌아보지 않는다. 미련 갖지 않는다. 이 끔찍한 카페 앞을 지나치며 나는 절대 울지 않는다.

 아마 내가 겪어본 상황들의 안에서, 후회하지 않는 선택은 없다. 어떤 것이든 반드시 끝에 다다르면 가슴을 치고 원망할 것이다. 그러나 그 옛날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이 선택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다른 어떤 선택들 보다 이것이 베스트란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스치듯 지나쳐 사라진 것들이 알게 모르게 흔적을 남기고, 후회는 그저 눈에 띄는 한 종류일 뿐이다. 후회가 남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한 때 마음을 함께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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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쿠로츠키] 낙홍(落紅)

연성질/안녕큐 2016. 2. 12. 00:38

*폰작업 저퀄, 캐붕 주의. 낙엽에 츠키시마의 첫사랑을 이입해주세요!
*쿠로오와 츠키시마는 여름합숙 때부터 사귀었다는 전재입니다!

 “벌써 2년째네, 우리 만난 거.”

 “그렇네요. 쿠로오씨랑 2년이나 만나게 될 줄이야.”

 “2년이나 됐으니까 이제 그만둬도 괜찮잖아? 오래 만났으니까.”

그의 이별선고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는 표현은 확실히 과장이었을까. 오히려 모두가 이상하리만치 정상적이다. 쿠로오씨가 먼저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다소 놀랐지만, 그게 전부. 고작 고교시절의 연애를 가지고 슬퍼한다거나 미련을 갖는 쪽이 오히려 웃긴 것이다. 언제라도 준비했다는 듯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나가고, 나는 홀로 남아 쇼트케이크를 먹었다.

 “... 맛 없네.”

 모두 내버려둔 채 나와버렸다. 그 카페에 남은 것은 먹다 만 쇼트케이크 이외에도 많았지만, 나는 모른척 고개를 돌렸다. 마음을 가볍게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랬기에 이것, 저것을 챙겨나올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핸드폰을 들었다. 그렇게 싫다고 거부하던 배경의 쿠로오씨를 어쩐지 나는 바꿀 수가 없었다. 전원 버튼을 길게 눌러 핸드폰을 꺼버렸다. 심심할 때, 쿠로오씨가 생각날 때 즈음이면 어김없이 울리던 것이 잠잠할 테니까. 사람도 이 같다면 좋을텐데.

 정말 금세 잊혀졌다. 고3이니까 공부라던가, 마지막이 될 배구에 집중해서일까. 아니, 어쩌면 애초에 쉽게 지나갈 사람이었을지도. 그랬으니까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버린 거겠지.

 “츳키! 오늘은 네코마 주장 만나러 안 가?”

 “아, 헤어졌어.”

 “헉. 미, 미안!”

 “괜찮아, 별 거 아닌데.”

 “별 거 아닐리 없잖아, 2년이나 만났는데.”

 “괜찮다니까?”

 “괜찮다면 왜 아직 핸드폰 꺼 놓은 건데?”

 걸음이 우뚝 멈춰섰다. 야마구치의 말 때문이 아니라 그저 핸드폰에 무언가 온 것 같아서. 꺼내려고 손을 움직이다 그만두었다. 여전히 꺼져있는 핸드폰이 울릴리가 없잖아. 스스로 전원을 꺼 놓은 주제에 도대체 무슨 연락을 기대하는 거야.

 “별 거 아니라면 아닌 거잖아.”

 “... 응, 미안해, 츳키..”

 야마구치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맞는 이야기만 했는 걸. 그렇지만 어딘가 잔뜩 꼬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전히 핸드폰을 꺼 놓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심한 녀석이다. 켜버린다면 곧바로 그에게 전화해서 왜 내게 헤어지자고 했는지 따질지도 모른다. 그걸 물어서 쿠로오씨에게 어떤 것이든 답을 듣는다면 어쩔건데. 다음을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은 해서는 안돼. 나는 그 모든 리스크를 감수할 자신이 없으니까.

 사랑에 빠진 순간, 인간은 변한다. 지금껏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푸르던 나뭇잎이 붉게 물든 시점에서야 내가 사랑에 빠졌음을 깨달았고, 우리가 늘 갖고 있던 온도차는 한 쪽이 달아오르면 다른 한 쪽은 식어버리는 것이었다. 비로소 마음을 깨달은 때는 너무 늦어버렸다. 그리고 단풍은 떨어질 차례만을 기다린다.

 “쿠로오씨.”

 “아.. 츠키시마.”

 츳키도, 케이도, 안경군도 아닌 츠키시마. 누구에게나 불려지던 나의 성이 이토록 듣기 싫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는 운동을 열심히 하는지, 살이 조금 빠진 것 같았고 늘 하고있는 뻗친 새집머리가 아닌 단정한 꼴을 하고 있었다. 여자라도 만나려는 듯이. 난 지금 누구에게 이렇게까지 화가 난 거지? 뭐가 이렇게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건데. 도대체 왜야.

