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츠키히나] 滿月 (만월).

연성질/안녕큐 2016. 2. 21. 20:17

*히나타와 츠키시마가 머무르는 곳은 정신병원입니다.

*캐붕과 자살에주의하세요!



“어라? 너구나, 신참?”


 히나타 쇼요. 츠키시마 케이가 그를 처음 봤을때, 도대체 왜 이런 곳에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맑은 웃음으로 츠키시마를 반기는 히나타의 모습은 햇살과도 같았다. 눈을 감아도 저를 비춰오는 밝은 빛에 케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마도, 그가 간절히도 바랬던 조용한 병원살이는 실패인 것 같았다. 혼자뿐인 병실에서 따분했는지, 제 옆에 꼭 붙어서 이것저것 떠들어대는 모습이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조용한 방을 원했던 츠키시마에게는 굉장한 낭패였다. 이곳에서도, 나만의 공간이라던가 시간을 갖는 것은 무리겠네. 그는 커튼으로도 미처 가려지지 않는 햇빛을 피해 침대 위를 올랐다. 그러나 어딜 향하든 빛이 따라왔다. 이렇게나 밝은 곳은 17년 간 처음, 낯선 아침이 츠키시마에게는 버거웠다.


 “츠키시마는 여기 왜 온 거야? 무슨 문제가 있어?”


 “알 거 없잖아.”


 끈질기게 구는 히나타의 머리를 밀어내며 헤드폰을 쓴 그는 생각했다. 내가 왜 이곳에 왔더라. 정확히, 이곳으로 버려졌다는 표현이 옳았다. 츠키시마의 집은 이름있는 기업가였다. 그 주변은 항상 무언가 얻기위해 모여있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케이에게는 형이 하나 있었다. 케이는 그를 존경했다. 그의 형은 때로는 은은하게, 밝고 영롱하게 츠키시마를 비춰주고는 했다. 고고하고 우아한 달은, 태양빛에 감춰지는 동안 남몰래 상처를 남겼다. 조금씩 작아지던 위상이 츠키시마에게 비밀을 들켰던 날, 달은 무너졌다. 츠키시마는 그의 역할을 대신하기에 부족했다. 츠키시마의 아버지는 원망을 케이에게로 돌렸다. 그래서 보다 세상과 단절된츠키시마 케이가 더는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공간이 필요했다. 시끄럽고 부산한 공간보다는 이 편이 낫다고, 케이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에게 깊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츠키시마라는 성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아무도 그에게 츠키시마 아키테루’에 대하여 묻지 않았다. 남에게 지나치게 간섭하는 멍청한 인간이 존재하지 않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옮긴 병동에서 이런 사람을 만날 줄이야. 저의 헤드폰을 벗기는 손길에, 귀찮음이 잔뜩 묻어나는 표정으로 히나타를 돌아본 츠키시마는 세상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그 밝은 태양이 오로지 자신만을 비추었다.


 “응? 왜 온 건데, 츠키시마!”


 이상한 감정. 깊은 곳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 같으면서도 차분했다. 츠키시마는 그 정의할 수 없는 느낌을 애써 감추며 도망쳤다. 히나타가 없는 곳, 다시금 캄캄한 음지로. 그러나 그는 생글거리며 잘도 츠키시마를 찾아보였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그들은 항상 붙어있게 되었다. 물론, 일방적으로 히나타가 다가간 상태였지만, 어느 순간 부터는 츠키시마도 도망치는 것을 멈추었다. 끈질기게 붙어있는 그가 더는 귀찮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츠키시마는, 다소 혼란스럽지만, 이런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그날따라 츠키시마는 잠에 들기 어려웠다. 벌레들이 짝을 찾기 위해 내는 소리를 듣고, 어쩌면 본능적으로 저의 짝이 사라졌음을 깨달은 것일지도 모른다. 뒤척이기를 여러번, 눈을 떠 보니 건너편 침대가 비어있었다. 츠키시마는 일어서 불빛을 따라 걸었다. 이유는 알지 못했다. 그저 반쯤 잠든 정신이 몸을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이윽고, 히나타가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밝은 그곳에 도착했다.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얇은 쇳덩이가 바닥과 부딪혀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두시간 전만 해도 하얗던 환자복이 붉었다. 히나타는 덜덜 떨며 그를 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어떤 목소리도 밖을 향하지 않았다. 고요한 새벽을 깨울 수 있는 것은 수탉의 울음 뿐이다. 츠키시마는 말 없이 몸을 돌렸다. 방으로 돌아와 몸을 눕혔다. 


 “저기, 츠키시마. 그건 말이지…”


 “자신의 몸을 찌를 바에야 차라리 남을 괴롭히는 편이 낫잖아. 한심해.


 내뱉고도 왜 자신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츠키시마였다. 피투성이가 되었던 것은 히나타의 손목인데, 어쩐지 자신의 팔 전체가 욱씬거렸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바보같아. 인상을 쓴채로 돌아서 누웠다. 다음날, 히나타는 츠키시마를 찾지 않았다. 케이는 분명 귀찮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눈으로는 계속해서 히나타를 찾고 있었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아, 볼 수가 없었다. 해가 사라졌기에 어디에도 빛이 없었다. 츠키시마에게 지독한 밤이 돌아왔다. 늘 겪어온 어둠이 이번에는 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 츠키시마는 가장 밝은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가장 높은 곳, 가장 태양과 가까운 곳. 항상 단단히 잠겨있던 곳이 오늘은 열려있었다. 희미한 빛이 새어나와, 츠키시마는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어두워졌기에, 옥상 위를 은은하게 적셔준 것은 달빛이라고 생각했다. 따스한 느낌에, 이 근처 어딘가 그가 찾는 태양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옅은 빛에 젖은 하늘이 너무나 아름다워 가만히 머물렀다. 태양이 있음에 달이 빛난다. 더욱 밝고 선명한 빛을 보낼수록 달은 환하게 밤을 비춘다. 츠키시마는 그 희미한 달빛이 의미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언제나 밤인 날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아침이 찾아온다. 사람들이 밤에 잠을 자는 이유는, 그들에게 어둠을 견뎌낼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츠키시마는 다르다. 그의 세상은 언제나 밤이기에, 어두워지면 비로소 눈을 뜬다. 어디에도 달빛이 어리지 않는다. 그 날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보고 싶다만, 광원을 잃은 위성은 더 이상 빛나지 않는다. 츠키시마 역시 그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밤 하늘 아래, 무언가를 기다린다. 동틀 무렵의 새벽 내음을 맡으면, 슬며시 침대로 향한다. 아마도 그에게 더 이상 아침은 오지 않는다. 


