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쿠로츠키] 그 남자의 사정

연성질/안녕큐 2016. 2. 14. 03:30
*폰작업 저퀄, 캐붕 주의. 쿠로오 자존감 낮음 주의.
*쿠로오와 츠키시마는 여름합숙 때부터 사귀었다는 전재입니다.

 안경 쓴 까칠한 녀석이었다. 자존심이 강해 조금만 건드려도 자극할 수 있는 쉬운 타입이면서도, 어딘가 단단히 어긋나 금세 손을 놓아버렸다. 그 알 수 없는 건조함에 관심이 생겼다. 여름 합숙의 짧은 기간에 관심은 더욱 깊은 감정으로 변하였고, 내가 내민 손을 그는 조금 망설이더니 기꺼이 잡아주었다. 손에 가득 채워지는 그의 온기가 따뜻했다.

 처음에는, 맞잡은 나의 손마저 놓아버릴까봐 걱정했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그의 손을 붙잡은채 매달려야할지, 아프지 않게 보내주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들이 정말 쓸데 없는 걱정임을 알았다. 더욱 견고하게 조여오는 손가락 사이의 압박감이 적어도 나의 고백을 거절하지 못하여 사귀는 것은 아니라고 안심시켜주었다. 어른인척 구는 그가 이따금씩 내게 기대어 온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 그는, 항상 감추려하지만, 감정을 쉽게 들키는 타입이었다. 싸움도 없이, 단란한 연애였다. 츳키와의 연애는 매일이 행복했다. 나는 그 행복을 유지하기를 원했다.

 츳키는 고등학생, 나는 성인이다. 공부에 치이는 그와 돈에, 학점에 허덕이는 나는 서로에게 소홀해질지도 모른다. 나는 지레 겁을 먹었다. 어느 순간 그가 도쿄에 오는 것을 껄끄러워하면 어쩌지. 나와 만날 시간이 사라지면 어쩌지. 과제에, 알바에 밀려 더 이상 츳키와 시간을 맞출 수 없으면 어떡하지. 그저 나의 노파심이었다. 우리는 문제 없이 앞을 향했다. 다만, 그는 고집이 강했고, 나는 그런 그에 대한 걱정을 잊으려 저런 의미없는 생각을 되뇌었을 뿐이다. 나로인해 츠키시마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포기해버릴 까봐. 그렇게 된다면 내 쪽에서 그를 놓아줘야할테니까.

 츳키가 고3이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사귀는 중이다. 그는 공부할 시간을 버리며 나를 찾았고, 나는 이기적이게도 그런 그를 거절하지 못했다. 가끔은 밤을 새워 피곤한 눈을 하기도 했는데, 오늘치 일을 몰아서 끝내느라 그랬다고 대답했다. 사랑의 시작은 어슬프기에 위험하다. 그는 온전치 못한 마음을 내게 주려다 조금씩 망가지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결심했던 말들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던 거짓을 내뱉었다. 그 여름날, 얼음이 녹아도 짙어, 씁쓸하던 커피 앞에서.

 “벌써 2년째네, 우리 만난 거.”

 “그렇네요. 쿠로오씨랑 2년이나 만나게 될 줄이야.”

 “2년이나 됐으니까 이제 그만둬도 괜찮잖아? 오래 만났으니까.”

 2년이나 만났으니 헤어져도 좋다니. 우습지도 않은 말을 내뱉고는 일어섰다. 넘쳐 흐르던 감정은 그 작은 커피잔에 몰아넣고 모두 녹여냈으니 더는 신경쓸 것도 없다. 츳키는 뭐든 철저하니까 내가 없다면 더는 망가지는 일도 없을 것이고, 분명 금세 좋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은 성숙해진 것으로 진짜 사랑을 이룰 것이다. 나와의 연애는 그저 성장을 위한 연습 경기였으니까. 배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다음이 없다는 것, 정도일까.

 츳키가 보고 싶어지면, 욕심 내지 않은 자신을 탓했다. 가끔씩, 술에 취할 때 라던가, 모른 척 그에게 전화를 걸면 항상 꺼져있는 츳키의 핸드폰이 그를 대변해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너무 힘들어서, 나와의 이별이 못견디게 괴로워서 아프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들려오는 소식 속 그는 여전했다. 다행이야. 분명 그게 맞는데, 어쩐지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서운하긴 하네.

 오늘은 억지로 이끌려 나갔던 소개팅에서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고 누군가를 소개 받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하고는 멋있게 도망쳤다. 츳키와 헤어진 계절은 여름이었는데, 어느새 바닥에는 낙엽이 잔뜩 깔려있다. 그 날 이후로 그 카페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커피에는 입도 댈 수 없었다. 그를 잊기위해 모든 추억을 돌고 돌아 피했다만, 언제나 가장 최악의 순간에 마주쳐 나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오늘, 바로 지금처럼.

 “쿠로오씨.”

 머리가 멈추어 버렸다. 가끔 시험지를 보고서 이랬던 경험이 몇 번 있지만, 오늘은 유난히 당황스러웠다. 심장 소리에 묻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조금 마른, 그렇지만 여전히 심술궂은 그 얼굴이 반가워 울음이 터져나올 뻔 했다. 아, 츠키시마. 바보 같은 호명이 내 최선의 대답이었다. 성대가 제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을 간신히 꺼내어 내뱉은 말이니까.

 “잘 지내시는 것 같네요. 그럼 가볼게요.”

 츳키가 너무나도 의연해서, 당황해서 머리까지 멈추었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눈 밑이 따끔거리고, 목구멍이 꽉 막혀 아팠다. 그가 걸어온 길을 따라 반대편으로 멀어졌다. 돌아보지 않는다. 미련 갖지 않는다. 이 끔찍한 카페 앞을 지나치며 나는 절대 울지 않는다.

 아마 내가 겪어본 상황들의 안에서, 후회하지 않는 선택은 없다. 어떤 것이든 반드시 끝에 다다르면 가슴을 치고 원망할 것이다. 그러나 그 옛날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이 선택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다른 어떤 선택들 보다 이것이 베스트란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스치듯 지나쳐 사라진 것들이 알게 모르게 흔적을 남기고, 후회는 그저 눈에 띄는 한 종류일 뿐이다. 후회가 남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한 때 마음을 함께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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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쿠로츠키] 낙홍(落紅)

연성질/안녕큐 2016. 2. 12. 00:38

*폰작업 저퀄, 캐붕 주의. 낙엽에 츠키시마의 첫사랑을 이입해주세요!
*쿠로오와 츠키시마는 여름합숙 때부터 사귀었다는 전재입니다!

