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워치/레예맥] Sunset.

연성질/☆ 2017. 1. 14. 19:22

 

 

 

제시 맥크리는 꿈을 꾸려는 참이다. 비행기는 에스파냐를 향하고 있다. 혼잡한 짐칸에 몸을 구겨 넣은 채로 불편하게 누워있지만, 지친 그에게는 그런대로 괜찮은 자리다. 실제로 지친 쪽도 몸보다는 다른 곳이었으니까. 그저 그곳이 적당한 회상을 곁들여 추잡한 꿈을 이어가기에 충분하다는 의미이다.

오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재소집이라는 거창한 명분이 제시를 이끌었다. 옛 전우들을 보기 위해서 그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아주 필수적으로. 감긴 눈과 그의 의식이 잠식됨에 따라 그리웠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거칠고 저밖에 모르는 성격과 꼭 닮았던 그 목소리가 세월만큼이나 흐릿하게 제시의 귀를 감싸 안았다.

 

명심해라, 얼간아. 무거운 이름을 얹고 싸우는 거다. 오버워치는 너희 갱 놀음과는 달라.’

오버워치. 잊은 듯 살았던 이름이다. 사실 그리 반갑지 않기도 하고. 한 번 정의를 잃었던 것이 다시 세워진들 다를 게 있을까.

 

우습지도 않군, 애송이. 네가 그렇게 잘났다면 왜 진작 나를 죽이지 않았나?’

그래, 나는 지금 당신에게 묻고 있는 거야.

 

제시는 사람이 잠들지 않고도 이토록 완벽히 꿈속에 사로잡힐 수 있음에 여러 번 감탄해야만 했다. 무의식이 그를 지배할수록 그의 정신은 더욱이 또렷해졌다. 자세를 바꾸고 몸을 들썩이며 벗어나려했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편한 자세를 찾아도 불편했고, 억지로 꿈을 깨려하면 오히려 빠져들었다. 그 부조리함은 그가 이 모든 모순의 근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금세 사라졌다. 우스꽝스러운 카우보이모자로 얼굴을 완전히 가려버린 사내는 낮게 욕을 읊조렸다.

 

이제 다 늙어빠졌겠군,”

 

가브리엘은 무슨, 망할 레예스.

 

 

유능한 총잡이의 귀환이구만. 하하! 환영하네, 친구.”

여전히 건강하시군요, 라인하르트.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모자를 벗고 격식 있게 인사하려는 맥크리를 끌어당기고는 호탕하게 웃는 늙은 기사는 아무래도 여전히 영웅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더불어 사람을 뭉개버릴 듯 끌어안는 근력도 여전해 보인다고, 제시는 생각했다. 그 단단한 품에서 겨우 벗어나 안으로 들어가자 그런대로 익숙한 얼굴들이 시끄럽게 저를 반긴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달려와 안기는 옥스턴이나 격식 있는 사이보그의 목소리, 혹은 다소 흥분한 고릴라의 음성.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향수를 이끈다만 제시 맥크리는 다른 것을 찾고 있었다. 좀 더 단단하고 새카맣고 심술궂은 무언가. 늦었다며 망설임 없이 제 머리통을 휘갈겨 줄 누군가. 비행기에서 지겹게 자신을 괴롭혔던 그 목소리를,

 

조금 늦었군요, 맥크리.”

주인공은 항상 느지막이 등장하는 법이지.”

 

안 그래도 당신을 찾고 있었어, 치글러.

정확히는 그녀를 찾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행방을 알려줄만한 인물을 찾고 있던 것이지만 피차 다를 것도 없었다. 그는 능청스레 옛 전우인 천사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이봐, 친구. 잠시 시간 좀 내줄 수 있지?’ 그녀는 흔쾌히 제시의 요청에 응했다.

제시는 치글러의 방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오랜 친구이자 라이벌인 금빛 머리칼 역시 보이지 않았다. 바쁜 양반들이니 어딘가 잠시 다녀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다 늙어빠진 모습을 들키기 싫어서 숨어있다거나. 한심하기는, 제시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커피, 드실 거죠?”

물론이지. 실력이 녹슬지는 않았는지 봐야겠어.”

못 쓰게 만드는 것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요, 당신과는 다르게.”

……,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맛이군.”

 

따뜻한 커피는 세월이 무색하리만치 그대로였다. 맛으로 보나, 만든 이로 보나. 그는 찬찬히 커피를 마시며 제가 자리한 공간을 둘러보았다. 탁자 위에 어지러이 널브러진 탈론의 자료, 그 안의 시커먼 누군가.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뒤집어쓰고는 어딘가 익숙한 총을 양 손에 쥐고 있는……, 넋을 놓고 자료를 바라보다가 손에 조금 커피를 흘리고야 말았다. 따뜻한 느낌이 퍼졌다. 치글러는 여전히 덤벙댄다고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 때쯤에서 제시는 작은 의아함이 생겼다. ‘따뜻한 커피.’ 마치 그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린 것 같은, 막 끓여진 커피. 마치 기지에 도달하자마자 자신을 찾을 거란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던 느낌이다. 그 이질감을 잘근거리던 그는 답지 않게 동요하는 차가운 스위스 여인의 눈을 보았다. 꾹 다물어진 입술은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진실을 애써 누르고 있는 듯 보였다.

 

메르시.”

오랜만인 이름이군요. 정말.”

 

분명 다르다. 앙겔라 치글러는 비밀을 숨기고 있다. 아니지, 털어놓고 있다. 의도치 않게 제시만을 향했던 거짓과 비밀을 뱉어내려 하고 있다.

그녀는 굳세게 탁자 위로 종이 뭉치를 내려놓았다.

 

스위스 기지의 폭발, 잭 모리슨과 가브리엘 레예스의 죽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이. 레예스가, 사라졌다고, 그가. 제시 맥크리를 두 번이나 오버워치로 이끈 그가(직접 불러낸 것은 한 번 뿐이었지만), 레예스가. 그러니까 더는 없다고, 오버워치에. 이 세상에.

제시는 목이 타는 것을 느꼈다. 짙은 커피를 급하게 들이켰다. 담배가 생각났지만 이곳은 치글러의 방이니 참기로 했다. 그는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읽었다. 뇌가 기능을 멈춘 것 같았다. 금연을 해야 하나,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도 와 닿지 않았다. 제시에게 가브리엘 레예스는 무슨 짓을 해도 죽지 않는 불사신 같은 존재였다. 그런 인간이 죽었다니, 그것도 흔적도 없이. 납득하지 못 할 만한 문제였다.

 

당신이 재미난 소설 쓰기에 소질이 있는 줄은 몰랐군. 그래서 다음은 어떻게 되나?”

제시.”

 

그녀의 강한 눈빛이 제시의 내장을 끄집어내는 것 같았다. 좀 전까지 맛있게 마셔대던 커피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것도 같았다.

 

알았어. 제대로 알아먹었다고. 예나 지금이나 무책임한 건 여전한 인간이로구만. 그에 딱 어울리는 명예롭지 못한 죽음이었고.”

 

그는 일어서 천천히 밖을 향했다. 화를 내고 있었다. 제시 맥크리의 방식은 아니다만, 고요함 속에서 분노하고 있었다. 대상은 불분명하다. 준비할 겨를도 없이 진실을 강요한 치글러, 멋대로 멍청한 죽음을 맞아버린 레예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들떠 있었던 멍청한 맥크리, 자신.

 

한심하기는. 멍청함은 스승한테 물려받은 유산인가보지?”

 

모두를 향하였지만, 누구도 향하지 않았다.

 

 

거기 얼빠진 놈, 정신 똑바로 안 차리면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죽음이다.”

지금 나를 걱정해주는 겁니까? 그 대단한 레예스 사령관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럭키가이가 바로 나였구만?”

계속 헛소리를 할 생각이라면 지금 당장 비행기에서 내려도 좋은데,”

무서운 소리, 아직 공중이잖아요. 당신, 내게 하늘을 나는 기술은 가르쳐주지 않았다고요.”

 

사령관의 목구멍에서 걸쭉한 웃음소리가 새어나오자 젊은 카우보이의 얼굴에도 만족스런 웃음이 자리했다. 제시는 마음속으로 감옥에서 썩을 바에야 적이었든, 원수였든, 정의구현을 떠들어대는 기관을 돕겠다.’고 말한 과거의 철없는 자신을 칭찬했다. 아마 제 인생 중에서 가장 잘 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 의견에 레예스는 그다지 깊게 공감하는 것 같지는 않다만, 긍정적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시커먼 지하 독방에서 몸에 곰팡이나 피우고 있는 삶보다는 낫지 않겠느냐고 덧붙이기도 하였다. 제시는 그 표현마저도 대장답다며 너털웃음을 보였다.

그렇지만 맥크리가 이전의 선택을 자신의 최고로 꼽는 데에는 다른, 보다 명확한 이유가 존재했다. 그는 자연스레 늘 화나 보이는 험상궂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숨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 했다.

 

상관의 낯짝을 보고 웃어대는 건 그 상관이 우습게 보인다는 뜻인가?”

그 배려 없는 얼굴로 화까지 내면 내가 얼마나 무서울지는 생각 안 해줍니까?”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인지, 한 번을 가만히 듣고 넘기는 법이 없군.”

내게 이런 걸 가르칠만한 사람이 레예스 당신 말고 또 누가 있답니까?”

하여간 글러먹은 꼬맹이. 그가 아프지 않게 제시의 머리를 툭 치면 애써 참고 있던 웃음이 그에 맞춰 터져 나온다. 통증 하나 없는 부근을 부러 비벼대며 묻는 목소리는 퍽 장난스럽다.

 

안 그래도 나쁜 머리 더 나빠지면 당신이 책임지는 겁니까?”

아니. 지금보다 더 나빠지면 못 쓸 테니 가져다 버려야지.”

, 매정하잖아요, 그거! 다 당신 탓인데!”

날 때부터 멍청하던 돌대가리를 왜 나의 책임으로 넘기는 건지 모르겠군.”

, 대장!”

 

 

아무래도 더 이상 젊은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카우보이가 슬 웃어보였다. 즐거운 기억 한 편에 항상 자리한 그 사람을 찾아야만 했다. 하다못해 그 흔적이라도.

