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츠키야마] 나와 같아. 上

연성질/안녕큐 2016. 2. 6. 03:58

 친구가 있다. 친구랄까, 항상 내가 곁에 붙어 말을 시키는 것이 고작이지만 적어도 나를 내버려둔다거나 무시하지는 않으니까 친구라고 말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키도 크고 인기가 많아, 항상 인상을 쓰고 있다.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것도 모르고 다들 츳키의 주변을 서성이며 소리를 지른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는 쉽게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가만히 있지만, 내게는 시끄럽다며 곧잘 주의를 준다. 우리는 어쩌면 꽤친한 사이일지도 모른다. 

 

“츠키시마, 집 가자!

 

아, 오늘은 안돼.

 

 요즘 들어 부쩍 어디론가 사라지는 거 알아? 이전에도 그런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자주인 것도 처음이고 어디에 다녀온 건지도 도저히 말 안해주고. 서운? 서운한 것일까. 내게 비밀이 생겨서? 그러니까 이전에도 내게 뭐든 털어놓는 사람은 아니었잖아. 그래. 그러고보니 아는 것도 얼마 없어. 형에 관련된 일이라던가, 좋아하는 음식이 쇼트케이크라던가 하는 일 말고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잖아. 

 

“돌아가야지, 그만.”

 

 초등학교 일이 떠올랐어. 날 도와주려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 날의 츠키시마는 오늘까지도 내게 영웅과 다름없지. 존경하는 사람. 멋있는 사람. 항상 곁에 있고 싶었어. 나는 항상 츠키시마의 옆에 있고 싶었다고. 귀찮아한 거 알아, 시끄럽게 굴어서 미안해. 츠키시마는 나와 다르다는 것 쯤은 나도 알고 있는데 말이야.

 

“이게 뭐야….

 

 소꿉친구. 일방적인 관계라 내게도 어울리는 단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소꿉친구를 좋아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인 것 같아. 네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나는 이해해줘야 하는 거잖아. 그래야 네 곁에 있을 수 있겠지? 난 괜찮아. 난 정말로 괜찮다고. 나쁠리 없잖아. 츠키시마 네게 좋은 사람이 생긴 건데. 정말로, 정말로 괜찮지 않아. 괜찮지 않아. 츠키시마의 곁에 항상 있었던 것은 난데,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왜 그가 있는 거야? 츳키 대답해줘. 나는 네게 뭐였어?

 

 답 없는 물음이 떠돌기를 한참.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그래서 츳키의 뒤를 따랐어. 어쩔 수 없잖아.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 일이었어. 조금 후회스러워. 내가 츠키시만큼 이성적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이 장면을 보지 않아도 됐겠지? 네코마의 주장을 특별히 여긴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어. 그런데 나에게 비밀로 했던 일들이 고작 그를 만나기 위해서 였던 거야? 어째서? 내가 말하면 츳키가 이곳에 오지 못하도록 막을까봐? 그럴리가 없지. 그냥 귀찮아서 일 거야. 나는 츠키시마에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닌 걸. 츠키시마와 나는 단 한 순간도 같았던 적이 없었던 거야.

 

  멀리서 보였다. 다가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네코마의 주장이 츠키시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츳키는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운 듯 안경을 고쳐 올렸다. 평소의 표정과는 사뭇 달랐다. 여전히 미간이 잔뜩 좁혀진 화난 인상이지만 어딘가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본 적 없는 모습이다. 내게는 없는 츠키시마다. 이 거리에서만 볼 수 있는 츳키다. 욕심이 났다. 한 걸음을 내딛었다. 금세 들켜버릴텐데, 나는 무엇을 위해서인지 자꾸만 앞을 향하려 했다. 조금만 더 가까이에서 그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나는 그를 포기할 수 있을지도 몰라.

 

“야마구치…?

 

 처음으로 네 입에서 나온 나의 이름이 달갑지 않았어.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어. 맞아, 난 겁쟁이라서 도망쳤어. 모두 알아버린 나에게 츠키시마가 무슨 태도를 보일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었어. 나는 말야, 아직도 츠키시마에 대해서 잘 모르겠어. 그런데도 너를 잃고싶지 않아, 츳키. 조금만 기다려줘. 정말, 아주 조금이면 돼. 모두 금방 끝날 거야. 정말 금방. 이런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나를 밀어내지 말아줘. 나는 네가 좋아.