 “벌써 2년째네, 우리 만난 거.”

 “그렇네요. 쿠로오씨랑 2년이나 만나게 될 줄이야.”

 “2년이나 됐으니까 이제 그만둬도 괜찮잖아? 오래 만났으니까.”

그의 이별선고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는 표현은 확실히 과장이었을까. 오히려 모두가 이상하리만치 정상적이다. 쿠로오씨가 먼저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다소 놀랐지만, 그게 전부. 고작 고교시절의 연애를 가지고 슬퍼한다거나 미련을 갖는 쪽이 오히려 웃긴 것이다. 언제라도 준비했다는 듯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나가고, 나는 홀로 남아 쇼트케이크를 먹었다.

 “... 맛 없네.”

 모두 내버려둔 채 나와버렸다. 그 카페에 남은 것은 먹다 만 쇼트케이크 이외에도 많았지만, 나는 모른척 고개를 돌렸다. 마음을 가볍게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랬기에 이것, 저것을 챙겨나올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핸드폰을 들었다. 그렇게 싫다고 거부하던 배경의 쿠로오씨를 어쩐지 나는 바꿀 수가 없었다. 전원 버튼을 길게 눌러 핸드폰을 꺼버렸다. 심심할 때, 쿠로오씨가 생각날 때 즈음이면 어김없이 울리던 것이 잠잠할 테니까. 사람도 이 같다면 좋을텐데.

 정말 금세 잊혀졌다. 고3이니까 공부라던가, 마지막이 될 배구에 집중해서일까. 아니, 어쩌면 애초에 쉽게 지나갈 사람이었을지도. 그랬으니까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버린 거겠지.

 “츳키! 오늘은 네코마 주장 만나러 안 가?”

 “아, 헤어졌어.”

 “헉. 미, 미안!”

 “괜찮아, 별 거 아닌데.”

 “별 거 아닐리 없잖아, 2년이나 만났는데.”

 “괜찮다니까?”

 “괜찮다면 왜 아직 핸드폰 꺼 놓은 건데?”

 걸음이 우뚝 멈춰섰다. 야마구치의 말 때문이 아니라 그저 핸드폰에 무언가 온 것 같아서. 꺼내려고 손을 움직이다 그만두었다. 여전히 꺼져있는 핸드폰이 울릴리가 없잖아. 스스로 전원을 꺼 놓은 주제에 도대체 무슨 연락을 기대하는 거야.

 “별 거 아니라면 아닌 거잖아.”

 “... 응, 미안해, 츳키..”

 야마구치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맞는 이야기만 했는 걸. 그렇지만 어딘가 잔뜩 꼬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전히 핸드폰을 꺼 놓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심한 녀석이다. 켜버린다면 곧바로 그에게 전화해서 왜 내게 헤어지자고 했는지 따질지도 모른다. 그걸 물어서 쿠로오씨에게 어떤 것이든 답을 듣는다면 어쩔건데. 다음을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은 해서는 안돼. 나는 그 모든 리스크를 감수할 자신이 없으니까.

 사랑에 빠진 순간, 인간은 변한다. 지금껏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푸르던 나뭇잎이 붉게 물든 시점에서야 내가 사랑에 빠졌음을 깨달았고, 우리가 늘 갖고 있던 온도차는 한 쪽이 달아오르면 다른 한 쪽은 식어버리는 것이었다. 비로소 마음을 깨달은 때는 너무 늦어버렸다. 그리고 단풍은 떨어질 차례만을 기다린다.

 “쿠로오씨.”

 “아.. 츠키시마.”

 츳키도, 케이도, 안경군도 아닌 츠키시마. 누구에게나 불려지던 나의 성이 이토록 듣기 싫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는 운동을 열심히 하는지, 살이 조금 빠진 것 같았고 늘 하고있는 뻗친 새집머리가 아닌 단정한 꼴을 하고 있었다. 여자라도 만나려는 듯이. 난 지금 누구에게 이렇게까지 화가 난 거지? 뭐가 이렇게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건데. 도대체 왜야.

 “잘 지내시는 것 같네요. 그럼 가볼게요.”

 아마도 번호가 바뀔 때까지 핸드폰을 켜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 없으니까.

 바람이 불었다. 나뭇가지에 붙어 흔들리던 잎들이 그에 맞추어 떨어졌다. 개중에는 새빨갛게 물들어진 몸을 잔뜩 웅크린 것도 있었다. 바스락- 작은 소리에 부서져 흩어지는 그런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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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스가와라] 백색 까마귀

연성질/안녕큐 2016. 2. 11. 20:49

*카라스노가 전국 준결승에서 네코마에게 패했다는 전제의 이야기 입니다.

*스토리와 깊은 관련은 없지만, 약 스포가 있습니다. 싫으신 분은 화면을 꺼주시면 됩니다.

*캐붕과 스가의 과거 날조가 있습니다.

 

 휘슬이 울렸다. 카라스노에서의 배구는 이제 끝이다. 어쨌거나, 우리가 져버렸지만 내가 아직 남아있는 시점에 쓰레기장 결전 이란 것을 만들어내서 다행이다. 코트에 남아있고 싶어, 아쉬움이 컸지만 후회가 남는 3년은 아니었다. 어디선가 당당히 말할 수 있잖아, 나도 배구를 했다고. 꿈이, 청춘이 있는 코트에 나도 함께 서 있었다고.

 

 “자네, 입부 할건가?”

 

 “예, 예? 아니, 저….”

 

 “은발미남이라니, 우리 배구부에 꼭 필요한 마스코트라구요. 절대로 설득하세요!”

 

 대학 배구부에 들 생각은 없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으니 추천서가 올 일도 없었고, 애초에 배구가 진로는 아니었으니까. 꾸준히 공부를 해왔고, 가끔 지칠 때 숨통을 트이게 해준 취미생활이었다. 다이치를, 아사히를 만나서 단순한 취미 이상의 의미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카라스노를 졸업한 시점에서 내게 배구는 그저 과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어쩌면, 배구에 미련을 갖고 있었을지도. 대학 배구부 코치님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을 때, 정말 날 듯이 기뻤다. 두근거렸다. 카라스노에 입학했던 그 날 처럼.

 

 “얼레? 상쾌군 이 학교였어? 것보다 배구 계속 하는 거야?”