제시는 그 길로 스위스기지를 향했다. 여직 제대로 남아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오로지 그 생각 하나로 도착한 곳은 자신이 알던 모습과 꽤 달랐다. ‘두 영감이 아주 제대로 화딱지가 나셨던 모양이네.’ 온통 일그러지고 망가진 기지를 보며 속으로 한탄하였다. 무엇이 제시 맥크리의 발걸음을 그리 재촉했던 것일까. 머물렀다면,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면 그 성질 나쁜 상관을 막을 만한 사람이 바로 제가 아니었을까. 괜한 후회가 밀려왔다. 그는 말없이 황무지 위를 걸었다.

 

…….”

 

생생한 흔적. 좋을 대로 부서진 것들과 그것들 사이에 여전히 짙게 남은 핏자국들. 치글러가 건네준 자료에서 본 것과 꼭 똑같은 모습의 익숙한, 그렇지만 한없이 낯선.

 

이곳에 레예스가 있었다.

 

그 시커멓고 인상 더럽고 늘 제게 못돼먹었던, 말만 하면 콧잔등을 찡그리며 저를 째려보기 일쑤였고 알아먹기 힘든 걸걸한 목소리로 욕을 내뱉기나 하던, 대장인 주제에 칭찬이나 격려하는 법을 몰라서 서투르게 머리통을 후려치기나 하고 꼴에 꽤나 멋있는 웃음을 내보이던, 가브리엘 레예스. 피투성이, 죽어가던 레예스. 그가 이곳에 있었다.

제시는 도저히 그의 멸망을 믿지 못했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브리엘 레예스가 제시 맥크리의 전부를 갖고 있었기 때문, 그 뿐이다.

 

멍청하기는.”

 

돌아갈 시간이다. 과거에 잡혀있다 보면 쉽게 망령에게 정신을 빼앗기고는 한다. 제시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며 환기시키고는 무겁게 한 발을 내딛었다. 여전히 다소 부주의한 머리는 눈앞을 스쳐지나간 검은 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시체 썩은 내가 나는 것 같았다. 그는 그저 과도하게 신경 쓴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거 더할 나위 없이 맞는 말이군.”

 

그는 순간 너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 했다. 조금 더 웅얼대고 알아듣기 힘든 목소리였지만, 아무래도 제가 오버워치에 돌아오고 며칠이나 그리워했던 그것과 굉장히 비슷했다. 그러나 진짜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눈앞에는 잔해들이 보란 듯 펼쳐져 있었으니까.

 

이제는 환청까지. 정말 가지가지 하는군, 맥크리.”

 

두어 번 고개를 강하게 휘젓고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딛었다. 커다란 소음이 들렸는데, 총성음 같기도 하였다. 거기까지 파악되자 오른 팔이 떨어져 나갈 듯 욱신거렸다. 인상을 찌푸리고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제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는 계속되었다. 의수로 상처부위를 꾹 눌러 지혈해보기는 하였다만 역부족이었다. 이내 좀 전과 같은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왼 발목이 말썽이다. 뒤이어 왼팔과 의수의 연결부위, 왼쪽 옆구리를 향해 차례로 총알이 박혀왔다. , 하는 소리와 함께 중심을 잃고 고꾸라진 맥크리의 앞에 검은 연기가 뭉글거리다가 이내 사람의 형태를 하였다. 그냥 사람이라기에는 얼굴에 뒤집어 쓴 가면이 꽤나 우스웠지만 제시는 지금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고통에 잔뜩 구겨진 인상으로 그 사람을 노려보았다. 그 유령 같은 사람은 한 발을 제시의 가슴팍 위에 얹어놓고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꼭 그런 것만 같았다는 의미이다.) 그는, 그러고 보니, 어디에선가 저렇게 생긴 사람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탈론, 리퍼. 검은 케이프를 두르고, 가면을 쓰고 있음. 검은 연기가 되어 이동할 때에는 데미지를 입힐 수 없음. 순간이동이 가능함. 전 오버워치 요원들과 오버워치에 관련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테러를 가하고 있음.’

 

치글러의 방이었군. 그 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는 중얼대듯이 말했다. 그 소리를 정체불명의 사내가 놓쳤을 리가 없다.

 

, 그 여자도 아직 살아있는 건가. 자비를 잃은 오버워치의 꼴이 궁금해지는군.”

당신……,”

이제야 눈치를 챘구나, 애송아. 꼴이 아주 가관이군.”

, 당신 거울은 보고 다니는 겁니까.”

 

제시는 하마터면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이것은 꿈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저의 우스운 망상일 수도 있다. 그를, 레예스를 그리워하기만 하다가 죽어가는 제시가 가여워 눈과 뇌가 힘을 합쳐 멍청한 환상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여전히 얼얼한 고통은 이것이 현실임을 여실히 깨닫게 해준다.

 

어떻게……, 당신이 어떻게,”

그야 네놈에게는 가르치지 않은 속임수로. 아마 앞으로도 알 일은 없을 테지. 옛 고향과 작별인사라도 나누지 그래.”

 

자신을 향해 겨눠진, 그 익숙한 총은 분명 전 블랙워치 사령관인 가브리엘 레예스의 것이다. 저 재수 없게 제시의 귓전을 때리는 목소리 역시 가브리엘 레예스의 것이다. 흐릿한 시야가 가면 너머의 얼굴을 꿰뚫는다면, 그 안에 감춰져 썩고 재생하기를 반복하는 것 역시 가브리엘 레예스의 것이다. 제시 맥크리는 저를 죽음까지 내몬 자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가브리엘 레예스라는 사실에 기뻐해야할지 원망스러워해야 할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것마저 간파한 리퍼는 제시의 머리를 향해 총을 두었다. 냉소적인 웃음과 함께 고개가 제시를 마주하였다. 제시는 그의 눈을 보고자 애썼지만 아무래도 보이지 않았다.

 

유언은 준비 되었나, 맥크리.”

 

그가 멋대로 오버워치를 뛰쳐나와, 단 한 번 후회한 적이 있다면 우연히 66번 국도를 지나칠 때였을까. 제 기억 속 늠름한 대장은 그곳을 스칠 때면 늘 인상을 구기고 내가 이곳에서 그 배은망덕한 자식을 주어왔지.’라고 투덜대고는 했다. 그 뒤통수에 대고 이렇게 잘난 대원을 얻어놓고 그런다며 우쭐댔었는데………. 그러고 보니 시간이 꽤나 지난 듯하다. 해가 기웃거리며 산 너머로 숨어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시 맥크리는 제 자랑스러운 카우보이모자를 조금 눌러쓰며 얼굴을 가렸다.

 

달리 남길 말이 있을 리가.”

 

눈을 꾹 감으며 생각했다. 석양이 지는군. 쓸쓸한 웃음이 그 자리에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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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쿠로츠키] 세가지 소원Ⅰ

연성질/안녕큐 2017. 1. 11. 02:07

BGM ; 레드벨벳 - 세가지 소원

https://youtu.be/Bv1b5MzLIAM

*대학생AU입니다! 츠키시마와 쿠로오는 룸메이트입니다!

*오랜만의 연성이라 캐붕이 지려벌지만,, 메리 쿨츳데이,,,

 

 

   “어이, 케이. 늦잖아.”

   “쿠로오씨가 너무 일렀던 겁니다.”

 

   신년까지 쿠로오씨의 얼굴을 봐야하는 겁니까, 툴툴대면서도 쿠로오씨의 뒤를 따랐다. 송년이랍시고 보투토씨, 아카아시씨와 함께 모였던 날, 구해를 함께 보냈으니 새해도 함께 맞으면 좋을 것 같다고 대충 뱉었던 말이 실제가 될 줄이야. 담담히 지난 날을 곱씹으며 그와 발을 맞추었다.

   ―그러니까 그를 처음 만났던 것은 이제 한 손을 꼬박 다 접어야 닿을 날이다. 싫다던 나를 어거지로 끌어와 개인연습을 하게 만들고, 멋대로 이것저것 알려주더니 금세 좋을대로 부르며 연락처까지 가져갔었지. 그러다 이 정도 시간이 지나니 내게도 관록이 생긴 것인지 귀찮을 만큼 내게 관심이 많은 이 사람과 지금은 한 방을 쓰고 있을 정도이다. 면역력이 생긴다든가,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몸소 체험하게 해준 그를 어쩐지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것을 곧잘 ‘휘둘린다’고 표현하고는 했는데, 이렇게 나를 제멋대로 휘두르는 사람은 (형인 아키테루를 제외하고,) 꼭 처음이었다.

   쿠로오 테츠로씨는 사악한 얼굴로 나를 곧잘 놀리고는 하는데, 이상하게도, 히나타나 카게야마에게 하듯이, 열 받는 만큼 시원하게 받아쳐내질 못한다. 또한 그의 일상은 보쿠토씨만큼이나 빈틈투성이인데, 경기 중에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고 치밀하다. 그것 뿐일까. 조금 쉴만 하면 다가와 '츳키―', '안경군', '케이!' 하는 식으로 귀찮게하고는 하는데 그게 어쩐지 싫지가 않다. 그리고 돌연, 잘난 체하며 웃어보이면 (아주 가끔이다만) 그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도 같다. 

   쿠로오 테츠로는 누군가 내게 인생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을 고르라면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꼽을 그런 사람이다.

 

   “안경군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인 거 알아?”

 

   밤공기는 쌀쌀했다. 옅은 겨울 냄새가 기분은 좋다만, 아무래도 추운 것은 별로였다. 조금 몸을 움츠린 채로 걷는데 그가 제 붉은 목도리를 풀러 매주었다. ‘연인 행세입니까.’ 볼멘소리로 물었지만, 따뜻한 기운에 달리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쿠로오씨 냄새. 얕게 숨을 들이마쉬다가 얼굴을 목도리 속으로 숨겼다. 금세 목도리의 붉은 색이 얼굴을 물들이는 듯 했다.

 

   “케이, 이제 금방이야. 뛰자!”

   “네? 자, 잠시만……!”

 

   손을 맞잡고 무작정 뛰어 도착한 신사 앞은, 한밤중인데도 북적거렸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그리고 또 누군가는 연인들과. 옹기종기 모여 웃는 이들 사이에서 어쩐지 이질감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누구와 함께 신사에 온 걸까. 라이벌이자 동료였던 사람, 혹은 현재인 룸메이트.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케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다음 우리야.”