 “보고싶어.”


 짜증나게 눈부시던 해가 다시금 만나고 싶어. 연약한 음성이 흩어졌다. 어둠이 깔린 곳에, 츠키시마는 홀로 서 있었다. 창문을 지나 환한 달빛이 흔들거리는 그를 비춰주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달이 가득 찼다.







+)

다 쓰고 나니까 제멋대로 아무 말이나 지껄여 놓은 것 같네요ㅠ 

혹시라도 이해가 가지않으신다면, 

히나타와 아키테루 두 사람의 자해와 자살,

 그리고 그것을 모두 목격한 케이 정도로 봐주시면 됩니다!

 결말은 몰살! 고멘츳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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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키야마] 당신의 애완동물을 어쩌구 썰.

연성질/안녕큐 2016. 2. 21. 00:43
 *폰작업 저퀄주의 얌굿 캐붕주의
*상풀, '당신의 애완동물을 조심하세요.' 란 작품을 모티브로 잡았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의 고슴도치 인생 5개월. 실수로 츠키시마의 손을 찔러 간식을 주고 사과를 한 일도, 새로운 사료가 너무 맛이 없지만 츠키시마가 나를 위해 사준 것이니까 눈 딱 감고 먹었던 일도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시끄러워, 야마구치."

 "저기.. 츠키스.. 츠키스으.. 츳키?"

 "... 하아?"

 바보! 츠키시마란 발음도 못하고! 사람이 되면 뭐하냐고.. 헉, 사람이라니.. 내가 사람이 됐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내가 갑자기 왜 사람이 되는 거야! 그러고보니 어젯밤 그렇게 빌었던 것도 같고.. 소원이 이뤄졌어. 나 정말 사람이 됐다고!

 "그러니까 네 말은, 저기 저 케이지에서 살던 그 고슴도치 야마구치가 너란 거지?"

 고개를 끄덕였다. 안 믿겠지? 믿지 않을 거야. 어쩌면 사람인 나보다 고슴도치 쪽을 더 좋아할지도 몰라. 그치만 간신히 이뤄냈는데.. 나 이제 쫓겨나는 건가? 그러면 다시는 츠키시마를 보지 못하는 거야?

 ".. 일단 이리와. 옷은 입어야지."

 "츳키..?"

 "그 츳키는 도대체 뭐야."

 "미, 미미, 미안! 그치만 발음이 되질 않아서.. 그, 그런데 믿어주는 거야? 내가 그 야마구치란 거?"

 "진실여부는 나중에 파악하고, 우선은 감기 걸리잖아."

 츠키시마는 내 말에 크게 한숨을 쉬더니, 저렇게 말했다. 지금 나를 걱정해준 거지? 그치? 츠키시마가 나를 걱정해줬어! 사람이 되는 건 좋은 거구나.. 츠키시마가 가져온 옷들은 나에게 다소 컸지만 익숙한 냄새가 잔뜩 베어 있어서 기분 좋았다. 맞아, 츠키시마 냄새구나..

 "옷, 사야겠다. 너무 크네."

 "응? 아냐아냐, 괜찮아! 언제까지나 이런 상태일리도 없고, 나, 그러니까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밖을 나갈 일도 없는 걸!"

 내 말을 들은 그는 작게 웃었다. 나 방금 우스운 이야기를 했던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웃음이었다. 어쩐지 부끄러워 얼굴을 살짝 붉히고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큰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맞네, 야마구치."

 가슴이 철렁 하는 느낌이었다. 자꾸 무언가 뭉클하고 먹먹한 것이 목구멍 위로 올라오려는 듯 했다. 행복감에 젖어 눈 앞도 뿌옇게 변하였다. 당황한 츠키시마가 그만두라며 내 등을 토닥였다. 고마워, 츠키시마.

 "저기 츳키. 나 지금 너무 좋아. 이거 꿈인 거 아니겠지?"

 바, 반대로 말해버렸다! 이를 어쩌지? 어떡해야하지?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나는 꿈 쪽이 더 좋은 걸, 이라고 말해버릴 거라고. 싫어, 그런건!

 "나도 네가 사람인 편이 좋은 거 같기도."

 "츠, 츳키!"
 
 "여전히 시끄러워, 야마구치."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정말, 정말로 행복한 고슴도치야!

_(어젯밤)

 으응? 무슨일이지? 어쩐지 힘 없어보이네, 츠키시마. 우, 우는 거야? 안돼, 안돼. 위로해 줘야만 하는데.. 울지마, 츠키시마. 간혹 츠키시마는 알 수 없는 우울함을 보이고는 했지만 오늘은 유난히 슬퍼했다. 그를 안아주고, 달래주고 싶은데 나는 그럴 수 없다. 제 무릎을 모아 얼굴을 묻는 그의 등을 토닥여주고 싶은데 나는 할 수 없다.

 "... 시끄러워, 야마구치. 이 밤 중에 그렇게 케이지를 두드리면 어떡하란 거야, 멍청이."

 무의식중에 코를 벽에 부딪힌 것 같다. 가까이에서 본 츠키시마의 얼굴은 훨씬 엉망이었다. 눈물이 가득해 붉어진 눈은 아마 내일이면 퉁퉁 부어오를 것이다. 츠키시마는 부드럽게 나를 쓰다듬었다. 지금 보듬어져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데. 아아, 나 정말, 진심으로

 '사람이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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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쿠로츠키] 그 남자의 사정

연성질/안녕큐 2016. 2. 14. 03:30
*폰작업 저퀄, 캐붕 주의. 쿠로오 자존감 낮음 주의.
*쿠로오와 츠키시마는 여름합숙 때부터 사귀었다는 전재입니다.