 

 “그게 이렇게 되어버렸네, 하하.” 

 

“안됐다, 그런데. 언제나 벤치조네, 상쾌군은.”

 

 작년에는 토비오쨩에게, 올해에는 내게 밀려서. 틀린 말은 아니지. 나는 오이카와나 카게야마 보다는 실력이 떨어지는 세터니까. 그렇지만 이대로 부주전에 남아있을 생각은 없다고. 게다가, 주전이 아니라도 관계없어. 괜찮은 걸, 여전히 배구 할 수 있다면.

 

“…여전히 열받은 포지티브네.”

 

_

 

“저, 싱크로라던가, 핀치서버, 투세터라면 경험이 꽤 있어서 할 수 있습니다.”

 

“확실히 스가와라는 공격의 새로운 수가 되는 구만, 그래. 과연 카라스노 출신이야.

 

“그러게. 코시쨩은 늘 착실한 세터의 느낌이라 카라스노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는데, 역시 잡식고교는 달라.”

 

 나는 멈춰있었다. 갑작스레 밀려 온 재능덩어리들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머물러 있었다. 다들 새로운 것들을 연마하며 성장 해 나가는데  나는 도저히 뭘 해야할 지 몰랐다.  ‘스가와라상, 토스 올리는 법 가르쳐주세요.’ ―도쿄의 녀석들을 만나서 진심으로 다행이야. 니시노야들이 나와 함께 호흡을 맞춰주어서 진심으로 다행이야. 니시노야의 토스로 보란듯 성공해낸 싱크로 공격의 감촉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곳에서는 나도 새로운 걸 할 수 있었어. 당연한 거라고.

“―잡식 강호죠, 카라스노는.”

 

 자랑스럽게 웃었다. 한 때 나 자신조차 카라스노에 어울리는가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 백색 까마귀. 그러나 나 역시 결국은 까마귀인 걸. 1학년에게 주전을 빼앗겼던 카라스노의 착실한 세터였기에, 늘 그렇게 내 자리를 지켜왔기에 코트에 설 기회도, 새로운 기술도 생긴 거야. 카라스노가 나의 배구야. 내가 미련을 갖고 있던 건 아무래도―

 

[엔노시타, 오늘 카라스노 놀러 가도 돼?]

 

 어리숙한 까마귀들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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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카게히나] 카게히나썰

연성질/안녕큐 2016. 2. 11. 04:13

*카라스노 삼학년즈가 졸업 한 이후의 설정입니다. (유급해라 삼학년즈..!)

*캐붕과 짧음에 주의하세요!

 

우와우와우와, 오늘이잖아. 무려 신입생이 들어오는 날이라고! 도저히 말도 안되잖아, 내가 선배라니! 우와, 나 어쩌면 좋지?

 

 “말도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네, 히나타.”

 

“…째째시마 그런 성격이라면 분명히 후배들이 싫어할 거라고.”

 

“히나타, 너 츳키를 그렇게 부르지 마!”

 

 “야마구치 시끄러워.”

 

 신입생…? 선배? 우리들 밑에 누군가 생긴다고? 아, 그건 그거지만, 누군가 히나타의 시선을 빼앗아버리면 곤란한데. 이대로 아무도 들어오지 않으면 안되는 거야? 아, 그래, 작년 신입생도 고작 나와 히나타, 야마구치, 재수없는 안경자식이 전부였으니까. 어쩌면 이번에는 신입생이 0명일지도 몰라. 어쩐지 느낌이 좋군!

 

 “2학년들 이제 오는 거야?”

 

 “아, 네. 엔노시타 선ㅂ…”

 

 “노야선배, 신입생은요? 1학년들 들어왔어요?”

 

 “후후. 신입생이라면, 바로!”

 

 느낌이 좋기는 무슨. 여덟 명이나 새 부원으로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 중 두 명을 제외한 모두가 배구부에 가입했다고 한다. 빠진 두 명은 단순 변심이라나, 아아, 남은 여섯 명 모두 그런 변덕을 부려주면 좋잖아. 쓸데없이 올곧은 녀석들 같으니라고. 아무리 선배라고 불러줘도 가리가리군이라던가, 고기만두를 쏘는 일은 없어. 이런 망할 신입생들. 특히―

 

 “선배가 그 히나타 선배죠? 저 히나타 선배의 경기를 보고 카라스노에 오겠다고 결심했다구요!”

 

 “우―왓! 엄청 커다랗잖아, 너?”

 

 “그치만 히나타 선배가 훨씬 거대한 느낌이라구요! 코트 전체를 장악하는 느낌…! 꼭 같은 코트에서 경기 해보고 싶어서 왔어요!”

 

 “그렇구나! 그렇다면, 포지션은?”

 

 “세터입니다!”

 

 신입 세터, 너. 큰 키에 귀엽게 웃으면서 그렇게 세터라고 대답해버리면 말야 네가…

 

 마음에 들어버리잖아…!

 

 아아, 곤란해. 이렇게나 사람 마음에 잘 드는 인상의 녀석이라면 분명 히나타도 녀석에게 빠져버릴 거라고. 으윽, 그렇지만 밉지가 않다. 눈 마주치지 말아라, 눈 절대 마주치면 안…!

 “카게야마 선배시죠!”

 

 “드애으아각!?”

 

 “풉. 꼴 사납네, 제왕.”

 

 “저, 혹시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너, 너 그렇게 싹싹하게 굴지 말라고!”

 

 결국 민망함에 화끈해진 얼굴을 숨기려고 급하게 체육관 밖으로 나와버렸다. 도망치던 도중에 타나카 선배를 닮은 누군가를 만난 것 같지만 착각이겠지, 뭐. 처음 보는 후배에게 그런 말이나 해버리고, 젠장. 그치만 너무 귀여워버렸다고.

 

“저기, 카게야마?

 

 “히, 히나타!

 

그렇게 뛰쳐나가버리면 어떡해? 카게야마 마음에 드는 후배가 있었나봐, 엄청 긴장했네.

 

“그럴리가 없잖아!

 

 무슨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물론, 그 신입 세터가 조금 귀엽긴 했지만, 널 두고 누굴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거야, 히나타 보게. 미간을 좁히며 히나타를 돌아봤다. 눈에 힘이 들어가서 일까, 노을 빛과 어울리는 히나타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그 모습을 더욱 가까이 하고싶어 자꾸만 인상을 찌푸리며 앞으로 다가갔다. 왜인지 히나타는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어, 알았다구. 그런게 아니라면 나도 다행이니까.