   “아, 네”

 

   실없는 생각. 나는 그것을 머릿속에서 떨궈내려 했다. 그러다 문득 돌아본 곳에 쿠로오씨가 보였는데, 신사 앞에 서서 무언가 간절히 손을 모으고 비는 그를 보며, 조금은 우습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곳에 빈다고 이루어질까. 속는 셈 치고, 이런 내 모습이 얼마나 바보같을지는 잘 알고 있지만, 생에 처음으로 간절하게 손을 모았다. 내 머릿속의 실없는 생각이 아주 터무니없는 헛소리가 되지만은 않게 해달라는 바람. 신따위 있을리가 없지 않냐고 떠들어대던 자의 소원을 이뤄줄리 만무하지만.

 

   “뭐라고 빌었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잖아요?”

   “아―, 치사해. 째째시마.”

   “히나타입니까? ……그러는 쿠로오씨는 뭐라고 빌었는데요.”

   “글쎄…,”

 

   바보같은 건 오히려 지금일까. 될 수 있다면 저 물음을 뱉기 이전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신의 만능을 너무 과신하셨네요.’ 아무렇지 않은 체하며 답한 이후에도 속이 울렁이는 듯 했다. 그의 답이 날카롭게 속을 후벼팠다. 너무한 것 아니냐며 우는 소리를 해대는 그에게 얄밉게 웃으며 틀린 말도 아니지 않느냐 말했다. 정말로 틀린 것은 그가 아니라 자신임을 아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여자친구나 생기게 해주세요, 일까.’

 

 


 

 

  이번 신은 꽤나 관대한 존재였다.

 

   “아, 케이.”

   “여자친구입니까?”

   “어? 아니―,”

   “금세 이뤄졌네요, 소원. 잘됐어요.”

   “……그러게. 앞으로 매해 거기로 가야겠어.”

 

   저는 아마, 싫습니다. 그렇게 대답하지 못하고 그러든 말든 별 관계 없다는 듯 어깨나 으쓱해보였다. ‘데이트나 하세요.’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고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났다. 속이 메스꺼웠다. 덕분에 점심에 위 속으로 우겨넣었던 음식들을 모두 게워내야만 했다. 하루종일 울렁이는 속을 달래며 ‘괜찮다, 괜찮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위로를 되뇌었다.

 

   헤매던 시간은 어느새 해를 잃었고 달을 만났다. 그 날 손을 마주 잡고 뛰었던 그 길이, 오늘은 지루하고 길게만 느껴졌다. 한참을 걷고 또 걷자 한적하고 컴컴한 신사가 보였다. 오늘의 밤만큼이나 쌀쌀하고 쓸쓸한. 나는 느릿하게 그 위로 올랐다. 그리고는 다시 손을 모았다. 이 관대하되, 정직한 신을 향해서.

 

   “하나를 말하면 열은 알아주는 신이길 바랐는데, 그건 아니었나보네요. 아니, 그다지 불만은 없습니다. 그냥 혹시 제가 빠뜨린 게 있을까봐 왔어요.”

 

   ‘그의 시간에 내가 단 1분이라도 좋으니 자리하게 해주세요.’

 

   “별 건 아니고, 올해도 별 탈 없이 그와 함께하게 해주세요.”

 

   ―사치스런 욕심을 부리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렇게나마 쿠로오씨의 곁에 계속 있을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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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츠키야치] 사랑이었다

연성질/안녕큐 2016. 7. 17. 02:13

BGM ; 사랑이었다 태일

https://youtu.be/KVV5Yvr-0Bs

 

저기, 스가와라 선배.”

 

, 저기, , 졸업 축하드려요.”

 

하필 그 잠깐이었다. 사와무라들의 졸업식이 끝나고, 체육관 앞을 지나가던 중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끝나 다음 노래로 넘어가려던 그 짧은 순간, 츠키시마는 일주일 전부터 만지작거리던 작은 선물상자를 뒤에 숨긴 채 답지 않은 억지웃음을 짓는 야치를 보았다. 그리고는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만 남긴 채 가버린 스가와라를 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그녀와 눈이 마주쳐버렸다랄까. 상자를 쓰다듬던 그녀의 동그란 눈이 커졌다가, 작아졌다. 눈물이 잔뜩 고인 붉은 눈으로 3초정도 츠키시마를 바라보더니 다급하게 상자를 숨겼다.

 

, , 그니까 방금 건 말이야...!”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위태로운 모습으로 애써 슬픔을 눌러 담는데, 츠키시마에게 그건 그거대로 신경 쓰였다. 자초지종을 듣는다거나 하는 일에는 분명히 관심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귀찮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미간을 아주 약간 좁히다 말고는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그제야 야치는 울음을 터뜨렸다. 조용하지만 거대하게. 츠키시마로서는 그 거대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중심에 있는 저 작은 상자, 어째서 주지 못한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여기에 담긴 내 마음까지 속이지는 말자고 생각했어.”

 

눈물과 콧물이 범벅 된 못생긴 얼굴로 웃으며 그렇게 답했다. 그 마음이 뭐 대수라고. 아마도 츠키시마는 속으로 비웃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없는 것이었다. 자신보다 소중한 마음이라니, 평생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은 부쩍이나 가까워졌다. 야치야 원래 사교성이 좋은 편이었다만, 츠키시마의 태도가 사뭇 달랐다. 그는 필요 이상으로 그녀에게 신경을 썼다.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그런 장면을 봐버린 탓이라고 단정 지었다만,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눈에 밟히는 이유라 하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오늘 일은 없었던 일로 해 줬으면 좋겠어란 그녀의 말이 어쩐지 자꾸만 생각 나 그 곁을 서성거리게 만들었다. 츠키시마는 항상 그녀를 바라보고 관찰했다. 이따금씩 보이는 굳은 표정 속에서, 그는, 그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웃지 않는 그녀는 새로웠다. 정확히, 그런 그녀를 보며 느껴지는 이상한 분함에 생소함을 느꼈다. 그 명확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츠키시마는 더욱 그녀에게 다가갔다. 두 번째 목격은 우연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 스가와라 선배!”

 

오래간만이지?”

 

그것보다 사실이냐고요, 키요코씨와의 관계!”

 

, , 그렇게 되어버렸네?”

 

그럼, , 얏짱은……,”

 

그 얘기는 좀 나중에 하자.”

 

몇 달 만에 찾아온 스가와라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 둘은 단연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고 그에 대해서는 야치나 츠키시마도 불만이 없었다. 그래서 야치에 관한 이야기는 뭔데, 날이 선 눈빛이 코우시에게 닿았다. 어쩐지 말을 돌린 스가와라는 그의 눈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갔다. 목적을 잃은 눈빛은 돌고 돌아 노란빛 머리에 머물렀다. 밝게 빛나던 이전과 다르다. 전부터 한 번씩 느꼈던 이질감, 그날이 느껴졌던 그 얼굴. 츠키시마의 본능이 외쳤다. 그녀가 또 다시 울음을 터뜨릴 거야. 가서 달래줘, 네가 필요할 거야. 머뭇거리던 발 앞으로 작은 신발이 위치했다. 어느새 그 노란 머리카락들은 츠키시마의 눈앞에 위치해 있었다.

위로해 주고 싶어. 그 생각 하나로 츠키시마는 팔을 뻗었다. 달콤하게 그녀를 감싸 안았고 놀란 동그란 눈에는 금세 물기가 가득 서렸다. 야치의 작은 손가락이 그의 옷깃을 그러쥐었고 그대로 얼굴을 묻은 채 꽤나 오랫동안 훌쩍였다. 어쩐지 짜증난다거나 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귀찮고 성가시다는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단지 그녀가 빨리 울음을 그치고 웃어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을 당장이라도 그만두길 바랐다. 그래서 츠키시마는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 너무했어, 그치.”

 

……뒤통수라도 한 대 때려주지 그랬어.”

 

내가 무슨 수로.”

 

고개를 든 그녀는 다시 웃는 얼굴이다. 그 빠른 감정 변화를 츠키시마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고 느꼈다. 다만, 조금 전보다는 나아보이는 그녀의 기분이 썩 싫지만은 않았다.

 

츠키시마군은 무지 친절한 거 같아. 매번 이런 일도 해주고. 분명 좋은 남자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 ?”

 

좋은 남자친구라니 웃기지도 않아, 한심한 생각이라며 고개를 돌리던 찰나에 마침 야치는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밝은 미소를 보이던 참이다. 최근, 3학년들이 졸업한 이후로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진실한 웃음. 그것을 고작 10cm 거리에서 지켜보았다. 츠키시마는 왠지 그녀가 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달과 별이라니 꽤나 괜찮지 않나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내 바보 같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내저었지만 그 웃음만큼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야치 히토카는 다시금 자신을 되찾았다. 조금의 거짓도 없이 반짝반짝 빛나는 이전의 모습 그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츠키시마는 이전보다 훨씬 이상해진 듯싶었다.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본다거나 이유 없이 얼굴을 붉히는 일이 많아졌다. 야마구치나 다른 사람들이 어딘가 아픈 것이 아닐까 걱정되어 물으면 덤덤하게 그런 거 없다며 대충 대답하는 것이 전부였다. 어디까지나 야치가 아니라는 가정 하에. 그녀가 물어오자 그는 눈에 띄게 동요했다. 그리고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전혀 다른 것을 되물었다.

 

넌 이제 괜찮은 가봐?”

 

? 그 사람에 관해서라면 아마도. 행복할 테니까, 이제.”

 

지금 와서 츠키시마는 이런 그녀의 태도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해놓고는 행복해보이니까 괜찮다니, 그게 뭐야. 잔뜩 신경 쓰이게 만들어 놓고는. 그는 자신의 모든 고민과 골칫거리들이 그녀를 향해있다는 사실이 거북했다. 그 미묘한 감정이 자꾸만 그녀를 원한다는 사실이 도저히 알 수 없어서 화가 났다. 츠키시마는 이 복잡한 마음의 정의를 몰랐다. 그것을 표현해낼 방법 역시 몰랐다. 자신을 자꾸만 궁지로 내모는 감정에 단지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바보 같아. 멍청한 짓이야. 그래선 아무것도 되지 않잖아.”

 

그 말은 흐릿한 달빛을 향해 날아갔다.