 안경 쓴 까칠한 녀석이었다. 자존심이 강해 조금만 건드려도 자극할 수 있는 쉬운 타입이면서도, 어딘가 단단히 어긋나 금세 손을 놓아버렸다. 그 알 수 없는 건조함에 관심이 생겼다. 여름 합숙의 짧은 기간에 관심은 더욱 깊은 감정으로 변하였고, 내가 내민 손을 그는 조금 망설이더니 기꺼이 잡아주었다. 손에 가득 채워지는 그의 온기가 따뜻했다.

 처음에는, 맞잡은 나의 손마저 놓아버릴까봐 걱정했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그의 손을 붙잡은채 매달려야할지, 아프지 않게 보내주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들이 정말 쓸데 없는 걱정임을 알았다. 더욱 견고하게 조여오는 손가락 사이의 압박감이 적어도 나의 고백을 거절하지 못하여 사귀는 것은 아니라고 안심시켜주었다. 어른인척 구는 그가 이따금씩 내게 기대어 온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 그는, 항상 감추려하지만, 감정을 쉽게 들키는 타입이었다. 싸움도 없이, 단란한 연애였다. 츳키와의 연애는 매일이 행복했다. 나는 그 행복을 유지하기를 원했다.

 츳키는 고등학생, 나는 성인이다. 공부에 치이는 그와 돈에, 학점에 허덕이는 나는 서로에게 소홀해질지도 모른다. 나는 지레 겁을 먹었다. 어느 순간 그가 도쿄에 오는 것을 껄끄러워하면 어쩌지. 나와 만날 시간이 사라지면 어쩌지. 과제에, 알바에 밀려 더 이상 츳키와 시간을 맞출 수 없으면 어떡하지. 그저 나의 노파심이었다. 우리는 문제 없이 앞을 향했다. 다만, 그는 고집이 강했고, 나는 그런 그에 대한 걱정을 잊으려 저런 의미없는 생각을 되뇌었을 뿐이다. 나로인해 츠키시마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포기해버릴 까봐. 그렇게 된다면 내 쪽에서 그를 놓아줘야할테니까.

 츳키가 고3이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사귀는 중이다. 그는 공부할 시간을 버리며 나를 찾았고, 나는 이기적이게도 그런 그를 거절하지 못했다. 가끔은 밤을 새워 피곤한 눈을 하기도 했는데, 오늘치 일을 몰아서 끝내느라 그랬다고 대답했다. 사랑의 시작은 어슬프기에 위험하다. 그는 온전치 못한 마음을 내게 주려다 조금씩 망가지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결심했던 말들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던 거짓을 내뱉었다. 그 여름날, 얼음이 녹아도 짙어, 씁쓸하던 커피 앞에서.

 “벌써 2년째네, 우리 만난 거.”

 “그렇네요. 쿠로오씨랑 2년이나 만나게 될 줄이야.”

 “2년이나 됐으니까 이제 그만둬도 괜찮잖아? 오래 만났으니까.”

 2년이나 만났으니 헤어져도 좋다니. 우습지도 않은 말을 내뱉고는 일어섰다. 넘쳐 흐르던 감정은 그 작은 커피잔에 몰아넣고 모두 녹여냈으니 더는 신경쓸 것도 없다. 츳키는 뭐든 철저하니까 내가 없다면 더는 망가지는 일도 없을 것이고, 분명 금세 좋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은 성숙해진 것으로 진짜 사랑을 이룰 것이다. 나와의 연애는 그저 성장을 위한 연습 경기였으니까. 배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다음이 없다는 것, 정도일까.

 츳키가 보고 싶어지면, 욕심 내지 않은 자신을 탓했다. 가끔씩, 술에 취할 때 라던가, 모른 척 그에게 전화를 걸면 항상 꺼져있는 츳키의 핸드폰이 그를 대변해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너무 힘들어서, 나와의 이별이 못견디게 괴로워서 아프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들려오는 소식 속 그는 여전했다. 다행이야. 분명 그게 맞는데, 어쩐지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서운하긴 하네.

 오늘은 억지로 이끌려 나갔던 소개팅에서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고 누군가를 소개 받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하고는 멋있게 도망쳤다. 츳키와 헤어진 계절은 여름이었는데, 어느새 바닥에는 낙엽이 잔뜩 깔려있다. 그 날 이후로 그 카페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커피에는 입도 댈 수 없었다. 그를 잊기위해 모든 추억을 돌고 돌아 피했다만, 언제나 가장 최악의 순간에 마주쳐 나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오늘, 바로 지금처럼.

 “쿠로오씨.”

 머리가 멈추어 버렸다. 가끔 시험지를 보고서 이랬던 경험이 몇 번 있지만, 오늘은 유난히 당황스러웠다. 심장 소리에 묻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조금 마른, 그렇지만 여전히 심술궂은 그 얼굴이 반가워 울음이 터져나올 뻔 했다. 아, 츠키시마. 바보 같은 호명이 내 최선의 대답이었다. 성대가 제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을 간신히 꺼내어 내뱉은 말이니까.

 “잘 지내시는 것 같네요. 그럼 가볼게요.”

 츳키가 너무나도 의연해서, 당황해서 머리까지 멈추었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눈 밑이 따끔거리고, 목구멍이 꽉 막혀 아팠다. 그가 걸어온 길을 따라 반대편으로 멀어졌다. 돌아보지 않는다. 미련 갖지 않는다. 이 끔찍한 카페 앞을 지나치며 나는 절대 울지 않는다.