 

 그러니까 돌아가자, 토비오! 아, 이름을 불러줬어. 다시금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얼굴색, 아마 히나타의 머리색 같을 거야. 그것보다도, 신입 세터. 가리가리군 두개에 고기만두 추가야. 나중에 꼭 사주마.

 

 “그래, 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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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보쿠아카] 네가 있어야―.

연성질/안녕큐 2016. 2. 10. 00:32

* 캐붕에 주의하세요

[오늘 아카아시 보러 갈게!!]_보쿠토상.

“... 제멋대로.”

 오늘 수업 있는 날 일텐데, 겨우 연습 경기를 가지고 후배들의 첫 경기를 봐야겠다며 부산을 떨더니 결국에는 자체휴강까지.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성가신 사람이다. ―랄까 어쨌거나 오늘 네코마와의 경기를 이기지 못해서야 여러모로 민폐잖아, 보쿠토상에게. 목에 잔뜩 힘이 들어가서는 코치님께 세 번이나 지적당한 후에야 몸이 풀렸다. 그러나 강한 부담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이기고 싶어, 그에게 부끄럽지 않게.

“아카아― 시! 반갑지? 보고싶었지? 이 보쿠토상이 그리웠지?”

 “시끄럽게 연습의 흐름을 끊지 말아주세요.”

 늘 보던 체육복이라던가, 교복이 아닌 완전한 일상복의 그는 조금 멋있을지도. 한심한 생각에 정신을 차리려고 얼굴을 짝 소리나게 쳤다. 굉장히 큰 소리가 났다며 호들갑떠는 보쿠토상을 무시하며 연습을 재개했다. 오늘은 오나가들의 컨디션도 좋은 편이니까 어쩌면 보쿠토상에게 멋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경기는 힘겨웠다. 완벽에 가깝던 리드블록이 없긴 하지만, 우리에게도 공격의 주축이던 하이랭크의 스파이커가 공석이었다. 게다가 등 뒤의 사람 에게 잘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발목을 잡았다.

 “아카아시, 오늘 왜 그래.”

 “죄송합니다. 집중할게요.”

 결국 타임아웃 때 불려나가 남은 1회전도 이런식이면 빼버리겠다는 감독님의 무시무시한 말을 들어버렸다. 보쿠토상, 실망했겠지. 고개를 들자, 그는 어쩐지 의기양양해서는 엄지 손가락을 올려보였다. 멍청한 얼굴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그 이후라면 그런대로 제 실력을 보였다. 결과는 2:1, 우리 쪽의 승. 자신의 후배들이라 이겼다며 신이 났을 보쿠토상을 상상하며 돌아봤더니 왜인지 의기소침모드.

 “후쿠로다니는 내가 없어도 대단하구나... 아카이시가 있으니까..”

 아. 이거구나.

 “보쿠토상이 있었다면 스트레이트로 이겼겠죠.”

 눈을 반짝이며 되묻는 그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도 아니니까. 헤이헤이헤-이 들뜬 목소리가 과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쩐지 그리웠던 소리에 슬핏 웃음이 나왔다.

 “어? 웃었다!”

 저 정신없는 모습은 아마도 학기가 완전히 시작되면 볼 수 없을 것이다. 늘상 누군가의 텐션을 생각한다거나 해야하는 게임도 없을 것이다. 그는 성격도, 실력도 좋으니 항상 사람들 주변에 둘러쌓여 바쁠 것이다. ―그러다보면 곧 좋은 사람도 생기겠지. 좋다. 시끄럽고 귀찮은 사람이 이제는 나를 찾을 일이 없을테니까. 그런대로 나쁘지 않다. 괜찮아.

 “그런데 아카아시는, 보쿠토와 이대로여도 괜찮은 거야?”

 “무슨 의미입니까.”

 “누군가 이미 채간 후에는 후회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켄마의 말이 맞았다. 아마 굉장히 후회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그런 것 만큼도 나를 필요로하지 않는 보쿠토 상의 발목은 붙잡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렇겠죠. 하는 어색한 대답을 남기고 이 불편한 이야기를 넘겨버렸다.

_

 이상한 감정 기복에 휘둘렸던 날이 희미해질 때 즈음, [연습 경기 보러 와, 아카아시!]하는 문자에 그의 학교를 향했다. ‘손가락에 꼽히는 스파이커’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저력이었다. 물론, 보쿠토상의 의기소침 모드 덕분에 애를 먹었다만, 어쨌거나 그의 팀이 스트레이트. 성인이어서 일까 팀에 있을 때의 모습이 꽤나 듬직해 보였다. 완전히 녹아들어 파이팅을 외치는 보쿠토상이 익숙하면서도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어 낯설었다.

 “헤이헤이헤-이! 봤어, 아카아시?”

 “이겼네요.”

 “그렇지, 끝내주게 멋있게! 물론 아카아시와 함께인 편이 더 좋았겠지만.”

 “그렇죠, 보쿠토상이 이상한 코드에서 좌절하는 바람에 두 번이나 위기를 맞았잖아요.”

 네가 있어야―. 의기양양하게 뱉은 그 말이 어쩐지 여전히 내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실제로는 그저 지난번의 말을 되갚은 것 뿐이겠지만, 부끄러웠다. 후회해봤자 소용 없다고. 지금 켄마의 말이 떠오른 이유는 뭘까.

 “그래도 오늘은 꽤 멋있네요.”

그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 입구로 향하는 내내 가슴이 쿵쾅거렸다. 나는 최선을 다 했어. 입술을 깨물며 짙은 감정의 여운을 구겨 넣었다. 그리고 내 어깨어 닿아, 깊게 풍겨오는 그의 냄새에 모두 폭발. 넘쳐 흐르는 마음 너머로 그의 웃음이 다가왔다.

 “역시 네가 없는 배구는 재미가 없어. 빨리 우리 학교로 오라고!”

웃었다. 낯간지러운 말을 들어버려서 일까, 아니 역시, 행복해서가 맞겠지.

 “1년이에요, 금방 가겠죠.”

보쿠토상이 없는 배구가 재미 없는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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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쿠로스가] 인어공주야.