 

별 다른 일 없이 매일이 지나갔다. 이유 없이 그녀를 몰아세운 이후로 츠키시마는 오히려 곧잘 그 이외의 것들에 집중하여 지냈다. 진즉에 히토카를 밀어내고 잘라냈다면 이렇게 고민하고 힘들어 할 일도 없었을 걸, 괜히 사서 고생했네. 자신의 어딘가 깊이 묻힌 감정을 그는 아마 평생 모르고 살 것 같았다.

무료한 하루는 빠르게 흘렀다. 이제 그 고교시절은 한 줌의 모래 정도. 꽉 쥐어봤자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릴 뿐이다. 그 가운데 묘하게 남은 노란빛깔은 가끔씩 그에게 강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던 도중 히나타의 문자를 받았다. 동창회. 츠키시마는 한참이나 그 글씨를 바라보았다. 선배들이랑 카게야마랑 히토카도 온대. ‘히토카도.’ 한 번 쯤 가는 것도 괜찮겠지, 별로 바쁜 것도 아니고. 재밌게 보냈잖아, 배구 덕에. 괴짜 콤비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궁금하고. 결국 그 핑계들로 덮고 싶었던 것은 그녀의 이름 세 글자란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끝끝내 모든 것들을 부인하며 추억 속으로 발을 들였다.

 

, 츠키시마! 늦었잖아!”

 

저 까칠한 안경은 도대체 왜 불러낸 거야?”

 

까칠한 안경이라니! 성격 나쁜 제왕님 보다는 500배 낫다고!”

 

야마구치. 그만 해.”

 

, , 미안 츠키!”

 

츠키시마는 얌전히 앉았지만 그의 눈동자는 바쁘게 오갔다. 사람들 속에서 찾길 바라는 간절한 무언가. 아마도 그는 밝은 노란 머리카락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눈 속에 가득 찬 그 황홀한 빛을 기억하고자 연신 눈을 깜빡거렸다. 이야깃거리가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래간만에 마주친 그녀를, 본능적으로, 여러 번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야치, 결혼한다고 그랬지?”

 

그래서인지 그 말에 퍽 놀라버렸다. 갈 곳 잃은 동공이 맞은편의 여자아이에게 머물렀고, 무심한 그 눈길에 응당 걸 맞는 눈빛이 되돌아왔다. 그녀가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 츠키시마는 웃었다. 그녀가 알아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야마구치 쯤 되어주지 않으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옅은 웃음이었다만, 그는 필요 이상으로 웃어보였다. 마음이 아픈 정도가 아니다. 얻어맞은 곳을 자꾸만 때려 덤덤해진 통증은 덧없이 두근거렸다. 과거 자신이 끔찍이도 싫어하던 그 거북한 감정이다. 울렁거리는 속을 들키지 않으려고 츠키시마는 애써 태연한 척 숨을 골랐다.

덧없이.’

머릿속이 온통 그녀와 관련된 생각으로 가득 찼다.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는 지는 들리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웃어 보인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오늘 일은 없었던 일로 해 줬으면 좋겠어.’

 

다 알고 있었으면서, 너무했어, 그치.’

 

츠키시마군은 무지 친절한 거 같아. 분명 좋은 남자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그 사람에 관해서라면 아마도. 행복할 테니까, 이제.’

 

그제야 명확해졌다. 그날의 모진 말들은 모두 자신을 향한 말이었다. 그녀가 자꾸만 신경 쓰인 이유, 그 울음을 지나칠 수 없었던 이유, 자꾸만 지켜보고 곁에 있고 싶었던 이유, 지금 느껴지는 이 저릿한 통증의 이유.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졌다. 그럼에도, 모든 사실을 알아버렸음에도, 그녀가 행복하다면 아무래도 괜찮다니. 예상을 한참이나 빗나간 결론이다. 상상한 것 이상의 감정이었다. 츠키시마가 그것을 깨달은 것은 이미 한참이나 봄이 지나버린 계절. 그저 한 때 저보다 소중한 사람이 있었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마도 네가 나의

 

그런대로 잘 됐네, 야치. 축하해.”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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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다이스가] 열아홉.

연성질/안녕큐 2016. 2. 29. 00:03

*메아리님의 열아홉(https://youtu.be/rknGGxWfiWM)’ 보고 쓴 3차 연성입니다.

*과거날조가 있습니다. 캐붕과 저퀄에 주의하세요!

 

우리는 종종 사랑해줘라는 말을 사랑해라는 말로 대신하곤 한다.

 

다이치, 그 말 진심이야?”

 

비극은 그렇게 출발한다.

 

 

 인터하이 예선, 타나카와 부딪힌 이후 눈을 뜬 곳은 불편한 침대 위였다. 갑작스럽게 눈으로 들어온 빛이 강해 인상을 찌푸렸다. 어쩐지 주변이 온통 하얬다. 크게 내 이름을 부르는 스가의 목소리가 확실히 의식을 깨워주었다. 병원인가, 쓰러져버렸구나. 그렇다면 경기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닥쳐 들어온 부모님 탓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염치로 이곳에 있는 거니, 우리 아들이 이 꼴이 된 걸 보고도 네가 그 곳에 서 있을 수 있니? 스가를 다그치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골이 울렸다.

 

 “죄송합니다.”

 

 어색하게 웃은 스가와라는 고개 숙여 인사를 뱉은 뒤 문을 향했다. 나중에 올게, 그 말을 끝으로 시야 밖으로 벗어났다. 머리가 약간 지끈거리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가벼운 뇌진탕,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고 상태가 많이 호전된 이후에는 배구를 계속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다소 어지러운 증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금세 나아질 것이라고, 하루 이틀 정도가 지나면 퇴원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다행이야, 아직 할 수 있어, 배구. 봄고 대회 때까지는 반드시 다 나아서 함께 해야지, 마지막 경기까지.

 

그딴 배구 진즉에 때려치우라고 했잖니. 왜 꼭 이런 꼴을 보게 만들어!”

 

할 만큼 한 것 같구나, 이제 학업에 조금 더 힘 써야하지 않겠니.”

 

 속이 울렁거렸다. 먹은 것도 없는 주제에 모두 게워낼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말들을 기다리고 준비하며 매일을 보내왔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기를 바랐다.

 

 어린 시절, 몸이 약한 것을 걱정한 부모님은 내가 배구를 배우도록 하셨다. 취미라고 할 것이 배구밖에 없어서 인지 꾸준히 했던 것이 중학교 때에, 학교 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즐겁다고 생각했다. 시합에 나가는 것은 다칠지도 모르니까 안 된다고 하신 부모님 몰래 경기를 했고, 이겼을 때 느낀 그 황홀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탐탁지 않아하는 부모님을 뒤로 한 채, 카라스노에 들어갔다. 이 역시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이른 아침마다 일어나 연습을 하는 것이 꽤나 행복했다.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학년 봄고 대회가 끝나고 더 이상 내가 아는 카라스노는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부모님은 나와 배구를 끊어냈다.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은 다르니까, 나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에, 놀란 듯 보이던 스가는 매일같이 나를 찾아왔다. 입부한 이후로 늘 함께였고, 같은 마음이란 것을 확인한 이후에는 친구 이상의 어떤 것을 간직한 사이였다. 그런 그가 부탁했기에 단순히 흔들렸던 것일까, 사실 답은 이미 알고 있다.

 

다이치, 배구 계속 하자.’

 

?’

 

함께 하고 싶어, 다이치랑 하는 배구가 좋으니까.’

 

, 무슨 소리야?’

 

당연한 거잖아! 사랑하는 사람이랑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은 건.

다이치는 안그래?’

 

나도 그래. 나도 너랑 함께 하고 싶어.’

 

 사랑하니까. 배구도, 너도.

 

 부모님께 3학년에도 배구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한 것은 내가 아닌 스가와라였지만, 계속해서 코트에 서 있고 싶다고 강하게 느꼈다. 부모님이 반대했던 것은 잠시 뿐, 나와 스가의 완고한 태도에 그들 역시 손을 들었다. 단순한 취미였던 것이 시간이 지나며 사뭇 달라졌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부모님의 기대보다 배구에 애정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지금의 나는 배구가 생각 이상으로 소중하게 되어버려서, 그래서, 어쩌면 이번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믿음이 어긋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만, 이번에도 지켜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봄고까지 함께하기로 했잖아,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게, 그렇게 돼버렸네.”

 

혹시 아직도 몸이 좋지 않으신 겁니까? 예선까지는 아직 꽤나 시간이 남았으니까 연습량을 줄이고 조금씩 회복해가면 괜찮지 않을까요?”

 

, 다이치선배.”

 

기둥이 되어주던 사람이 갑자기 빠지는 건 조금 걱정 되는데, 사와무라, 꼭 그만둬야하는 이유라도 있는 거냐?”

 

그냥 개인적인 사정입니다. 스가가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그리고 몸이 안 좋아서가 아니니까 자책하지 마, 타나카.”

 

 집으로 돌아가기 이전에 스가와라가 찾아왔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내가 뭔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나는 거기까지만 듣고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별 거 아냐, 사소한 일인 걸. 소문 때문이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그의 말에 그런 거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거 들었어? 배구부 얘기.’

 

, 주장 때문에 기권패한 거?’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리는 바람에 완전 난리 났다면서!’

 

그러게, 이번에는 그런대로 성적이 좋아서 전국까지 가버리는 건 아닐까 기대했는데. 글러먹은 거지, 주장 때문에.’

 

너네 뭐야?’

 

가자, 스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너네. 그런 거 아니야, 다이치 탓일 리가 없잖아. 그딴 헛소리 짓거리지 말라고.’

 

 나는 그렇게 사소한 일 때문에 도망쳐버리는 겁쟁이일 뿐인 걸. 이런 식으로 책임회피라니 완전히 주장 자격 실격이지, .

 

 한심한 모습에 실망할 것만 같아서 스가에게도 말 못할 비밀이 생겼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 겉으로는 내 탓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나를 원망하고 있다면 어떨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미안해졌다. 배구부의 모두를 볼 자신이 없었다. 다음 날, 매일처럼 이른 아침에 학교에 도착해서 더 이상 체육관을 향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고는 계단을 올랐다. 복도의 활짝 열린 창문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속삭이듯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나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 같았다.

 

다이치!”

 

, 스가! 너 연습은 안 가고 왜..”