 

 미안해, 츠키시마. 나는 겁쟁이인 주제에 욕심이 많아서 너를 포기할 수가 없어. 그치만 네가 없는 건 죽어도 싫어. 그것만큼은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지금 이대로도 충분해. 예쁜 여학생들에게 츠키시마의 우체통 정도로 취급 받지만, 내가 츳키와 친하다는 것 같아서 기분 좋아. 그러니까 츠키시마, 내가 널 포기할게. 친구로라도 옆에 있어줘.

 

 아침이 밝았다. 학교에 가야 하는데, 어쩐지 몸이 무거웠다. 몸이 불덩이 같았다. 오늘 꼭 츠키시마를 봐야 하는데,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학교를 빠졌다. 츳키가 나의 걱정을 해주어으면 좋게다는 생각을 했다. 포기라니, 어쩌면 나는 평생 짝사랑만 하다가 죽을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온몸이 쑤시고 아픈 와중에도 바보같은 생각이 떠올라 웃었다. 그러다 눈을 감았고, 잠이 들었다. 일어난 것은 저녁이 다 된 시간, 그리고 츠키시마로 부터의 한 통의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

 

[잠 들어서 받질 못했어, 미안해 츳키]

[할 얘기 있는데 너희 집으로 가도 돼?]

 

 답은 없었지만 이미 츠키시마의 집을 향하고 있었다. 아직 조금 어지럽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츠키시마와 어색하게 되어버릴지도 몰라 불안해서 도저히 가만히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항상 걷던 길이 오늘따라 낯설었다. 더디고 멀게 느껴졌다. 다짐이 꺾이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나는 어느새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지금은 조금 곤란하다는 츳키의 답장이 오기를.

 

[그래.]_츳키

 

 신은 어째서 항상 나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걸까. 나 너무 무서워, 츠키시마. 널 보러 가는 길이 이렇게나 무겁고 슬프게 될 줄 몰랐어. 그런데 돌아갈 수 있을리가 없잖아. 오늘이 아니면 말하지 못할텐데, 그렇다면 츠키시마도, 나도 계속 그 일을 신경 쓸테니까. 그래도 츳키는 걱정하지 마. 나는 항상 네 편인 걸-

 

 츠키시마의 집 앞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누르기 이전 망설이던 손가락이 꿈틀거리는데 문이 열렸다. 얇은 면티 차림의 츳키가 나를 바라봤다. 무심한 표정 뒤로 그 날의 얼굴이 겹쳐졌다. 나에게도 보여준다면 좋을텐데.

 

“빨리 안 들어오고 뭐해?

 

“저, 츳키-

 

“감기잖아. 볼이 빨개.

 

 이전과 같은 다정한 한 마디에 울어버릴 뻔 했다. 정확히는 이미 가득 차오른 눈물을 애써 참아보려고 했다. 귀찮아 할 거야, 츠키시마가 나를 싫어하게 될 거야. 꾸역꾸역 넘어오는 울음을 참으며 말했다.

 

“좋은 사람 만나서 다행이다.

 

 어젯밤 잠들기 이전에 여러번 연습했지만, 역시나 실전에서는 어려웠다. 위기의 순간 핀치서버로 투입되었던 그 날만큼이나 떨리고 무서웠다. 게다가 오늘은 감정이라는 복병까지도 나를 방해했다. ―결국 눈물은 두어방울 흘러버렸다만, 묶어놓았던 것들이 터지는 것을 겨우 막았다.

 

“네코마의 주장이라면, 정말 멋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 쯤 되어야 츳키랑 어울리니까.

난 정말로 잘 됐다고 생각해. 축하해 츳키―

 

“야마구치.

 들려온 음성을 따라 시선을 올렸다. 물기가 가득차 시야가 불편했지만, 더는 츳키를 성가시게 하고싶지 않아서 눈을 부릅 뜨며 참았다. 그리고 가볍게 츠키시마의 입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어라…? 츳키의 입이?

 

 고개를 든 이후의 기억은 흐릿해. 아마도 나의 상상이 더해진 꿈이 아닐까 싶어. 가끔, 현실과 도저히 구분하기 어려운 생생한 꿈을 꾸기도 하니까. 적어도 츠키시마가 내게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은 꿈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잖아. 그렇지? 그런거지, 츳키? 이건 꿈일 거야. 꿈….