연성질/안녕큐 2016. 2. 8. 03:11

 나는 언제나 너의 한 발 뒤에 있었다. 흔들리는 은발의 뒷통수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좋았다. 자신의 토스가 끝끝내 득점으로 연결되었을 때에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시들게 하는, 오로지 자신만이 반짝거리는 미소를 보였다. 너희 까마귀는 이해할 수 있잖아? 나는 그 반짝임이 갖고싶었다. 너를 온전히 독점하고 싶었다. 그러나 네 곁에는 언제나가 있었다. 잠시도 네 곁에서 떨어지지 않아, 너를 감상하는 것을 지독하게 방해하였다. 단 한순간. 네가 벤치에, 그가 코트에 있는 순간을 제외하고.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우리 사이에 있어서 사라져야할 존재였다. 준비를 거듭하였다. 나는, 이를 위해서, 언제나 너희의 너의 한 발 뒤에 있었다.

 “다이치!”

 “뭣들 해, 빨리 구급차 불러!”

 왜 그런 표정이야, 스가와라. 우리의 방해물이 없어진 이 시점에 가장 행복해야 할 사람은 바로 너와 나인 걸. 나는 어느 누구도 죽이지 않아. 내 소유물이 아닌 이상 그런 취미 없어. 그저 날개를 꺾었을 뿐이야. 날 수 없는 새는 더 이상 쓸모가 없잖아? 그러니 나를 봐. 내게 고개를 돌려라. 어미 잃은 아기새를 어떻게 대해야하는 지에 관한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넋이 나가 벤치에 앉아있는 너에게 다가가 무겁게 한마디를 내뱉으면 될 일이었다.

 “미안해, 내 잘못이야.”

 “... 괜찮아. 경기 도중에 일어난 일이고, 다이치라면 분명히 다친 쪽이 네가 아니라 다행이다- 라고 했을테니까.”

 웃으며 내 등을 토닥이는 너의 목소리에 어딘가 슬픔이 어렸다. 한층 더 아름다워졌을까나. 그 이후로 나는 너와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운명이랄까, 그의 병원에 가면 언제나 너를 마주쳤으니까. 너는 언제나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였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 말은 마치 자신에게 내뱉는 말 인 것 같았다. 언젠가 말 없이 안아주었을 때에는 내게 기대어 울음을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어느 쪽으로 보나 결과는 오케이였다. 이번에는, 두 다리를 잘라내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쿠로오?”

 “아, 왔어, 스가?”

 그 이후로는 예정된 일 그대로였다. 나의 노력 끝에 너는 그 마음을 알아주었고, 천천히, 조금씩 나는 너의 삶에 녹아들었다. 한 때 의 것이었던 반짝이는 구슬이 바로 눈 앞에 놓어졌다.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절대 서두르지 않아. 두 번의 실패는 없어. 기다리고 기다리니 금세 해가 떨어졌다. 고요한 어둠이 깔린 도시야말로 고양이의 집. 한 번 봐둔 사냥감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 인어공주 스가와라. 내게도 토스를 올려, 그 환한 미소를 보여줘. 나의 배구는 너와 함께이고 싶어. 응, 나와 함께해줄래?

 너는 수줍게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아아- 드디어 눈부신 별빛 하나가 내 손에 들어왔구나. 왕자 따위는 관계 없어, 애당초 인어에게 다리를 갖고 싶어- 라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면 되는 거야. 그렇담 애써서 도망칠 다리를 잘라내거나, 미움을 사 괴로워할 필요가 없어. 나는, 나를 사랑해주는 네가 좋아. 그런 너를 갖고 싶었던 거야. 네가, 너의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내게,

 “쿠로오...?”

 흐릿한 너의 눈이 제 색을 찾더니, 짙은 눈물방울을 툭툭 떨어뜨린다. 붉은 빛에 엉켜진 회색 머리칼이 아름답다. 스가와라, 내가 갖고 싶은 것은 반짝이는 너의 구슬픈 목소리야. 빛을 잃기 직전의 감미로운 비명. 너라면 날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 그렇지? 자, 인어공주야. 이제 네 목소리를 들려주렴.

_

 코즈메 켄마. 스가와라 코우시.

 “아카아시!”

 “아, 오셨습니까. 보쿠토상도 금방 도착할 겁니다.”

 안녕, 인어공주야.

 

+)

 안녕, 켄마. 보고 있어? 친구가 생겨서 더는 외롭지 않겠네. 팔도, 다리도 없지만 너는 여전히 아름다워. 내가 가진 모두를 통틀어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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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츠키야마] 나와 같아. 下

연성질/안녕큐 2016. 2. 7. 16:24
 늘상 곁을 지켜주는 녀석이 있다. 첫 만남은 꽤나 오래 전, 뭐, 옛날 이야기는 취미가 아니니 그 정도로만 해두고 덧붙이자면 여전히 이런 사이이다. 언제나 내 옆에 붙어서 나의 기분을 알아주고 이것저것 이야기 해주고, 가끔은 귀찮게 굴지만 최근에는 그런 모습도 봐줄만 한 것 같다. 나랑은 정반대의 느낌. 늘상 생글거리고 열심이다. 바보 콤비 앞을 제외하면 항상 친절하고 상냥한 편이다. 지나가다 붙들려 나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어 귀찮을텐데도, 내가 시끄럽다고 핀잔을 주어도 웃는 얼굴이다. 그 웃는 얼굴이 보기 좋다.

 “안경군은 항상 함께 다니는 딸기군을 좋아하지?”

“하아? 딸기군은 또 뭡니까. 그보다 그 안경군이라고 부르는 것 좀 그만두시죠.”

“그렇담, 츳-키?”

“카라스노의 1학년 그만 괴롭히고 이리로 와, 쿠로.”

“아, 알겠어, 켄마. 혹시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연락하라고. 츠읏-키.”

 너만이 부르던 그 이름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자니 이상해. 차라리 안경군이라던가, 호타루라던가 하는 호칭이 나을지도. 끔찍하게 싫던 별칭이 더 낫다니. 그렇지만 야마구치가 나를 부르는 ‘애칭’같은 것이 다른 사람과 공유된다면 그거대로 마음에 들지 않아. 그의 마지막 말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보았는데, 어째서인지 휴대폰에 번호가 저장되어 있더라. 그러고보니 그가 늘 붙어다니는 작은 세터와 사귄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고.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아니, 역시 그건 좀 별로일지도.