 

이유같은 거 묻지 않을게, 사람마다 괴로운 일이 있을 수 있는 거니까. 그치만, 그치만 다이치 그 말 진심이야? 진심으로 그만두고 싶은 거야? 그런 게 아니라면 나랑 아사히가 어떻게 해서든……!”

 

진심이야. 미안해 스가와라.”

 

한심해, 한심하다고 다이치. 나는 왜 너 같은 사람을 사랑했을까.”

 

 

 한 번씩 눈을 감으면 3년 전 그 상황으로 돌아가곤 했다. 나는 그의 물음에 답하지 못했고 그는 상처 받은, 실망이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손을 뻗으면 사라졌고 그렇지 않으면 돌아서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끝까지 봐야만 했다. 죄책감을 가졌던 그 때 당시의 나를 욕할 처지는 아니다. 여전히 나는 스가와라라던가 다른 배구부원들 모두와의 연락을 끊은 채로 살고 있으니까. 그러나 매일같이 기도한다. 만약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가 다시 한 번만 스가와라의 앞에 설 수 있다면, 다른 대답을 했을 것이라고. 사실은, 진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이렇게 내 눈 앞에 스가와라가 있어만 준다면,

 

시만. 뭐라고? 


다이치!”

 

 , 꿈인가. 나 아직 잠을 자고 있던 중이었나.

 

이유 같은 거 묻지 않을게.”

 

 그래, 역시 그랬구나. 아니라면 내 앞에 다시 스가와라가 서 있을 리가 없잖아.

 

한심해, 한심하다고 다이치. 나는 왜 너 같은 사람을 사랑했을까.’

 

 그렇게 말해버렸는데, 무슨 생각으로 나를 다시 보겠어. 그렇지? 그치, 이건 꿈인 거지? 늘 꾸던 꿈인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실감이 날까.

 

사람마다 괴로운 일이 있을 수 있는 거니까.

그치만, 그치만 다이치 그 말 진심이야? 진심으로 그만두고 싶은 거야?”

 

 열린 창문 틈새로 바람이 불어왔다. 선선한 바람이 스가와라의 향을 코언저리에 싣고 왔다. 꿈에서 향기? 착각인가? 무의식중에 손을 뻗었다. 그 때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옅게 떨리는 그의 손을 쥐었다. 사라지지 않았다. 허상이 아니었다. 매일같이 꾸던 꿈과는 다르다. 눈물이 고여 벌겋게 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스가와라는 내가 마지막으로 본 그 모습이 아니다. 무언가 변하고 있었다.

 

비극은 이미 출발했어. 돌아갈 수 없어,”

 

나는 더 이상 소년이 아니니까.

 

 사랑했어. 아니, 어쩌면 사랑받길 바란 거야. 부모님께, 배구부 녀석들과 배구에게, 그리고 너에게. 감히 사랑해달란 말을 할 수 없어서 나 자신이 사랑한다고 내뱉을 수밖에 없었어. 끝끝내 도착한 곳에서 더 이상 내가 바란 것들이 내게 사랑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려서, 그래서 도망쳤어, 나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고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몰라.

 

 내가 내뱉는 말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서 있었다. 나 역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지금이라면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하지 않았을 때의 결말은 정해져있지만, 저질러버린 후의 결말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롭다는 것. 내가 모르는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두려워 도망쳤지만, 내게 자격이 있다면, 이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나의, 우리의 비극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그 중심에 선 한 사람 뿐이다. 그것을 끝낸 영향이라던가, 사실은 그 비극이 최선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관한 두려움을 스스로의 힘으로 뿌리쳐내야만 비로소 끝이 난다. 과거, 도망쳤던 자신을 저주하던 수많은 날들을 뒤로 다시 한 번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이유는 모르겠다만, 나의 변화가 모두의 비극을 거두어낼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열아홉의 순정을 꿈꿀 수 없다. 내게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 따위는 없고 우연히 소설 같은 일을 겪고 있는 것 뿐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도망쳐서 얻은 괴로움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사실 이 모든 것이 꿈이었다고 한들, 나는 속였던 진심을 말할 것이다. 그 당시를 바라볼 수는 없다. 셀 수 없이 많은 시간들이 지나갔고, 나는 그저 그 추억 중 한 부분에 서 있을 뿐이다. 그 결과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지, 내가 다시 한 번 과거에서 살아가는지에 대한 것은 미지수이다. 과거를 바꾼 대가를 혹독하게 치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정말로 내가 그 후회를 되돌릴 수 있다면, 지금의 선택으로 무언가 달라질 수 있다면, 다시 한 번 사랑해,’라는 말을 할 용기가 있다면,

 

 열아홉,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도……,

 

나도 아직 하고 싶어!”









너무 멋진 주제를 망쳐버린 것 같아서 죄책감이 쩔어줍니다ㅠㅠ 

짠내나고 찌질한 다이치가 보고싶었을 뿐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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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후타카마] 어두워 길을 잃고는 했다.

연성질/안녕큐 2016. 2. 28. 00:12

*타임버스AU입니다.

*후타카마이지만 카마사키 안 나옴 주의, 캐붕주의

 

재미있었어, 함께 배구 한 거. 골칫덩어리들이긴 했지만.’

 

우승 한 번 못한 배구가 뭐가 즐겁다고. 혹시 고난과 역경을 즐기는 타입?’

 

후타쿠치 이 자식!’

 

참아, 카마사키! 졸업이잖아, 성인이라고!’

 

그래도, 선배랑은 아쉽네요, 꽤나.’

 

, 미쳤냐? 뭐 잘못 먹었어?’

 

당연한 거잖아요, 파트너이기도 하고, 한결같게 반응해주는 선배가 없어지는 건데. 저로서는 손실이 크다구요.’

 

말리지마, 내가 졸업하기 전에 반드시 저 자식을!’

 

, 아오네!’

 

 서로가 파트너란 사실을 알아차리고 나서 50에 멈춰선 숫자는 그 이상 오르지도, 줄어들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런대로사랑했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학교, 도쿄였던가. 멀리도 갔네, 나 보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 그럼 좀 더 귀찮게 굴지도 모르는데, 내가. 조금은 걱정되었다. 멀어지는 것이 육체의 거리뿐이 아니게 될까봐. 두려워한 쪽이 숫자가 줄어들어 맞이하게 될 결말인지, 빛을 잃어버린 이후의 세상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카마사키 선배가 있는 곳만이 아침이었다.

 

 이미 짝을 찾은 선배들, 혹은 여전히 1에서 머무르는 아오네를 보면서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는 꽤나 공포였다. 숫자가 50을 넘어서고 조금씩, 조금씩 작아지는 것을 보면서 조바심도 꽤나 났다. 이런 남탕에서만 뒹굴다가 죽어버리는 건 정말 억울할 테니. 그러나 역시, 근처에 있을 파트너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오늘도 줄어들었을까, 역시 배구부원이 맞는 걸까. 무의식중에 손목을 확인하곤 했다. 이따금씩 카마사키 선배와 눈이 마주쳤지만, 그저 연습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당연히 모니와 선배의 파트너라고 생각했던 그가, 조용히 내게 찾아와 길 잃은 동공으로 물었다. 혹시 줄고 있? 고개를 끄덕였을 때 선배의 그 난감한 표정은 여전히 잊을 수가 없다. 파트너가 나라서 실망했을까. 하긴, 늘 제멋대로에 사고만치는 건방진 후배와 그에 놀아나는 성격 나쁜 3학년이 파트너라니. 우스운 일이잖아. 그래도, 무엇 하나 제대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파트너가 그 사람이라서 분명 다행이었다. 이따금씩 이유 없는 시비와 어리광도 받아주던, 어쨌거나 내게는 길을 밝혀주는 빛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러나 신은 저보다 밝은 것을 질투하고, 앗아가려 한다. 나와 그 사이에 있어서, 카마사키 선배는 지나치게 눈부신 광원이었기에 쉽게 사라져야만 했다.

 

‘49.’

 

 숫자가 줄어들어 놀랐던 것은 잠시 뿐이었다. 그것은 그저 그 다음 소식에 대한 충격을 조금이라도 흡수해주기 위한 에어백 같은 것이었으니까. 갑작스런 암전에 적응할 암순응 정도로 생각되었다.

 

‘48.’

 

 사고라던가, 의미 불명의 죽음은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이유 없이 자살을 했다고. 같잖은 개소리에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분명 누군가 해친 거겠지, 자살이라니 그 쪽보다는 욱하는 성질에 누군가의 미움을 샀다는 편이 훨씬 설득력 있다고. 그 젠장 맞은 성격, 어쩐지 불안하더라. 반드시 찾아낼 거야, 남은 시간 동안에.

 

‘40.’

 

 가망이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들 그만두라고 나를 말렸다. 이렇게까지 해서 그 결과를 뒤집고자 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유가 있을 리가 없잖아, 죽은 사람이 당신 파트너라도 이성적이게 넘어갈 수 있겠어? 단순한 문제가 아니잖아, 나까지 죽어버리면 그 사람은 정말 그저 세상에 비관적이었던 부적응 자가 되어버리는 거잖아. 씨발, 그렇게 내버려둘 수 있겠냐고. 모니와 선배가 거들었다. 그래서 카마사키 선배를 죽인 사람을 찾아내면 어떻게 할 건데? 난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지.

 

‘20.’

 

 메일이 왔다. 그것도 죽은 선배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읽지 않았다. 범인을 찾아내는 것도 멈추었다. 더 이상 범인을 찾아내어도 카마사키 선배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남은 시간들마저 그 사람을 위해서 쓰기에는 내가 조금 가엾다고 느껴서 일까. 모니와 선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20일간은 카마사키의 파트너가 아닌 후타쿠치로 살아, 범인이라면 내가 찾아볼게. 당신의 파트너가 내가 아닌 그였다면, 더 행복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5.’

 

 카마사키 선배의 소식을 처음 들었던 날을 떠올렸다.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들어있는 기분이었다. 코가네는 항상 이런 상태겠지. 어땠더라, 조금은 슬펐을까. 사실, 나는 그저 숫자가 줄어든다는 두려움만 있었던 거 아닐까. 그렇다면 애써서 그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려 했던 이유는 내가 선배 때문에 죽어야만 한다는 원망 때문? 역시 그랬던 것일까.

 

‘1.’