 “잘 지내시는 것 같네요. 그럼 가볼게요.”

 아마도 번호가 바뀔 때까지 핸드폰을 켜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 없으니까.

 바람이 불었다. 나뭇가지에 붙어 흔들리던 잎들이 그에 맞추어 떨어졌다. 개중에는 새빨갛게 물들어진 몸을 잔뜩 웅크린 것도 있었다. 바스락- 작은 소리에 부서져 흩어지는 그런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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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스가와라] 백색 까마귀

연성질/안녕큐 2016. 2. 11. 20:49

*카라스노가 전국 준결승에서 네코마에게 패했다는 전제의 이야기 입니다.

*스토리와 깊은 관련은 없지만, 약 스포가 있습니다. 싫으신 분은 화면을 꺼주시면 됩니다.

*캐붕과 스가의 과거 날조가 있습니다.

 

 휘슬이 울렸다. 카라스노에서의 배구는 이제 끝이다. 어쨌거나, 우리가 져버렸지만 내가 아직 남아있는 시점에 쓰레기장 결전 이란 것을 만들어내서 다행이다. 코트에 남아있고 싶어, 아쉬움이 컸지만 후회가 남는 3년은 아니었다. 어디선가 당당히 말할 수 있잖아, 나도 배구를 했다고. 꿈이, 청춘이 있는 코트에 나도 함께 서 있었다고.

 

 “자네, 입부 할건가?”

 

 “예, 예? 아니, 저….”

 

 “은발미남이라니, 우리 배구부에 꼭 필요한 마스코트라구요. 절대로 설득하세요!”

 

 대학 배구부에 들 생각은 없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으니 추천서가 올 일도 없었고, 애초에 배구가 진로는 아니었으니까. 꾸준히 공부를 해왔고, 가끔 지칠 때 숨통을 트이게 해준 취미생활이었다. 다이치를, 아사히를 만나서 단순한 취미 이상의 의미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카라스노를 졸업한 시점에서 내게 배구는 그저 과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어쩌면, 배구에 미련을 갖고 있었을지도. 대학 배구부 코치님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을 때, 정말 날 듯이 기뻤다. 두근거렸다. 카라스노에 입학했던 그 날 처럼.

 

 “얼레? 상쾌군 이 학교였어? 것보다 배구 계속 하는 거야?”

 

 “그게 이렇게 되어버렸네, 하하.” 

 

“안됐다, 그런데. 언제나 벤치조네, 상쾌군은.”

 

 작년에는 토비오쨩에게, 올해에는 내게 밀려서. 틀린 말은 아니지. 나는 오이카와나 카게야마 보다는 실력이 떨어지는 세터니까. 그렇지만 이대로 부주전에 남아있을 생각은 없다고. 게다가, 주전이 아니라도 관계없어. 괜찮은 걸, 여전히 배구 할 수 있다면.

 

“…여전히 열받은 포지티브네.”

 

_

 

“저, 싱크로라던가, 핀치서버, 투세터라면 경험이 꽤 있어서 할 수 있습니다.”

 

“확실히 스가와라는 공격의 새로운 수가 되는 구만, 그래. 과연 카라스노 출신이야.

 

“그러게. 코시쨩은 늘 착실한 세터의 느낌이라 카라스노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는데, 역시 잡식고교는 달라.”

 

 나는 멈춰있었다. 갑작스레 밀려 온 재능덩어리들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머물러 있었다. 다들 새로운 것들을 연마하며 성장 해 나가는데  나는 도저히 뭘 해야할 지 몰랐다.  ‘스가와라상, 토스 올리는 법 가르쳐주세요.’ ―도쿄의 녀석들을 만나서 진심으로 다행이야. 니시노야들이 나와 함께 호흡을 맞춰주어서 진심으로 다행이야. 니시노야의 토스로 보란듯 성공해낸 싱크로 공격의 감촉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곳에서는 나도 새로운 걸 할 수 있었어. 당연한 거라고.

“―잡식 강호죠, 카라스노는.”

 

 자랑스럽게 웃었다. 한 때 나 자신조차 카라스노에 어울리는가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 백색 까마귀. 그러나 나 역시 결국은 까마귀인 걸. 1학년에게 주전을 빼앗겼던 카라스노의 착실한 세터였기에, 늘 그렇게 내 자리를 지켜왔기에 코트에 설 기회도, 새로운 기술도 생긴 거야. 카라스노가 나의 배구야. 내가 미련을 갖고 있던 건 아무래도―

 

[엔노시타, 오늘 카라스노 놀러 가도 돼?]

 

 어리숙한 까마귀들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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