 쿠로오상을 만났어. 도움이랄까, 이 사람은 그냥 날 놀리는 일이 즐거운 것 같지만 이걸로 확실하게 알 수 있어. 이건 친구에게 갖는 감정이 아니야. 근데, 난 있지,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두려워. 이런 점은 형과 조금도 다르지 않네. 어쩔 수 없잖아? 같은 츠키시마인 걸. 모른 척 할 거야. 전부터 날 향한 네 눈빛은 항상 동경. 네게 난 그저 그런 존재였지. 난 다가가는 법을 모르는데 넌 나를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해. 애당초에 내가 다가가려 해도 네가 도망가 버릴지도 모르는 노릇이잖아. 스스로 괴로운 일은 만들지 않을 거야. 형처럼 되지 않을 거라고.

“저, 츳키-”

“약속이 있어. 먼저 갈게.”

“으응, 알겠어..”

 그 이후로도 몇번이고 쿠로오상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 그는 곧잘 나를 아이취급하며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그럴때마다 그의 입에서 언급되는 야마구치의 이름에 별다른 반응을 보일 수 없었다. 부끄러움. 낯선 감정이었다. 빨리 달린 것도,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아닌데 심장 박동수가 높아졌다. 그 이상한 감정이 어색하였다. 그리고는 다음 날, 야마구치, 너를 봤을 때 처음으로 감정에 이성이 잠식당함을 느꼈다. 본능이 소리쳤다. 들켜서는 안돼, 절대로.

“츠키시마, 집 가자!”

“아, 오늘은 안돼.”

 1초만 더 머물렀다면 위험했을 거야. 당장에 떠오른 느낌에 휘둘려 내 멋대로 행동했을 거야. 이런 거 있어서는 안되는 거잖아. 넌 항상 노력하는데, 난 전혀 그렇지 않아. 네 충고를 듣고도 전혀 변하지 않았어. 멋있는 건 이쪽이 아닌 네 쪽. 도망치고있는 건 항상 나였어. 그렇다고, 이걸 알아버렸다고 해서, 뭔가 해결되는 건 아니거든. 난 항상 이럴 거야. 평생 변하지 않겠지. 언젠가 너도 이런 날 알겠지. 그렇다면 나를 떠날 거야? 그렇게 된다 해도 나는 잡지 못할, 않을 거야.

 “근데, 케이(츠키시마의 고집으로 바뀐 호칭), 진심으로 거절인 거냐? 딸기군이 널 좋아하더라도?”

 “그런 터무니 없는 가정은 관두죠. 그리고 야마구치를 그런식으로...”

 야마구치가 날 좋아한다면? ‘츳키-’하는 음성이 떠올랐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주근깨 투성이의 귀엽지 않은 얼굴로 웃음짓는 모습이 머릿 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쿠로오상의 손이 머리 위로 올려졌다만 지금은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이 자꾸만 드러나 혼란스러워지면 자꾸만 감정에 지배되었다. 지금처럼 눈 앞의 야마구치 두고도 반갑지 않은 척 거리를 좁힌다거나 하는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아, 잠시만.

“야마구치...?”

 야마구치의 표정이, 뒷모습이 이상했다.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빠르게 눈 앞에서 사라졌다. 공간이 닫혔다. 모두가 잠잠해졌고, 야마구치가 서 있던 곳, 달려나간 곳에 차례로 그의 모습이 형상화 되었다. 느릿하게 눈이 마주치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것봐라, 주전 선수 명단에 츠키시마라는 이름은 없지 않으냐. 오래 전의 기억에 야마구치가 끼어들었다. 소꿉친구를 연애대상으로 느낄리 없지 않으냐.

“츠, 케이. 이대로 놓지면 영영 잡지 못한다고?”

“괜찮아요. 어차피, 언젠가 겪을 결말이었고, ...”

 괜찮지 않아. 마지막 그 얼굴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아서 너무 걱정 돼. 이대로 널 영영 잃을까봐 두려워. 내가 지금 뭘 해야해? 너무 늦어버린게 분명한데. 이제와서 나는 사실 너를 좋아했으니까 우리 친구는 그만두자고 이야기 해야 하는 거야? 그런 거 말도 안 되잖아. 바보같아. 전처럼 다가와서 물어 주었으면, 마법처럼 모두 이야기 해버렸을지도 모르는데. 네가 너무 다른 사람인 것 같아서, 내가 알던 야마구치가 아닌 것 같아서 도망쳤어. 네가 없는 곳으로, 너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한심하네.”

 쿠로오상은 그 한 마디를 남기고 돌아섰다. 그의 판단이 정확했다. 수 없이 많은 기회를 걷어차, 이 자리까지 나를 밀어낸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한심한 놈. 그 말이야말로 지금의 내게 가장 어울렸다. 숨기기에 급했고, 지켜낼 의지가 없었다. 봐줄만 한 적당선만 넘기면 그거대로 오케이였다. 간혹 성에 차지 않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한심한 녀석이 맞다. 그러나 역시 남에게 들으면 열받네.

간신히 마음을 먹었는데 넌 학교에 왜 안 나왔을까.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전화할 용기가 났는데 기나긴 신호 연결음을 끝으로 넌 끝끝내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잖아. 정말 많이 아픈 걸까, 그게 아니라면 단지 내가 보기 싫어진 걸까. 어느 쪽이든 싫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잠 들어서 받질 못했어, 미안해 츳키]_야마구치

 [할 얘기 있는데 너희 집으로 가도 돼?]_야마구치

 연락이 온 것은 저녁이 되어서였다. 두 번째가 아니라 다행이야. 라고 생각하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었지만, 야마구치의 문자 두 줄이 충분히 안도감을 주었다. 신이 이토록 한심한 나를 가엾게 여겨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일까. 도저히 그 이상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다. 뭐라도 해 보는 편이 낫잖아. 그걸 위해 그동안 쿠로오상을 만났던 것이고, 결국 결정을 내리는 것은 나야.

 ‘켄마는 내가 배구를 하는 이유야. 네게도 그런 거잖아, 딸기군이.’

 ‘그래.’ 짧은 답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어. 괜히 늘 집에서 입던 면티를 새것으로 갈아입고 혹시라도 네가 들어올까 방 청소도 다시 했어. 형 도움으로 감기에 좋다는 유자차도 끓여놨어. 너만 오면 돼. 이런 거 전혀 나답지 않은데, 사람이란게 강한 동기가 있으면 변하기도 한다잖아. 떨리고 긴장이 되는데, 네가 기다려지는데, 무서워. 무섭다. 모두 알아버린 네 반응이 어떨까 두려워. 널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봐.