 

 평온하다. 어제와 같은 날이 반복되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배구를 했고,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 아침 아무렇지 않게 눈을 뜰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확인하지 않은 메일이 거슬렸지만, 그것을 볼만한 용기는 없었다. 죽은 사람에게서 온 메일이라니, 누가 봐도 죽기 직전 심경을 담아놓은 유언장 따위일 것이 분명하잖아. 그가 죽은 49일째 되는 날, 하루 뒤에는 같은 운명을 걷게 될 그 날, 갑작스레 반짝인 빛이 자신을 따르라고 말해왔다. 죽기 직전의 변심 정도라고 해둘까, 원래 사람은 쉽게 마음이 변하곤 하잖아. 어떤 대단한 말이 적혀있나 한 번 보자고. 반짝이며 메일을 확인하라는 그 표시를 향했다. 잠시 망설이다 아직 읽지 않은 것을 클릭했다. 세상은 삽시간에 밝아졌다. 수 많은 날들, 그 어둠 속에서 헤매이던 내가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열두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더 이상 이곳에는 머무를 수 없겠지. 다음 생이란 게 있다면, 카마사키 선배 따위 만나고 싶지 않아. 이건 진심이라고. 두 번 다시 당신 같은 사람은 만나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알겠죠. 이렇게 제멋대로인 사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단 뜻입니다. 

 




제목 こめんねしてる(미안해사랑해.)


사실 인터하이가 끝난 후부터 조금 아팠달까, 겁쟁이라 좀 더 일찍 말해주지 못했어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더라모니와들에게는 모른 척 해달라고 부탁했어나를 미워해줘용서할 수 없을 만큼 원망해줘그래도죽기 전 그 날만큼은많이 억울하겠지만 이해해줘난 네가 많이 보고 싶을 거란 말이지약골자식이라 미안하다빌어먹을 후배 녀석.




 죽어서도 젠장 맞은 사람이네요, 빌어먹을 선배님.”


 비로소 길을 찾았다. 그 동안 뒤는 돌아볼 생각조차 안 했으니 몰랐던 것이었다. 늘 그 곳에 있었는데, 당신이 있는 곳은 이렇게 빛나고 있었는데.










도대체 뭘 쓰려고 했던 거냐 나녀석아!!!!!ㅠㅠㅠ

파트너를 잃어버리고 방황한느 후타쿠치 (19세)가 보고싶었는데

후... 제 뇌는 자결합니다. 신속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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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쿠로켄] 빈자리

연성질/안녕큐 2016. 2. 26. 00:39

*캐붕과 저퀄주의.

*3학년이 졸업한 이후의 이야기 입니다.

 

‘켄마 빨리 일어나 연습 가야지.’

 

‘5분만..’

 

‘분명 야쿠에게 엄청나게 잔소리 들을 거라고!’

 

 몸에 익은 익숙한 상황이 재생되었다. 80%이상의 확률로,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잔소리는 지금 네가 하고 있어, 쿠로. 베개로 귀를 틀어막았다. 어딘가 이상한 소음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쿠로의 목소리도 아니고, 나의 목소리도 아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곁에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사람의 소리라고 하기 어려운 소리, 알람음 정도였을까. 눈앞의 그가 어딘가에 빨려 들어가 듯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컴컴한 세계에서 눈을 뜨자, 지나치게 높은 명도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늦겠네, 화내겠다.

 

…도대체 누가.

 

[켄마, 이번 합숙 때 볼 수 있는 거지? 그치?]_쇼요.

 

그동안 얼마나 지났더라. 인터하이를 위한 합숙 이야기가 오가는 걸 보니, 쿠로들이 졸업한지도 두 달하고 몇 주는 더 지났나 보네. 명확한 날짜 개념이 사라졌다.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날들이기도 했다. 배구를 하자고 내게 끈질기게 달라붙던 사람이 성인이 되어버렸다. 그는, 어쩐지 성숙하면서도 아이 같아서, 피터팬이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배신이랄까 조금은 허전하고 서운한 기분이다. 멍청한 생각이다. 한심한 감정낭비. 내가 이런 느낌을 받는다고 그가 다시 고등학교에 돌아오는 것은 아니니까.

 

“켄마! 늦다고! 벌써 연습 시작했어!”

 

“어어, 미안.”

 

“쿠로오씨가 없으니까 켄마씨는 매일 지각이네여. 어쩌면 둘은 최강 궁합 파트너였을지도 몰라여!”

 

‘당연한 거 아니야? 우리만큼 잘 어울리는 콤비가 어딨다고! 어떠냐, 부럽지 리에프!’

 

“그런 멍청한 소리 할 시간 있다면 리시브 연습이나 해둬.”

 

 바보 같은 것을 떠올려 버렸다. 어쩐지 귓가에 웅웅거리듯 울리는 소리가 없으니 어색한 것도 같고. 늘 내버려두길 바랐는데, 막상 이렇게 남겨지니 그의 빈자리가 크게만 느껴진다. 중학교 때에는 도대체 어떻게 버텼더라. 그 때는 시끄러운 사람이 졸업했다고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몸 이곳저곳을 훑었다. 불쾌하게 오싹한 기분이 싫어 팔을 비볐다. 쿠로가 있었다면 분명 감기냐고 엄청나게 귀찮게 굴었을 거야. 슬핏 웃음이 흘러나왔다. 호들갑 떨면서 뇌라던가, 척추라던가 하는 오글거리는 말을 내뱉고 병들어선 안 된다고 말했겠지. 야마모토의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지금, 이 현실 속 내 옆에는 쿠로오가 없다.

 

 벌써 골든위크 합숙. 그가 없는 시간은 빠르게도 지나간다. 무료하고 지루한 시간은 더디다고 들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게임을 하는 것도 지겹다. 쿠로가 없는 배구는, 다른 것들에 비해서는 양호한 편이지만, 이전보다 훨씬 귀찮고 성가시다. 그래도 오늘은 쇼요를 만나니까 조금은 기분 좋아질지도.

 

“켄마!”

 

“어어, 쇼요.”

 

‘넌 그 카라스노의 작은 녀석만 유난히 좋아한다고.’

 

 그야 재밌으니까. 쿠로만큼이나 재밌는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이 신기하니까. 그러나 뭔가 잃은 것 같은 빈자리는 여전했다. 쇼요의 긍정에너지도 어쩔 수 없는 게 있구나. 그런 게 쿠로와 관련된 일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이렇게 기분이 우울할 때면 귀신같이 알아서 애플파이 먹으러 가자고 해줬는데, 지금은 내게 그런 말을 해 줄 사람이 없어. 멋대로 결정내린 것은 이렇다. 적어도 1년 동안은 일일이 말해주어야만 다른 사람들이 나의 상태라던가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 테니까 그 일이 귀찮을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쿠로가 졸업한 이후, 그동안 내가 느낀 불편한 감정은 그 때문이다. 내 판단은 거의 정확한 편이라고 했으니까, 이번에도 분명히 맞을 거야. 분명히―,

 

“늦었잖아, 켄마. 쿠로오씨가 기다리다가 목이 빠지는 줄 알았다고.”

 

어라―?

 

“잠 못 잤어? 내가 밤에는 게임 하지 말라고 분명히 얘기했잖아.”

 

…쿠로?

 

“근데, 무슨 생각해, 켄마?”

 

“…조금 더 늦어서 쿠로의 목이 빠졌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

 

“너무하잖아, 오랜만에 만나서!”

 

 응어리진 것이 녹아 사라졌다. 어떤 것으로도 메울 수 없던 깊은 골 사이로 무언가 꽉 들어찼다. 새로운 게임을 산 것도, 쇼요와의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닌데 조금은 두근거리고 찡한 기분이다.

 

“몸 풀게 토스 올려줘! 너무 오랜만이라 나랑 하던 감을 모두 잊은 건 아니지, 켄마?”

 

 손을 떠난 공이 느릿하게 날아갔다. 쿠로가 큰 키로 점프하여 공을 노리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공이 바닥을 강타하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아주 잠시 뛰었는데 숨이 가쁘다. 최근 너무 운동에 소홀히 해서 지친 걸까. 아아, 조금 다르다. 이렇게 주변이 일렁인 적은 없었다. 체력이 다했다고 마치 세상에 혼자 남은 듯 느껴지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그 울렁거림은 한 곳에서 파생되었다. 쿠로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걸어왔다.

 

“나 내년에 꼭 쿠로가 있는 학교에 갈 거야. 그곳에서 함께 배구하고 싶어.”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그는 이내 웃어보였다. 우리가 함께 지내던 시간동안 보았던 것 중에 가장 멋있는 모습으로.

 

“그거 끝내주네!”

 

+)

 

“켄마, 작년 골든위크 합숙 기억나?”

 

“쿠로가 팀 과제하는 거 잊고 미야기현에 놀러왔다가 다음 날 잡혀갔던 거?”

 

“…그런 것만 기억하지 말고. 우리 학교에 오겠다고 그 날 말했었잖아, 실제로도 와버렸고.”

 

“응.”

 

“갑자기 왜 이야기했던 거야, 그거?”

 

“오래간만에 쿠로랑 배구하는 게 너무 즐거워서, 계속 함께 배구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쿠로는 의외로 자기 일에 둔하니까 말하지 않으면 모를 테고.”

 

―그리고 항상 함께이고 싶어서.

 

“쿠, 쿠로?”

 

“크흡…. 감동이잖아.”

 

바보같아.


 그치만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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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츠키히나] 滿月 (만월).

연성질/안녕큐 2016. 2. 21. 20:17

*히나타와 츠키시마가 머무르는 곳은 정신병원입니다.

*캐붕과 자살에주의하세요!



“어라? 너구나, 신참?”


 히나타 쇼요. 츠키시마 케이가 그를 처음 봤을때, 도대체 왜 이런 곳에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맑은 웃음으로 츠키시마를 반기는 히나타의 모습은 햇살과도 같았다. 눈을 감아도 저를 비춰오는 밝은 빛에 케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마도, 그가 간절히도 바랬던 조용한 병원살이는 실패인 것 같았다. 혼자뿐인 병실에서 따분했는지, 제 옆에 꼭 붙어서 이것저것 떠들어대는 모습이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조용한 방을 원했던 츠키시마에게는 굉장한 낭패였다. 이곳에서도, 나만의 공간이라던가 시간을 갖는 것은 무리겠네. 그는 커튼으로도 미처 가려지지 않는 햇빛을 피해 침대 위를 올랐다. 그러나 어딜 향하든 빛이 따라왔다. 이렇게나 밝은 곳은 17년 간 처음, 낯선 아침이 츠키시마에게는 버거웠다.