 아마 내가 겪어본 상황들의 안에서, 후회하지 않는 선택은 없다. 어떤 것이든 반드시 끝에 다다르면 가슴을 치고 원망할 것이다. 그러나 그 옛날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이 선택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다른 어떤 선택들 보다 이것이 베스트란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스치듯 지나쳐 사라진 것들이 알게 모르게 흔적을 남기고, 후회는 그저 눈에 띄는 한 종류일 뿐이다. 후회가 남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한 때 마음을 함께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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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쿠로츠키] 낙홍(落紅)

연성질/안녕큐 2016. 2. 12. 00:38

*폰작업 저퀄, 캐붕 주의. 낙엽에 츠키시마의 첫사랑을 이입해주세요!
*쿠로오와 츠키시마는 여름합숙 때부터 사귀었다는 전재입니다!

 “벌써 2년째네, 우리 만난 거.”

 “그렇네요. 쿠로오씨랑 2년이나 만나게 될 줄이야.”

 “2년이나 됐으니까 이제 그만둬도 괜찮잖아? 오래 만났으니까.”

그의 이별선고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는 표현은 확실히 과장이었을까. 오히려 모두가 이상하리만치 정상적이다. 쿠로오씨가 먼저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다소 놀랐지만, 그게 전부. 고작 고교시절의 연애를 가지고 슬퍼한다거나 미련을 갖는 쪽이 오히려 웃긴 것이다. 언제라도 준비했다는 듯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나가고, 나는 홀로 남아 쇼트케이크를 먹었다.

 “... 맛 없네.”

 모두 내버려둔 채 나와버렸다. 그 카페에 남은 것은 먹다 만 쇼트케이크 이외에도 많았지만, 나는 모른척 고개를 돌렸다. 마음을 가볍게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랬기에 이것, 저것을 챙겨나올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핸드폰을 들었다. 그렇게 싫다고 거부하던 배경의 쿠로오씨를 어쩐지 나는 바꿀 수가 없었다. 전원 버튼을 길게 눌러 핸드폰을 꺼버렸다. 심심할 때, 쿠로오씨가 생각날 때 즈음이면 어김없이 울리던 것이 잠잠할 테니까. 사람도 이 같다면 좋을텐데.

 정말 금세 잊혀졌다. 고3이니까 공부라던가, 마지막이 될 배구에 집중해서일까. 아니, 어쩌면 애초에 쉽게 지나갈 사람이었을지도. 그랬으니까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버린 거겠지.

 “츳키! 오늘은 네코마 주장 만나러 안 가?”

 “아, 헤어졌어.”

 “헉. 미, 미안!”

 “괜찮아, 별 거 아닌데.”

 “별 거 아닐리 없잖아, 2년이나 만났는데.”

 “괜찮다니까?”

 “괜찮다면 왜 아직 핸드폰 꺼 놓은 건데?”

 걸음이 우뚝 멈춰섰다. 야마구치의 말 때문이 아니라 그저 핸드폰에 무언가 온 것 같아서. 꺼내려고 손을 움직이다 그만두었다. 여전히 꺼져있는 핸드폰이 울릴리가 없잖아. 스스로 전원을 꺼 놓은 주제에 도대체 무슨 연락을 기대하는 거야.

 “별 거 아니라면 아닌 거잖아.”

 “... 응, 미안해, 츳키..”

 야마구치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맞는 이야기만 했는 걸. 그렇지만 어딘가 잔뜩 꼬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전히 핸드폰을 꺼 놓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심한 녀석이다. 켜버린다면 곧바로 그에게 전화해서 왜 내게 헤어지자고 했는지 따질지도 모른다. 그걸 물어서 쿠로오씨에게 어떤 것이든 답을 듣는다면 어쩔건데. 다음을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은 해서는 안돼. 나는 그 모든 리스크를 감수할 자신이 없으니까.

 사랑에 빠진 순간, 인간은 변한다. 지금껏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푸르던 나뭇잎이 붉게 물든 시점에서야 내가 사랑에 빠졌음을 깨달았고, 우리가 늘 갖고 있던 온도차는 한 쪽이 달아오르면 다른 한 쪽은 식어버리는 것이었다. 비로소 마음을 깨달은 때는 너무 늦어버렸다. 그리고 단풍은 떨어질 차례만을 기다린다.

 “쿠로오씨.”

 “아.. 츠키시마.”

 츳키도, 케이도, 안경군도 아닌 츠키시마. 누구에게나 불려지던 나의 성이 이토록 듣기 싫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는 운동을 열심히 하는지, 살이 조금 빠진 것 같았고 늘 하고있는 뻗친 새집머리가 아닌 단정한 꼴을 하고 있었다. 여자라도 만나려는 듯이. 난 지금 누구에게 이렇게까지 화가 난 거지? 뭐가 이렇게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건데. 도대체 왜야.

 “잘 지내시는 것 같네요. 그럼 가볼게요.”

 아마도 번호가 바뀔 때까지 핸드폰을 켜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 없으니까.

 바람이 불었다. 나뭇가지에 붙어 흔들리던 잎들이 그에 맞추어 떨어졌다. 개중에는 새빨갛게 물들어진 몸을 잔뜩 웅크린 것도 있었다. 바스락- 작은 소리에 부서져 흩어지는 그런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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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츠키야마] 나와 같아. 下

연성질/안녕큐 2016. 2. 7. 16:24
 늘상 곁을 지켜주는 녀석이 있다. 첫 만남은 꽤나 오래 전, 뭐, 옛날 이야기는 취미가 아니니 그 정도로만 해두고 덧붙이자면 여전히 이런 사이이다. 언제나 내 옆에 붙어서 나의 기분을 알아주고 이것저것 이야기 해주고, 가끔은 귀찮게 굴지만 최근에는 그런 모습도 봐줄만 한 것 같다. 나랑은 정반대의 느낌. 늘상 생글거리고 열심이다. 바보 콤비 앞을 제외하면 항상 친절하고 상냥한 편이다. 지나가다 붙들려 나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어 귀찮을텐데도, 내가 시끄럽다고 핀잔을 주어도 웃는 얼굴이다. 그 웃는 얼굴이 보기 좋다.

 “안경군은 항상 함께 다니는 딸기군을 좋아하지?”

“하아? 딸기군은 또 뭡니까. 그보다 그 안경군이라고 부르는 것 좀 그만두시죠.”