 초인종이 울렸다. 급하게 문을 열었다. 추워서인지, 감기탓인지 붉은 얼굴 탓에 ‘딸기군’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목 뒤가 화끈거렸다. 심장이 펌프질을 시작했고, 그에 맞춰 호흡이 빨라졌다. 더 있으면 귀라던가, 얼굴이라던가 야마구치처럼 빨갛게 변할 것 같았다. 음이 엇나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말을 뱉었다.

 “빨리 안 들어오고 뭐해?

 “저, 츳키-”

 “감기잖아, 볼이 빨개.”

 얼굴이 일그러져서, 그 날 같은 표정을 지어보여서 가슴이 철렁했어. 정말 이대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네가 울먹여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듯 위태로운 모습으로 서서 무언가를 간신히 참아대며 입을 열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물어도 돼? 그 눈물의 의미가 뭐야. 너는 뭐가 그렇게 무섭고 두려운 거야.

“좋은 사람 만나서 다행이다. ”

 ‘딸기군이 너를 좋아하더라도?’ 그 말이 왜 이 타이밍에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그저 그 한마디가 몇번이고 귓가에 맴돌았다. 야마구치의 눈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야마구치가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들썩이는 어깨를 보면서 무슨 행동을 해야할지 몰랐다. 예상이라던가, 상상과 전혀 다른 전개에 벙쪄있었다.

“네코마의 주장이라면, 정말 멋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 쯤 되어야 츳키랑 어울리니까.
난 정말로 잘 됐다고 생각해. 축하해 츳키―”

“야마구치.”

 나의 부름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억세게 깨문 입술에 상처가 생길 것 같았다. 이런 것은 정말 이상하다. 사고회로가 정지하고 내가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르는 상태. 한참을 몸을 움직여 그에게 다가가서야, 우리가 너무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무슨 생각으로 네게 입을 맞춘 건지는 모르겠어. 놀란 건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멈춰진 네 모습이 조금은 우스웠어.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알 수 있어. 이 두근거림은 나만의 것이 아니야. 잡아도 될까. 네 손을 잡아도 괜찮을까.

 “츠,츠츠츳키― 저기, 이건…!”

 “시끄러워, 야마구치. 들어왔다가 가.”

 야마구치의 손목을 잡았다. 귓바퀴가, 온 몸이 화끈거리는 기분이었다.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 건 아닐까 불규칙한 호흡에 걷는 것도 힘들었다. 손목 너머로 느껴지는 야마구치의 나만큼이나 불규칙하고 가쁜 것 같았다. 늘상 함께있었는데 처음 만났던 날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두근거렸다.

 “나 아픈 거 같아, 츳키!”

 “감기면서 밤중에 돌아다니고 그러는데 안 아픈 쪽이 이상한 거지.”

 나는 이런데, 이런 상황에서 하는 말이 ‘나 아픈 거 같아, 츳키’? 나, 참 그러니까 아프면 집에서 쉴 것이지 귀찮게. 알맞게 식은 차를 컵에 담아서 건넸다. 받아든 표정이 잔뜩 들떠, 나까지 붕 뜨는 거 같았다. 이런 거 정말 귀찮고 짜증나는데, 너라면 나쁘지 않아. 나도 너와 같아, 야마구치.

 

+)

 야마구치 타다시. 작은 체격에 주근깨 투성이, 전혀 귀엽지 않은 얼굴. 나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뭐, 다른 사람이라고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굳이 꼬집어 말해 첫 눈에 반한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그 쪽이 이상하지 않을까. 고작 초등학생이 누군가를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지다니, 그것도 동급생의 남자아이를. 어쩌면 나는 애초부터 이상한 놈이었을지도.

 야마구치, 네 기억 속 그 날은 내가 노리고는 들어간 거라고. 너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그냥 한 번쯤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보고 싶어서 대충 아무 말이나 내뱉은 거라고. 절대 멋있지 않았어, 너의 영웅도 아니야. 그래도 그 날, 망설이지 않고 너를 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야마구치.˝

˝응, 츳키―!˝

 아마 너보다 내 쪽이 훨씬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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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츠키야마] 나와 같아. 上

연성질/안녕큐 2016. 2. 6. 03:58

 친구가 있다. 친구랄까, 항상 내가 곁에 붙어 말을 시키는 것이 고작이지만 적어도 나를 내버려둔다거나 무시하지는 않으니까 친구라고 말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키도 크고 인기가 많아, 항상 인상을 쓰고 있다.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것도 모르고 다들 츳키의 주변을 서성이며 소리를 지른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는 쉽게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가만히 있지만, 내게는 시끄럽다며 곧잘 주의를 준다. 우리는 어쩌면 꽤친한 사이일지도 모른다. 

 

“츠키시마, 집 가자!

 

아, 오늘은 안돼.

 

 요즘 들어 부쩍 어디론가 사라지는 거 알아? 이전에도 그런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자주인 것도 처음이고 어디에 다녀온 건지도 도저히 말 안해주고. 서운? 서운한 것일까. 내게 비밀이 생겨서? 그러니까 이전에도 내게 뭐든 털어놓는 사람은 아니었잖아. 그래. 그러고보니 아는 것도 얼마 없어. 형에 관련된 일이라던가, 좋아하는 음식이 쇼트케이크라던가 하는 일 말고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잖아. 

 

“돌아가야지, 그만.”

 

 초등학교 일이 떠올랐어. 날 도와주려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 날의 츠키시마는 오늘까지도 내게 영웅과 다름없지. 존경하는 사람. 멋있는 사람. 항상 곁에 있고 싶었어. 나는 항상 츠키시마의 옆에 있고 싶었다고. 귀찮아한 거 알아, 시끄럽게 굴어서 미안해. 츠키시마는 나와 다르다는 것 쯤은 나도 알고 있는데 말이야.

 

“이게 뭐야….

 

 소꿉친구. 일방적인 관계라 내게도 어울리는 단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소꿉친구를 좋아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인 것 같아. 네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나는 이해해줘야 하는 거잖아. 그래야 네 곁에 있을 수 있겠지? 난 괜찮아. 난 정말로 괜찮다고. 나쁠리 없잖아. 츠키시마 네게 좋은 사람이 생긴 건데. 정말로, 정말로 괜찮지 않아. 괜찮지 않아. 츠키시마의 곁에 항상 있었던 것은 난데,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왜 그가 있는 거야? 츳키 대답해줘. 나는 네게 뭐였어?