 “츠키시마는 여기 왜 온 거야? 무슨 문제가 있어?”


 “알 거 없잖아.”


 끈질기게 구는 히나타의 머리를 밀어내며 헤드폰을 쓴 그는 생각했다. 내가 왜 이곳에 왔더라. 정확히, 이곳으로 버려졌다는 표현이 옳았다. 츠키시마의 집은 이름있는 기업가였다. 그 주변은 항상 무언가 얻기위해 모여있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케이에게는 형이 하나 있었다. 케이는 그를 존경했다. 그의 형은 때로는 은은하게, 밝고 영롱하게 츠키시마를 비춰주고는 했다. 고고하고 우아한 달은, 태양빛에 감춰지는 동안 남몰래 상처를 남겼다. 조금씩 작아지던 위상이 츠키시마에게 비밀을 들켰던 날, 달은 무너졌다. 츠키시마는 그의 역할을 대신하기에 부족했다. 츠키시마의 아버지는 원망을 케이에게로 돌렸다. 그래서 보다 세상과 단절된츠키시마 케이가 더는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공간이 필요했다. 시끄럽고 부산한 공간보다는 이 편이 낫다고, 케이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에게 깊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츠키시마라는 성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아무도 그에게 츠키시마 아키테루’에 대하여 묻지 않았다. 남에게 지나치게 간섭하는 멍청한 인간이 존재하지 않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옮긴 병동에서 이런 사람을 만날 줄이야. 저의 헤드폰을 벗기는 손길에, 귀찮음이 잔뜩 묻어나는 표정으로 히나타를 돌아본 츠키시마는 세상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그 밝은 태양이 오로지 자신만을 비추었다.


 “응? 왜 온 건데, 츠키시마!”


 이상한 감정. 깊은 곳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 같으면서도 차분했다. 츠키시마는 그 정의할 수 없는 느낌을 애써 감추며 도망쳤다. 히나타가 없는 곳, 다시금 캄캄한 음지로. 그러나 그는 생글거리며 잘도 츠키시마를 찾아보였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그들은 항상 붙어있게 되었다. 물론, 일방적으로 히나타가 다가간 상태였지만, 어느 순간 부터는 츠키시마도 도망치는 것을 멈추었다. 끈질기게 붙어있는 그가 더는 귀찮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츠키시마는, 다소 혼란스럽지만, 이런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그날따라 츠키시마는 잠에 들기 어려웠다. 벌레들이 짝을 찾기 위해 내는 소리를 듣고, 어쩌면 본능적으로 저의 짝이 사라졌음을 깨달은 것일지도 모른다. 뒤척이기를 여러번, 눈을 떠 보니 건너편 침대가 비어있었다. 츠키시마는 일어서 불빛을 따라 걸었다. 이유는 알지 못했다. 그저 반쯤 잠든 정신이 몸을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이윽고, 히나타가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밝은 그곳에 도착했다.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얇은 쇳덩이가 바닥과 부딪혀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두시간 전만 해도 하얗던 환자복이 붉었다. 히나타는 덜덜 떨며 그를 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어떤 목소리도 밖을 향하지 않았다. 고요한 새벽을 깨울 수 있는 것은 수탉의 울음 뿐이다. 츠키시마는 말 없이 몸을 돌렸다. 방으로 돌아와 몸을 눕혔다. 


 “저기, 츠키시마. 그건 말이지…”


 “자신의 몸을 찌를 바에야 차라리 남을 괴롭히는 편이 낫잖아. 한심해.


 내뱉고도 왜 자신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츠키시마였다. 피투성이가 되었던 것은 히나타의 손목인데, 어쩐지 자신의 팔 전체가 욱씬거렸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바보같아. 인상을 쓴채로 돌아서 누웠다. 다음날, 히나타는 츠키시마를 찾지 않았다. 케이는 분명 귀찮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눈으로는 계속해서 히나타를 찾고 있었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아, 볼 수가 없었다. 해가 사라졌기에 어디에도 빛이 없었다. 츠키시마에게 지독한 밤이 돌아왔다. 늘 겪어온 어둠이 이번에는 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 츠키시마는 가장 밝은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가장 높은 곳, 가장 태양과 가까운 곳. 항상 단단히 잠겨있던 곳이 오늘은 열려있었다. 희미한 빛이 새어나와, 츠키시마는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어두워졌기에, 옥상 위를 은은하게 적셔준 것은 달빛이라고 생각했다. 따스한 느낌에, 이 근처 어딘가 그가 찾는 태양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옅은 빛에 젖은 하늘이 너무나 아름다워 가만히 머물렀다. 태양이 있음에 달이 빛난다. 더욱 밝고 선명한 빛을 보낼수록 달은 환하게 밤을 비춘다. 츠키시마는 그 희미한 달빛이 의미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언제나 밤인 날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아침이 찾아온다. 사람들이 밤에 잠을 자는 이유는, 그들에게 어둠을 견뎌낼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츠키시마는 다르다. 그의 세상은 언제나 밤이기에, 어두워지면 비로소 눈을 뜬다. 어디에도 달빛이 어리지 않는다. 그 날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보고 싶다만, 광원을 잃은 위성은 더 이상 빛나지 않는다. 츠키시마 역시 그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밤 하늘 아래, 무언가를 기다린다. 동틀 무렵의 새벽 내음을 맡으면, 슬며시 침대로 향한다. 아마도 그에게 더 이상 아침은 오지 않는다. 


 “보고싶어.”


 짜증나게 눈부시던 해가 다시금 만나고 싶어. 연약한 음성이 흩어졌다. 어둠이 깔린 곳에, 츠키시마는 홀로 서 있었다. 창문을 지나 환한 달빛이 흔들거리는 그를 비춰주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달이 가득 찼다.







+)

다 쓰고 나니까 제멋대로 아무 말이나 지껄여 놓은 것 같네요ㅠ 

혹시라도 이해가 가지않으신다면, 

히나타와 아키테루 두 사람의 자해와 자살,

 그리고 그것을 모두 목격한 케이 정도로 봐주시면 됩니다!

 결말은 몰살! 고멘츳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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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오이이와] かみ (신).

연성질/안녕큐 2016. 2. 21. 03:45
*알디님(@Neillin_rd)의 2차연성 '레스큐일지-14'를 모티브로 한 3차연성입니다.
*오이카와 안나옴 주의. 캐붕, 저퀄 주의.

 오이카와. 시끄럽게 매번 힘들다고 찡찡거리기나 하고 하기 싫다, 일이 너무 많다 투정 부리는 것이 고작인 짜증나는 녀석. 농땡이 부리지 말라고. 그러면서도 수술 때에는 사뭇 진지해져 아주 조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렇게나 바쁜데 누워서 뭘 하는 거냐. 한 생명을, 살릴 때마다 함께 기뻐하고 잃을 때마다 함께 슬퍼했다. 오늘처럼 정신 없이 바쁜 날에는 보란듯 모두 살려내고 술이나 한 잔 하자며 웃음지었다. ―이런 피투성이 모습 대신에.

 “이와이즈미..”

 “... 괜찮아. 수술 준비할게.”

 불안감이 엄습했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구해냈다만, 눈 앞의 단 하나를 잃을까봐 두려웠다. 외출하기 전 재수없게 떠들어버린 말이 끔찍하게 후회되었다.

 ‘이와짱, 나 오늘 정말 이상하다구. 꿈에서 죽을 운명이라던가 그런 거 봐 버린 거 같아!’

 ‘죽어버려, 망할카와. 일이 산더미처럼 많은데 연차라니.’

 ‘정말인데 믿어주지도 않고! 이와짱은 나빠!’

 ‘.. 가다 벽이나 박아버려.’

 단 하루였다. 오이카와가 자신이 지켜내지 못한 이들에게 사죄하러 가는 날은 1년 중 오늘 하루 밖에 없었다. 재수 없게도, 하필 오늘, 큰 버스가 사고가 났고 이를 피하려던 작은 승용차가 벽에 차를 박았다. 다행히도 버스 내에는 큰 부상자가 없었지만, 승용차의 운전자는 중태에 빠졌다. 수 많은 날들, 수 많은 사람들 중 하필이면. 잡생각이 머리를 떠다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와이즈미씨, 수술..”

 “어, 들어갈게.”

 구조대원 녀석들이 어떻게든 이어온 생명을 내가 꺼뜨릴 수는 없지. 죽을 운명이란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 보란듯 살려낼 거라고, 망할카와. 살아나면 오늘 내가 한 일의 열 배는 해야할 거다. 알았냐?

 “혈압이 계속 내려갑니다, 맥박 불안정. CPR 실시하겠습니다.”
 
‘누군가는 기적적으로 살아나고 그만큼의 누군가는 돌연 죽어버려. 죽고 사는 것은 결국 신의 뜻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럼 중간에서 의사는 뭘 하는 거지 생각하곤 해.’

 신 따위가 있을리 없잖아. 정해진 운명따위는 없고, 애시당초 그런 것들을 부정하려고 의사가 되었다고, 나는. 자꾸만 그의 몸을 적시는 죽음의 그림자가 두려웠다. 살려내지 못한 환자에 대한 죄책감은 언제나 컸다. 그럼에도 의사를 하는 이유는 살려낸 환자에 대한 기쁨이 그 두세배는 더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느껴지는 생명의 무게가 다르다. 앞으로 더 몇 사람을 살려낼지 모르는 사람이 수술대에 누워있다. 때로는 내게 원동력이 되어주는 사람이 숨도 제대로 못 가누며 죽음과 싸우고 있다. ―가치를 매길 수 있는 생명은 없다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지닌 사람이다. 그런데 자꾸만 눈 앞에 검은 것들이 아른 거린다. 지키지 못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나를 막아선다.