“그렇담, 츳-키?”

“카라스노의 1학년 그만 괴롭히고 이리로 와, 쿠로.”

“아, 알겠어, 켄마. 혹시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연락하라고. 츠읏-키.”

 너만이 부르던 그 이름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자니 이상해. 차라리 안경군이라던가, 호타루라던가 하는 호칭이 나을지도. 끔찍하게 싫던 별칭이 더 낫다니. 그렇지만 야마구치가 나를 부르는 ‘애칭’같은 것이 다른 사람과 공유된다면 그거대로 마음에 들지 않아. 그의 마지막 말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보았는데, 어째서인지 휴대폰에 번호가 저장되어 있더라. 그러고보니 그가 늘 붙어다니는 작은 세터와 사귄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고.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아니, 역시 그건 좀 별로일지도.

 쿠로오상을 만났어. 도움이랄까, 이 사람은 그냥 날 놀리는 일이 즐거운 것 같지만 이걸로 확실하게 알 수 있어. 이건 친구에게 갖는 감정이 아니야. 근데, 난 있지,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두려워. 이런 점은 형과 조금도 다르지 않네. 어쩔 수 없잖아? 같은 츠키시마인 걸. 모른 척 할 거야. 전부터 날 향한 네 눈빛은 항상 동경. 네게 난 그저 그런 존재였지. 난 다가가는 법을 모르는데 넌 나를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해. 애당초에 내가 다가가려 해도 네가 도망가 버릴지도 모르는 노릇이잖아. 스스로 괴로운 일은 만들지 않을 거야. 형처럼 되지 않을 거라고.

“저, 츳키-”

“약속이 있어. 먼저 갈게.”

“으응, 알겠어..”

 그 이후로도 몇번이고 쿠로오상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 그는 곧잘 나를 아이취급하며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그럴때마다 그의 입에서 언급되는 야마구치의 이름에 별다른 반응을 보일 수 없었다. 부끄러움. 낯선 감정이었다. 빨리 달린 것도,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아닌데 심장 박동수가 높아졌다. 그 이상한 감정이 어색하였다. 그리고는 다음 날, 야마구치, 너를 봤을 때 처음으로 감정에 이성이 잠식당함을 느꼈다. 본능이 소리쳤다. 들켜서는 안돼, 절대로.

“츠키시마, 집 가자!”

“아, 오늘은 안돼.”

 1초만 더 머물렀다면 위험했을 거야. 당장에 떠오른 느낌에 휘둘려 내 멋대로 행동했을 거야. 이런 거 있어서는 안되는 거잖아. 넌 항상 노력하는데, 난 전혀 그렇지 않아. 네 충고를 듣고도 전혀 변하지 않았어. 멋있는 건 이쪽이 아닌 네 쪽. 도망치고있는 건 항상 나였어. 그렇다고, 이걸 알아버렸다고 해서, 뭔가 해결되는 건 아니거든. 난 항상 이럴 거야. 평생 변하지 않겠지. 언젠가 너도 이런 날 알겠지. 그렇다면 나를 떠날 거야? 그렇게 된다 해도 나는 잡지 못할, 않을 거야.

 “근데, 케이(츠키시마의 고집으로 바뀐 호칭), 진심으로 거절인 거냐? 딸기군이 널 좋아하더라도?”

 “그런 터무니 없는 가정은 관두죠. 그리고 야마구치를 그런식으로...”

 야마구치가 날 좋아한다면? ‘츳키-’하는 음성이 떠올랐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주근깨 투성이의 귀엽지 않은 얼굴로 웃음짓는 모습이 머릿 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쿠로오상의 손이 머리 위로 올려졌다만 지금은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이 자꾸만 드러나 혼란스러워지면 자꾸만 감정에 지배되었다. 지금처럼 눈 앞의 야마구치 두고도 반갑지 않은 척 거리를 좁힌다거나 하는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아, 잠시만.

“야마구치...?”

 야마구치의 표정이, 뒷모습이 이상했다.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빠르게 눈 앞에서 사라졌다. 공간이 닫혔다. 모두가 잠잠해졌고, 야마구치가 서 있던 곳, 달려나간 곳에 차례로 그의 모습이 형상화 되었다. 느릿하게 눈이 마주치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것봐라, 주전 선수 명단에 츠키시마라는 이름은 없지 않으냐. 오래 전의 기억에 야마구치가 끼어들었다. 소꿉친구를 연애대상으로 느낄리 없지 않으냐.

“츠, 케이. 이대로 놓지면 영영 잡지 못한다고?”

“괜찮아요. 어차피, 언젠가 겪을 결말이었고, ...”

 괜찮지 않아. 마지막 그 얼굴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아서 너무 걱정 돼. 이대로 널 영영 잃을까봐 두려워. 내가 지금 뭘 해야해? 너무 늦어버린게 분명한데. 이제와서 나는 사실 너를 좋아했으니까 우리 친구는 그만두자고 이야기 해야 하는 거야? 그런 거 말도 안 되잖아. 바보같아. 전처럼 다가와서 물어 주었으면, 마법처럼 모두 이야기 해버렸을지도 모르는데. 네가 너무 다른 사람인 것 같아서, 내가 알던 야마구치가 아닌 것 같아서 도망쳤어. 네가 없는 곳으로, 너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한심하네.”

 쿠로오상은 그 한 마디를 남기고 돌아섰다. 그의 판단이 정확했다. 수 없이 많은 기회를 걷어차, 이 자리까지 나를 밀어낸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한심한 놈. 그 말이야말로 지금의 내게 가장 어울렸다. 숨기기에 급했고, 지켜낼 의지가 없었다. 봐줄만 한 적당선만 넘기면 그거대로 오케이였다. 간혹 성에 차지 않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한심한 녀석이 맞다. 그러나 역시 남에게 들으면 열받네.