 

“츠,츠츠츳키― 저기, 이건…!

 

“시끄러워, 야마구치. 들어왔다가 가.

 

 깨어날까봐 불안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눈을 뜨면 눈 앞에 익숙한 천장이 보일까봐 걱정되었다. 그러나 츠키시마가 잡아챈 나의 손목이, 그곳으로 느껴지는 따뜻한 열기가 이곳에 현실임을 이야기해 주었다. 붉어진 귓바퀴. 반대쪽을 향한 눈동자. 수줍어 보이는 그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다. 조금 보태자면, 그 날의 츠키시마와 굉장히 비슷했다.

 

“나 아픈 거 같아, 츳키!

 

“감기면서 밤 중에 돌아다니고 그러는데 안 아픈 쪽이 이상한 거지.

 

 잔뜩 인상 쓴 표정으로 건네준 컵을 받아들었다. 그 안에 가득 담긴 유자향이 달콤했다. 그의 기분도 이럴까. 그렇다면 완전히 나와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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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쿠로츠키] 해답

연성질/안녕큐 2016. 2. 5. 02:09

바보 같기는.

 

 추운 날씨에 연습 오프. 도쿄는 눈이 왔을까. 나랑은 관계 없는 일이잖아. 생각과는 다르게 발걸음이 도달한 곳은 네코마 고교의 앞이었다. 이런 거 예정 외의 일이라고.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집에 도착해서 쇼트케이크를 먹고 있어야하는 거잖아. 하얗게 질린 손으로 꽉 쥐어든 케이크 상자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교문 앞을 서성거렸다. 엄청나게 수상해보여. 도대체 이곳에 뭐하러 온 건데.

 

“멍청이 짓 그만하고 돌아가자.

 

 최근 너무 바보들이랑만 지내서 그런 거야. 나까지 이상해진 것 같네. 목까지 올려 잠근 져지에 얼굴을 묻고 몸을 돌렸다. 아주 천천히 한 발자국을 떼어냈다. 이상하네. 도대체 뭘 기다리고 있는 거야, 뭘 기대하고 있는 건데. 생각대로 몸이 따라주지는 않았다. 느릿하게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겨우 교문 근처를 벗어났으려나. 어쩐지 나는 자꾸만 그와 관련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고작 합숙에서 몇 번 마주친 것이 전부인데.

 

‘안경군, 자유 연습 도와줘.’

 

 얼굴이 화끈거렸다. 히나타만큼이나 단순무식해 보였는데, 배구 공을 쥐었을 때의 모습은 또 다르다. 의기양양하게 보쿠토씨의 스파이크를 막아낸다 거나 다이치 선배나 할 법한 나이스 리시브를 보여준다 거나 알 수 없는 사람이라 불쾌한데도 자꾸만 눈길이 간다. 자유 연습 하자며 귀찮게 달라붙는 것도, 채찍과 당근이랍시고 사람 속을 긁어대는 것도 짜증나는 사람인 것이 분명한데도 나는 이 사람을 찾고 있다.

 

 

“어라? 안경군? 무슨 일이야 여기는?”

 

“아, 저, 그냥 지나가는 길에….”

 

“딸기 케이크? 의외네, 안경군.”

 

 완전히 아이 입맛이잖아? 놀림 받는 기분도 썩 나쁘지가 않다. 아, 어쩌면 나 M일지도. 이거 굉장히 어이 없는 생각이잖아?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그나저나 정말 뭐하러 온 거야? 도쿄에는.

 

 잔뜩 엉켜진 실타래의 끝을 잡았다. 풀기 위해 애를 써도 보이지 않던 매듭이 명쾌하게 헤치워졌다. 인간은 참으로 단순한 동물이다. 부정하려 해 보아도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감정이 이성을 잠재우고 모든 사고가 정지하면 그제서야 찾지 못한 답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뭐 하러 왔냐니, 그거 타나카선배 만큼이나 단순하고 명확한 거잖아.

 

“그런 건 됐고, 쇼트케이크 좋아하나요, 쿠로오씨.”

 

 답을 찾았다면, 적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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