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쿠로스가] 인어공주야.

연성질/안녕큐 2016. 2. 8. 03:11

 나는 언제나 너의 한 발 뒤에 있었다. 흔들리는 은발의 뒷통수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좋았다. 자신의 토스가 끝끝내 득점으로 연결되었을 때에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시들게 하는, 오로지 자신만이 반짝거리는 미소를 보였다. 너희 까마귀는 이해할 수 있잖아? 나는 그 반짝임이 갖고싶었다. 너를 온전히 독점하고 싶었다. 그러나 네 곁에는 언제나가 있었다. 잠시도 네 곁에서 떨어지지 않아, 너를 감상하는 것을 지독하게 방해하였다. 단 한순간. 네가 벤치에, 그가 코트에 있는 순간을 제외하고.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우리 사이에 있어서 사라져야할 존재였다. 준비를 거듭하였다. 나는, 이를 위해서, 언제나 너희의 너의 한 발 뒤에 있었다.

 “다이치!”

 “뭣들 해, 빨리 구급차 불러!”

 왜 그런 표정이야, 스가와라. 우리의 방해물이 없어진 이 시점에 가장 행복해야 할 사람은 바로 너와 나인 걸. 나는 어느 누구도 죽이지 않아. 내 소유물이 아닌 이상 그런 취미 없어. 그저 날개를 꺾었을 뿐이야. 날 수 없는 새는 더 이상 쓸모가 없잖아? 그러니 나를 봐. 내게 고개를 돌려라. 어미 잃은 아기새를 어떻게 대해야하는 지에 관한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넋이 나가 벤치에 앉아있는 너에게 다가가 무겁게 한마디를 내뱉으면 될 일이었다.

 “미안해, 내 잘못이야.”

 “... 괜찮아. 경기 도중에 일어난 일이고, 다이치라면 분명히 다친 쪽이 네가 아니라 다행이다- 라고 했을테니까.”

 웃으며 내 등을 토닥이는 너의 목소리에 어딘가 슬픔이 어렸다. 한층 더 아름다워졌을까나. 그 이후로 나는 너와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운명이랄까, 그의 병원에 가면 언제나 너를 마주쳤으니까. 너는 언제나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였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 말은 마치 자신에게 내뱉는 말 인 것 같았다. 언젠가 말 없이 안아주었을 때에는 내게 기대어 울음을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어느 쪽으로 보나 결과는 오케이였다. 이번에는, 두 다리를 잘라내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쿠로오?”

 “아, 왔어, 스가?”

 그 이후로는 예정된 일 그대로였다. 나의 노력 끝에 너는 그 마음을 알아주었고, 천천히, 조금씩 나는 너의 삶에 녹아들었다. 한 때 의 것이었던 반짝이는 구슬이 바로 눈 앞에 놓어졌다.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절대 서두르지 않아. 두 번의 실패는 없어. 기다리고 기다리니 금세 해가 떨어졌다. 고요한 어둠이 깔린 도시야말로 고양이의 집. 한 번 봐둔 사냥감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 인어공주 스가와라. 내게도 토스를 올려, 그 환한 미소를 보여줘. 나의 배구는 너와 함께이고 싶어. 응, 나와 함께해줄래?

 너는 수줍게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아아- 드디어 눈부신 별빛 하나가 내 손에 들어왔구나. 왕자 따위는 관계 없어, 애당초 인어에게 다리를 갖고 싶어- 라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면 되는 거야. 그렇담 애써서 도망칠 다리를 잘라내거나, 미움을 사 괴로워할 필요가 없어. 나는, 나를 사랑해주는 네가 좋아. 그런 너를 갖고 싶었던 거야. 네가, 너의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내게,

 “쿠로오...?”

 흐릿한 너의 눈이 제 색을 찾더니, 짙은 눈물방울을 툭툭 떨어뜨린다. 붉은 빛에 엉켜진 회색 머리칼이 아름답다. 스가와라, 내가 갖고 싶은 것은 반짝이는 너의 구슬픈 목소리야. 빛을 잃기 직전의 감미로운 비명. 너라면 날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 그렇지? 자, 인어공주야. 이제 네 목소리를 들려주렴.

_

 코즈메 켄마. 스가와라 코우시.

 “아카아시!”

 “아, 오셨습니까. 보쿠토상도 금방 도착할 겁니다.”

 안녕, 인어공주야.

 

+)

 안녕, 켄마. 보고 있어? 친구가 생겨서 더는 외롭지 않겠네. 팔도, 다리도 없지만 너는 여전히 아름다워. 내가 가진 모두를 통틀어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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