간신히 마음을 먹었는데 넌 학교에 왜 안 나왔을까.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전화할 용기가 났는데 기나긴 신호 연결음을 끝으로 넌 끝끝내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잖아. 정말 많이 아픈 걸까, 그게 아니라면 단지 내가 보기 싫어진 걸까. 어느 쪽이든 싫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잠 들어서 받질 못했어, 미안해 츳키]_야마구치

 [할 얘기 있는데 너희 집으로 가도 돼?]_야마구치

 연락이 온 것은 저녁이 되어서였다. 두 번째가 아니라 다행이야. 라고 생각하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었지만, 야마구치의 문자 두 줄이 충분히 안도감을 주었다. 신이 이토록 한심한 나를 가엾게 여겨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일까. 도저히 그 이상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다. 뭐라도 해 보는 편이 낫잖아. 그걸 위해 그동안 쿠로오상을 만났던 것이고, 결국 결정을 내리는 것은 나야.

 ‘켄마는 내가 배구를 하는 이유야. 네게도 그런 거잖아, 딸기군이.’

 ‘그래.’ 짧은 답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어. 괜히 늘 집에서 입던 면티를 새것으로 갈아입고 혹시라도 네가 들어올까 방 청소도 다시 했어. 형 도움으로 감기에 좋다는 유자차도 끓여놨어. 너만 오면 돼. 이런 거 전혀 나답지 않은데, 사람이란게 강한 동기가 있으면 변하기도 한다잖아. 떨리고 긴장이 되는데, 네가 기다려지는데, 무서워. 무섭다. 모두 알아버린 네 반응이 어떨까 두려워. 널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봐.

 초인종이 울렸다. 급하게 문을 열었다. 추워서인지, 감기탓인지 붉은 얼굴 탓에 ‘딸기군’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목 뒤가 화끈거렸다. 심장이 펌프질을 시작했고, 그에 맞춰 호흡이 빨라졌다. 더 있으면 귀라던가, 얼굴이라던가 야마구치처럼 빨갛게 변할 것 같았다. 음이 엇나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말을 뱉었다.

 “빨리 안 들어오고 뭐해?

 “저, 츳키-”

 “감기잖아, 볼이 빨개.”

 얼굴이 일그러져서, 그 날 같은 표정을 지어보여서 가슴이 철렁했어. 정말 이대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네가 울먹여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듯 위태로운 모습으로 서서 무언가를 간신히 참아대며 입을 열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물어도 돼? 그 눈물의 의미가 뭐야. 너는 뭐가 그렇게 무섭고 두려운 거야.

“좋은 사람 만나서 다행이다. ”

 ‘딸기군이 너를 좋아하더라도?’ 그 말이 왜 이 타이밍에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그저 그 한마디가 몇번이고 귓가에 맴돌았다. 야마구치의 눈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야마구치가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들썩이는 어깨를 보면서 무슨 행동을 해야할지 몰랐다. 예상이라던가, 상상과 전혀 다른 전개에 벙쪄있었다.

“네코마의 주장이라면, 정말 멋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 쯤 되어야 츳키랑 어울리니까.
난 정말로 잘 됐다고 생각해. 축하해 츳키―”

“야마구치.”

 나의 부름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억세게 깨문 입술에 상처가 생길 것 같았다. 이런 것은 정말 이상하다. 사고회로가 정지하고 내가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르는 상태. 한참을 몸을 움직여 그에게 다가가서야, 우리가 너무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무슨 생각으로 네게 입을 맞춘 건지는 모르겠어. 놀란 건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멈춰진 네 모습이 조금은 우스웠어.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알 수 있어. 이 두근거림은 나만의 것이 아니야. 잡아도 될까. 네 손을 잡아도 괜찮을까.

 “츠,츠츠츳키― 저기, 이건…!”

 “시끄러워, 야마구치. 들어왔다가 가.”

 야마구치의 손목을 잡았다. 귓바퀴가, 온 몸이 화끈거리는 기분이었다.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 건 아닐까 불규칙한 호흡에 걷는 것도 힘들었다. 손목 너머로 느껴지는 야마구치의 나만큼이나 불규칙하고 가쁜 것 같았다. 늘상 함께있었는데 처음 만났던 날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두근거렸다.

 “나 아픈 거 같아, 츳키!”

 “감기면서 밤중에 돌아다니고 그러는데 안 아픈 쪽이 이상한 거지.”

 나는 이런데, 이런 상황에서 하는 말이 ‘나 아픈 거 같아, 츳키’? 나, 참 그러니까 아프면 집에서 쉴 것이지 귀찮게. 알맞게 식은 차를 컵에 담아서 건넸다. 받아든 표정이 잔뜩 들떠, 나까지 붕 뜨는 거 같았다. 이런 거 정말 귀찮고 짜증나는데, 너라면 나쁘지 않아. 나도 너와 같아, 야마구치.

 

+)

 야마구치 타다시. 작은 체격에 주근깨 투성이, 전혀 귀엽지 않은 얼굴. 나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뭐, 다른 사람이라고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굳이 꼬집어 말해 첫 눈에 반한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그 쪽이 이상하지 않을까. 고작 초등학생이 누군가를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지다니, 그것도 동급생의 남자아이를. 어쩌면 나는 애초부터 이상한 놈이었을지도.

 야마구치, 네 기억 속 그 날은 내가 노리고는 들어간 거라고. 너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그냥 한 번쯤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보고 싶어서 대충 아무 말이나 내뱉은 거라고. 절대 멋있지 않았어, 너의 영웅도 아니야. 그래도 그 날, 망설이지 않고 너를 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야마구치.˝

˝응, 츳키―!˝

 아마 너보다 내 쪽이 훨씬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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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츠키야마] 나와 같아. 上

연성질/안녕큐 2016. 2. 6. 03:58

 친구가 있다. 친구랄까, 항상 내가 곁에 붙어 말을 시키는 것이 고작이지만 적어도 나를 내버려둔다거나 무시하지는 않으니까 친구라고 말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키도 크고 인기가 많아, 항상 인상을 쓰고 있다.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것도 모르고 다들 츳키의 주변을 서성이며 소리를 지른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는 쉽게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가만히 있지만, 내게는 시끄럽다며 곧잘 주의를 준다. 우리는 어쩌면 꽤친한 사이일지도 모른다. 