인간의 무력함을 느꼈다. 처음부터 늘 웃으며 활력이 된다던가 하는 그보다는 나 같이 성격 더럽고 재수 없는 새끼를 데려가는 편이 맞을텐데, 분명 무언가 착오가 있는 것이다. 수술을 마치고도 여전히 위태로운 네 곁을 지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있지도 않은 자신의 신을 향해 하염없이 기도를 내뱉는 일 뿐이었다. 신 같은 것은 믿지 않겠다고 떠들어댄 내가 이런 식이라 열받겠지만,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어보라고. 운명이란 것이 존재하고 오이카와가 정말 죽을 운명이라면, 난 보란듯 당신에게 엿을 날릴 거야. 그리고는 그를 살려낼 거라고, 알아 들어?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직 그의 운명이 결정되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말이지.

“.. 이 망할카와 좀 살려주십쇼, 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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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키야마] 당신의 애완동물을 어쩌구 썰.

연성질/안녕큐 2016. 2. 21. 00:43
 *폰작업 저퀄주의 얌굿 캐붕주의
*상풀, '당신의 애완동물을 조심하세요.' 란 작품을 모티브로 잡았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의 고슴도치 인생 5개월. 실수로 츠키시마의 손을 찔러 간식을 주고 사과를 한 일도, 새로운 사료가 너무 맛이 없지만 츠키시마가 나를 위해 사준 것이니까 눈 딱 감고 먹었던 일도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시끄러워, 야마구치."

 "저기.. 츠키스.. 츠키스으.. 츳키?"

 "... 하아?"

 바보! 츠키시마란 발음도 못하고! 사람이 되면 뭐하냐고.. 헉, 사람이라니.. 내가 사람이 됐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내가 갑자기 왜 사람이 되는 거야! 그러고보니 어젯밤 그렇게 빌었던 것도 같고.. 소원이 이뤄졌어. 나 정말 사람이 됐다고!

 "그러니까 네 말은, 저기 저 케이지에서 살던 그 고슴도치 야마구치가 너란 거지?"

 고개를 끄덕였다. 안 믿겠지? 믿지 않을 거야. 어쩌면 사람인 나보다 고슴도치 쪽을 더 좋아할지도 몰라. 그치만 간신히 이뤄냈는데.. 나 이제 쫓겨나는 건가? 그러면 다시는 츠키시마를 보지 못하는 거야?

 ".. 일단 이리와. 옷은 입어야지."

 "츳키..?"

 "그 츳키는 도대체 뭐야."

 "미, 미미, 미안! 그치만 발음이 되질 않아서.. 그, 그런데 믿어주는 거야? 내가 그 야마구치란 거?"

 "진실여부는 나중에 파악하고, 우선은 감기 걸리잖아."

 츠키시마는 내 말에 크게 한숨을 쉬더니, 저렇게 말했다. 지금 나를 걱정해준 거지? 그치? 츠키시마가 나를 걱정해줬어! 사람이 되는 건 좋은 거구나.. 츠키시마가 가져온 옷들은 나에게 다소 컸지만 익숙한 냄새가 잔뜩 베어 있어서 기분 좋았다. 맞아, 츠키시마 냄새구나..

 "옷, 사야겠다. 너무 크네."

 "응? 아냐아냐, 괜찮아! 언제까지나 이런 상태일리도 없고, 나, 그러니까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밖을 나갈 일도 없는 걸!"

 내 말을 들은 그는 작게 웃었다. 나 방금 우스운 이야기를 했던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웃음이었다. 어쩐지 부끄러워 얼굴을 살짝 붉히고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큰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맞네, 야마구치."

 가슴이 철렁 하는 느낌이었다. 자꾸 무언가 뭉클하고 먹먹한 것이 목구멍 위로 올라오려는 듯 했다. 행복감에 젖어 눈 앞도 뿌옇게 변하였다. 당황한 츠키시마가 그만두라며 내 등을 토닥였다. 고마워, 츠키시마.

 "저기 츳키. 나 지금 너무 좋아. 이거 꿈인 거 아니겠지?"

 바, 반대로 말해버렸다! 이를 어쩌지? 어떡해야하지?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나는 꿈 쪽이 더 좋은 걸, 이라고 말해버릴 거라고. 싫어, 그런건!

 "나도 네가 사람인 편이 좋은 거 같기도."

 "츠, 츳키!"
 
 "여전히 시끄러워, 야마구치."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정말, 정말로 행복한 고슴도치야!

_(어젯밤)

 으응? 무슨일이지? 어쩐지 힘 없어보이네, 츠키시마. 우, 우는 거야? 안돼, 안돼. 위로해 줘야만 하는데.. 울지마, 츠키시마. 간혹 츠키시마는 알 수 없는 우울함을 보이고는 했지만 오늘은 유난히 슬퍼했다. 그를 안아주고, 달래주고 싶은데 나는 그럴 수 없다. 제 무릎을 모아 얼굴을 묻는 그의 등을 토닥여주고 싶은데 나는 할 수 없다.

 "... 시끄러워, 야마구치. 이 밤 중에 그렇게 케이지를 두드리면 어떡하란 거야, 멍청이."

 무의식중에 코를 벽에 부딪힌 것 같다. 가까이에서 본 츠키시마의 얼굴은 훨씬 엉망이었다. 눈물이 가득해 붉어진 눈은 아마 내일이면 퉁퉁 부어오를 것이다. 츠키시마는 부드럽게 나를 쓰다듬었다. 지금 보듬어져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데. 아아, 나 정말, 진심으로

 '사람이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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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아오야치] 발렌타인데이 뒷북글

연성질/안녕큐 2016. 2. 15. 20:32
 봉사활동에 다니게 되었다. 후쿠로다니의 엄청나게 미인인 매니저씨가 소개시켜준 곳인데, 도쿄에서 하는 일이라 매주 일요일마다 신칸센을 타게 되었다. 그렇게 예쁜 사람과 함께 봉사활동이라니...! 나, 이번엔 정말 암살 당할지도 몰라. 긴장하며 두리번거렸는데 아직까지는 수상하다던가 무서운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다행이야, 그치만 긴장을 늦춰서는 안돼!

 지하철 문이 열리고 어쩐지 하나 남은 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아서 달려가 앉아버렸다. 헤헤, 꽤 럭키일지도. 옆에서 달달한 밤 냄새가 나 돌아보았다. 크, 크다, 것보다 무서워..! 봄고 대회 때 본 적 있는, 다테 공업의 어마어마하게 커다랗고 무섭게 생긴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 살려주세요...!

 "과자."

 "으에, 에?"

 "과자 먹어도 된다."

 그 달콤한 냄새는 그가 손에 꼭 쥐고 있는 밤과자에서 나는 듯 했다. 다소 붉어진 얼굴로 내게 과자를 하나 내밀었다. 나, 나 또 사람을 얼굴만 보고 판단해버렸어! 벌 받을 거야!

 "감사합니다! 맛있어요!"

 그는 뻣뻣하게 굳은 목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 뭔가 또 실수했나? 어쩌지. 어떡하면 좋지? ―에?

 내 손 위로 아직 반이나 남은 과자봉지를 내려놓고는 벌떡 일어섰다. 큰 소리와 함께 머리를 부딪힌 것 같아서 괜찮은지 물으려고 했는데 급하게 나가는 바람에 아무 말도 못 했다. 그가 준 밤과자는 정말 달콤했다. 하얗고 상냥해.. 북극곰 같아.

_

 그 이후로, 봉사활동에 가는 날마다 커다랗고 상냥한 북극곰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매번 내 손에 밤과자를 쥐어주고는 급하게 내렸다. 이렇게 받기만 하면 안될테니까, 마지막 봉사활동에 가던 날 쿠키를 만들었다. 근데 사실 과자는 밤과자 이외에 안 먹는다던가.. 모양이 못생겨서 싫어한다던가.. 으아아 어떻게 건내주냐고!

 "저, 저기.."

 "아오네."

 "아! 네, 그, 아오네씨 매번 밤과자 주셔서 그러니까 이건 보답이라기엔 굉장히 못생기고 밤 맛이 나는 것도 아니고...!"

 "잘 먹겠다."

 우와. 받아줬어! 기뻐서 그런지 자꾸만 두근거려서 얼굴로 피가 몰렸다. 혀, 혈액순환 지나치게 잘 돼. 오늘은 차에서 내릴 때까지 화끈해진 볼을 매만지며 혈액순환에 대해 생각해야만 했다.

 _

 봉사가 끝난지 일주일이 지났다. 오늘은 무려 발렌타인 데이!  ―그렇다고 해서 내가 초콜릿을 받는 일은 없겠지만. 달콤한 것을 주고 받는 날인 만큼, 구름도, 하늘도, 태양도 달콤했다! 행복해!

 "얏짱 오늘 유난히 들떴네. 초콜릿 많이 받았어?"

 "전혀요!"
 
 "그렇다면 주고 싶은 사람이라도?"

 주고 싶은 사람?

 '과자 먹어도 된다.'

 왜인지 스가와라씨의 말을 듣자 북극곰씨.. 그니까 아오네씨가 생각 났다. 우와, 나 또 두근거려. 그 날 내 쿠키를 받아준게 아직도 기쁜 거야?

 "있구나? 늦으면 후회할 거라고~"

 "에이, 없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꾸만 아오네씨가 생각났다. 얼굴이 뜨끈뜨끈해지는 느낌. 왜 오늘같은 날 자꾸 아오네씨가 생각나는 거지? 오늘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인데.

 "허억. 나 혹시..!"

 "야치."

 "흐에엑! 아, 아오네씨!"

 여기 분명 카라스노 앞인데, 어째서 아오네씨가! 나 무의식 중에 다테공업 앞까지 와버린 거야? 그럴리가 없잖아, 저기 니시노야씨들도 있고! 이곳, 설마 공간의 경계라던가.. 여길 넘어가면 다테공업에 갈 수 있는 건가? 하하, 그럴리가 없지, 나도 참~ ... 그렇다면 아오네씨는 여기 왜 있는 거지?

 "초, 초콜릿이요?"

 "오늘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면 기뻐할 거라고 후타쿠치가 말했다. 지난 번에 기뻐서 오늘은 야치가 기뻤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알겠다. 이제야 알아버렸어. 나 어쩌면 엄청나게 둔할지도. 입가에 걸린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손 위에 올려진 초콜릿의 무게가, 실제로는 60g이 고작이겠지만, 대단히 무겁게 느껴졌다. 이거 진심이야. 정말, 진짜라고!

 "응! 엄청 기뻐요!"





+) 지나가던 모니와
"아, 아오네가 두 문장이나 말했어..!"(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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