 

“츠키시마, 집 가자!

 

아, 오늘은 안돼.

 

 요즘 들어 부쩍 어디론가 사라지는 거 알아? 이전에도 그런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자주인 것도 처음이고 어디에 다녀온 건지도 도저히 말 안해주고. 서운? 서운한 것일까. 내게 비밀이 생겨서? 그러니까 이전에도 내게 뭐든 털어놓는 사람은 아니었잖아. 그래. 그러고보니 아는 것도 얼마 없어. 형에 관련된 일이라던가, 좋아하는 음식이 쇼트케이크라던가 하는 일 말고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잖아. 

 

“돌아가야지, 그만.”

 

 초등학교 일이 떠올랐어. 날 도와주려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 날의 츠키시마는 오늘까지도 내게 영웅과 다름없지. 존경하는 사람. 멋있는 사람. 항상 곁에 있고 싶었어. 나는 항상 츠키시마의 옆에 있고 싶었다고. 귀찮아한 거 알아, 시끄럽게 굴어서 미안해. 츠키시마는 나와 다르다는 것 쯤은 나도 알고 있는데 말이야.

 

“이게 뭐야….

 

 소꿉친구. 일방적인 관계라 내게도 어울리는 단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소꿉친구를 좋아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인 것 같아. 네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나는 이해해줘야 하는 거잖아. 그래야 네 곁에 있을 수 있겠지? 난 괜찮아. 난 정말로 괜찮다고. 나쁠리 없잖아. 츠키시마 네게 좋은 사람이 생긴 건데. 정말로, 정말로 괜찮지 않아. 괜찮지 않아. 츠키시마의 곁에 항상 있었던 것은 난데,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왜 그가 있는 거야? 츳키 대답해줘. 나는 네게 뭐였어?

 

 답 없는 물음이 떠돌기를 한참.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그래서 츳키의 뒤를 따랐어. 어쩔 수 없잖아.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 일이었어. 조금 후회스러워. 내가 츠키시만큼 이성적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이 장면을 보지 않아도 됐겠지? 네코마의 주장을 특별히 여긴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어. 그런데 나에게 비밀로 했던 일들이 고작 그를 만나기 위해서 였던 거야? 어째서? 내가 말하면 츳키가 이곳에 오지 못하도록 막을까봐? 그럴리가 없지. 그냥 귀찮아서 일 거야. 나는 츠키시마에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닌 걸. 츠키시마와 나는 단 한 순간도 같았던 적이 없었던 거야.

 

  멀리서 보였다. 다가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네코마의 주장이 츠키시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츳키는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운 듯 안경을 고쳐 올렸다. 평소의 표정과는 사뭇 달랐다. 여전히 미간이 잔뜩 좁혀진 화난 인상이지만 어딘가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본 적 없는 모습이다. 내게는 없는 츠키시마다. 이 거리에서만 볼 수 있는 츳키다. 욕심이 났다. 한 걸음을 내딛었다. 금세 들켜버릴텐데, 나는 무엇을 위해서인지 자꾸만 앞을 향하려 했다. 조금만 더 가까이에서 그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나는 그를 포기할 수 있을지도 몰라.

 

“야마구치…?

 

 처음으로 네 입에서 나온 나의 이름이 달갑지 않았어.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어. 맞아, 난 겁쟁이라서 도망쳤어. 모두 알아버린 나에게 츠키시마가 무슨 태도를 보일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었어. 나는 말야, 아직도 츠키시마에 대해서 잘 모르겠어. 그런데도 너를 잃고싶지 않아, 츳키. 조금만 기다려줘. 정말, 아주 조금이면 돼. 모두 금방 끝날 거야. 정말 금방. 이런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나를 밀어내지 말아줘. 나는 네가 좋아.

 

 미안해, 츠키시마. 나는 겁쟁이인 주제에 욕심이 많아서 너를 포기할 수가 없어. 그치만 네가 없는 건 죽어도 싫어. 그것만큼은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지금 이대로도 충분해. 예쁜 여학생들에게 츠키시마의 우체통 정도로 취급 받지만, 내가 츳키와 친하다는 것 같아서 기분 좋아. 그러니까 츠키시마, 내가 널 포기할게. 친구로라도 옆에 있어줘.

 

 아침이 밝았다. 학교에 가야 하는데, 어쩐지 몸이 무거웠다. 몸이 불덩이 같았다. 오늘 꼭 츠키시마를 봐야 하는데,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학교를 빠졌다. 츳키가 나의 걱정을 해주어으면 좋게다는 생각을 했다. 포기라니, 어쩌면 나는 평생 짝사랑만 하다가 죽을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온몸이 쑤시고 아픈 와중에도 바보같은 생각이 떠올라 웃었다. 그러다 눈을 감았고, 잠이 들었다. 일어난 것은 저녁이 다 된 시간, 그리고 츠키시마로 부터의 한 통의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

 

[잠 들어서 받질 못했어, 미안해 츳키]

[할 얘기 있는데 너희 집으로 가도 돼?]

 

 답은 없었지만 이미 츠키시마의 집을 향하고 있었다. 아직 조금 어지럽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츠키시마와 어색하게 되어버릴지도 몰라 불안해서 도저히 가만히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항상 걷던 길이 오늘따라 낯설었다. 더디고 멀게 느껴졌다. 다짐이 꺾이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나는 어느새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지금은 조금 곤란하다는 츳키의 답장이 오기를.

 

[그래.]_츳키

 

 신은 어째서 항상 나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걸까. 나 너무 무서워, 츠키시마. 널 보러 가는 길이 이렇게나 무겁고 슬프게 될 줄 몰랐어. 그런데 돌아갈 수 있을리가 없잖아. 오늘이 아니면 말하지 못할텐데, 그렇다면 츠키시마도, 나도 계속 그 일을 신경 쓸테니까. 그래도 츳키는 걱정하지 마. 나는 항상 네 편인 걸-

 

 츠키시마의 집 앞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누르기 이전 망설이던 손가락이 꿈틀거리는데 문이 열렸다. 얇은 면티 차림의 츳키가 나를 바라봤다. 무심한 표정 뒤로 그 날의 얼굴이 겹쳐졌다. 나에게도 보여준다면 좋을텐데.

 

“빨리 안 들어오고 뭐해?

 

“저, 츳키-

 

“감기잖아. 볼이 빨개.

 

 이전과 같은 다정한 한 마디에 울어버릴 뻔 했다. 정확히는 이미 가득 차오른 눈물을 애써 참아보려고 했다. 귀찮아 할 거야, 츠키시마가 나를 싫어하게 될 거야. 꾸역꾸역 넘어오는 울음을 참으며 말했다.

 

“좋은 사람 만나서 다행이다.

 

 어젯밤 잠들기 이전에 여러번 연습했지만, 역시나 실전에서는 어려웠다. 위기의 순간 핀치서버로 투입되었던 그 날만큼이나 떨리고 무서웠다. 게다가 오늘은 감정이라는 복병까지도 나를 방해했다. ―결국 눈물은 두어방울 흘러버렸다만, 묶어놓았던 것들이 터지는 것을 겨우 막았다.

 

“네코마의 주장이라면, 정말 멋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 쯤 되어야 츳키랑 어울리니까.

난 정말로 잘 됐다고 생각해. 축하해 츳키―

 

“야마구치.

 들려온 음성을 따라 시선을 올렸다. 물기가 가득차 시야가 불편했지만, 더는 츳키를 성가시게 하고싶지 않아서 눈을 부릅 뜨며 참았다. 그리고 가볍게 츠키시마의 입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어라…? 츳키의 입이?

 

 고개를 든 이후의 기억은 흐릿해. 아마도 나의 상상이 더해진 꿈이 아닐까 싶어. 가끔, 현실과 도저히 구분하기 어려운 생생한 꿈을 꾸기도 하니까. 적어도 츠키시마가 내게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은 꿈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잖아. 그렇지? 그런거지, 츳키? 이건 꿈일 거야. 꿈….

 

“츠,츠츠츳키― 저기, 이건…!

 

“시끄러워, 야마구치. 들어왔다가 가.

 

 깨어날까봐 불안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눈을 뜨면 눈 앞에 익숙한 천장이 보일까봐 걱정되었다. 그러나 츠키시마가 잡아챈 나의 손목이, 그곳으로 느껴지는 따뜻한 열기가 이곳에 현실임을 이야기해 주었다. 붉어진 귓바퀴. 반대쪽을 향한 눈동자. 수줍어 보이는 그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다. 조금 보태자면, 그 날의 츠키시마와 굉장히 비슷했다.

 

“나 아픈 거 같아, 츳키!

 

“감기면서 밤 중에 돌아다니고 그러는데 안 아픈 쪽이 이상한 거지.

 

 잔뜩 인상 쓴 표정으로 건네준 컵을 받아들었다. 그 안에 가득 담긴 유자향이 달콤했다. 그의 기분도 이럴까. 그렇다면 완전히 나와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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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쿠로츠키] 해답

연성질/안녕큐 2016. 2. 5. 02:09

바보 같기는.

 

 추운 날씨에 연습 오프. 도쿄는 눈이 왔을까. 나랑은 관계 없는 일이잖아. 생각과는 다르게 발걸음이 도달한 곳은 네코마 고교의 앞이었다. 이런 거 예정 외의 일이라고.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집에 도착해서 쇼트케이크를 먹고 있어야하는 거잖아. 하얗게 질린 손으로 꽉 쥐어든 케이크 상자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교문 앞을 서성거렸다. 엄청나게 수상해보여. 도대체 이곳에 뭐하러 온 건데.

 

“멍청이 짓 그만하고 돌아가자.

 

 최근 너무 바보들이랑만 지내서 그런 거야. 나까지 이상해진 것 같네. 목까지 올려 잠근 져지에 얼굴을 묻고 몸을 돌렸다. 아주 천천히 한 발자국을 떼어냈다. 이상하네. 도대체 뭘 기다리고 있는 거야, 뭘 기대하고 있는 건데. 생각대로 몸이 따라주지는 않았다. 느릿하게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겨우 교문 근처를 벗어났으려나. 어쩐지 나는 자꾸만 그와 관련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고작 합숙에서 몇 번 마주친 것이 전부인데.

 

‘안경군, 자유 연습 도와줘.’

 

 얼굴이 화끈거렸다. 히나타만큼이나 단순무식해 보였는데, 배구 공을 쥐었을 때의 모습은 또 다르다. 의기양양하게 보쿠토씨의 스파이크를 막아낸다 거나 다이치 선배나 할 법한 나이스 리시브를 보여준다 거나 알 수 없는 사람이라 불쾌한데도 자꾸만 눈길이 간다. 자유 연습 하자며 귀찮게 달라붙는 것도, 채찍과 당근이랍시고 사람 속을 긁어대는 것도 짜증나는 사람인 것이 분명한데도 나는 이 사람을 찾고 있다.

 

 

“어라? 안경군? 무슨 일이야 여기는?”

 

“아, 저, 그냥 지나가는 길에….”

 

“딸기 케이크? 의외네, 안경군.”

 

 완전히 아이 입맛이잖아? 놀림 받는 기분도 썩 나쁘지가 않다. 아, 어쩌면 나 M일지도. 이거 굉장히 어이 없는 생각이잖아?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그나저나 정말 뭐하러 온 거야? 도쿄에는.

 

 잔뜩 엉켜진 실타래의 끝을 잡았다. 풀기 위해 애를 써도 보이지 않던 매듭이 명쾌하게 헤치워졌다. 인간은 참으로 단순한 동물이다. 부정하려 해 보아도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감정이 이성을 잠재우고 모든 사고가 정지하면 그제서야 찾지 못한 답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뭐 하러 왔냐니, 그거 타나카선배 만큼이나 단순하고 명확한 거잖아.

 

“그런 건 됐고, 쇼트케이크 좋아하나요, 쿠로오씨.”

 

 답을 찾았다면, 적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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