 

 답 없는 물음이 떠돌기를 한참.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그래서 츳키의 뒤를 따랐어. 어쩔 수 없잖아.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 일이었어. 조금 후회스러워. 내가 츠키시만큼 이성적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이 장면을 보지 않아도 됐겠지? 네코마의 주장을 특별히 여긴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어. 그런데 나에게 비밀로 했던 일들이 고작 그를 만나기 위해서 였던 거야? 어째서? 내가 말하면 츳키가 이곳에 오지 못하도록 막을까봐? 그럴리가 없지. 그냥 귀찮아서 일 거야. 나는 츠키시마에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닌 걸. 츠키시마와 나는 단 한 순간도 같았던 적이 없었던 거야.

 

  멀리서 보였다. 다가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네코마의 주장이 츠키시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츳키는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운 듯 안경을 고쳐 올렸다. 평소의 표정과는 사뭇 달랐다. 여전히 미간이 잔뜩 좁혀진 화난 인상이지만 어딘가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본 적 없는 모습이다. 내게는 없는 츠키시마다. 이 거리에서만 볼 수 있는 츳키다. 욕심이 났다. 한 걸음을 내딛었다. 금세 들켜버릴텐데, 나는 무엇을 위해서인지 자꾸만 앞을 향하려 했다. 조금만 더 가까이에서 그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나는 그를 포기할 수 있을지도 몰라.

 

“야마구치…?

 

 처음으로 네 입에서 나온 나의 이름이 달갑지 않았어.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어. 맞아, 난 겁쟁이라서 도망쳤어. 모두 알아버린 나에게 츠키시마가 무슨 태도를 보일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었어. 나는 말야, 아직도 츠키시마에 대해서 잘 모르겠어. 그런데도 너를 잃고싶지 않아, 츳키. 조금만 기다려줘. 정말, 아주 조금이면 돼. 모두 금방 끝날 거야. 정말 금방. 이런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나를 밀어내지 말아줘. 나는 네가 좋아.

 

 미안해, 츠키시마. 나는 겁쟁이인 주제에 욕심이 많아서 너를 포기할 수가 없어. 그치만 네가 없는 건 죽어도 싫어. 그것만큼은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지금 이대로도 충분해. 예쁜 여학생들에게 츠키시마의 우체통 정도로 취급 받지만, 내가 츳키와 친하다는 것 같아서 기분 좋아. 그러니까 츠키시마, 내가 널 포기할게. 친구로라도 옆에 있어줘.

 

 아침이 밝았다. 학교에 가야 하는데, 어쩐지 몸이 무거웠다. 몸이 불덩이 같았다. 오늘 꼭 츠키시마를 봐야 하는데,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학교를 빠졌다. 츳키가 나의 걱정을 해주어으면 좋게다는 생각을 했다. 포기라니, 어쩌면 나는 평생 짝사랑만 하다가 죽을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온몸이 쑤시고 아픈 와중에도 바보같은 생각이 떠올라 웃었다. 그러다 눈을 감았고, 잠이 들었다. 일어난 것은 저녁이 다 된 시간, 그리고 츠키시마로 부터의 한 통의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

 

[잠 들어서 받질 못했어, 미안해 츳키]

[할 얘기 있는데 너희 집으로 가도 돼?]

 

 답은 없었지만 이미 츠키시마의 집을 향하고 있었다. 아직 조금 어지럽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츠키시마와 어색하게 되어버릴지도 몰라 불안해서 도저히 가만히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항상 걷던 길이 오늘따라 낯설었다. 더디고 멀게 느껴졌다. 다짐이 꺾이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나는 어느새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지금은 조금 곤란하다는 츳키의 답장이 오기를.

 

[그래.]_츳키

 

 신은 어째서 항상 나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걸까. 나 너무 무서워, 츠키시마. 널 보러 가는 길이 이렇게나 무겁고 슬프게 될 줄 몰랐어. 그런데 돌아갈 수 있을리가 없잖아. 오늘이 아니면 말하지 못할텐데, 그렇다면 츠키시마도, 나도 계속 그 일을 신경 쓸테니까. 그래도 츳키는 걱정하지 마. 나는 항상 네 편인 걸-

 

 츠키시마의 집 앞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누르기 이전 망설이던 손가락이 꿈틀거리는데 문이 열렸다. 얇은 면티 차림의 츳키가 나를 바라봤다. 무심한 표정 뒤로 그 날의 얼굴이 겹쳐졌다. 나에게도 보여준다면 좋을텐데.

 

“빨리 안 들어오고 뭐해?

 

“저, 츳키-

 

“감기잖아. 볼이 빨개.

 

 이전과 같은 다정한 한 마디에 울어버릴 뻔 했다. 정확히는 이미 가득 차오른 눈물을 애써 참아보려고 했다. 귀찮아 할 거야, 츠키시마가 나를 싫어하게 될 거야. 꾸역꾸역 넘어오는 울음을 참으며 말했다.

 

“좋은 사람 만나서 다행이다.

 

 어젯밤 잠들기 이전에 여러번 연습했지만, 역시나 실전에서는 어려웠다. 위기의 순간 핀치서버로 투입되었던 그 날만큼이나 떨리고 무서웠다. 게다가 오늘은 감정이라는 복병까지도 나를 방해했다. ―결국 눈물은 두어방울 흘러버렸다만, 묶어놓았던 것들이 터지는 것을 겨우 막았다.

 

“네코마의 주장이라면, 정말 멋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 쯤 되어야 츳키랑 어울리니까.

난 정말로 잘 됐다고 생각해. 축하해 츳키―

 

“야마구치.

 들려온 음성을 따라 시선을 올렸다. 물기가 가득차 시야가 불편했지만, 더는 츳키를 성가시게 하고싶지 않아서 눈을 부릅 뜨며 참았다. 그리고 가볍게 츠키시마의 입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어라…? 츳키의 입이?

 

 고개를 든 이후의 기억은 흐릿해. 아마도 나의 상상이 더해진 꿈이 아닐까 싶어. 가끔, 현실과 도저히 구분하기 어려운 생생한 꿈을 꾸기도 하니까. 적어도 츠키시마가 내게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은 꿈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잖아. 그렇지? 그런거지, 츳키? 이건 꿈일 거야. 꿈….

 

“츠,츠츠츳키― 저기, 이건…!

 

“시끄러워, 야마구치. 들어왔다가 가.

 

 깨어날까봐 불안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눈을 뜨면 눈 앞에 익숙한 천장이 보일까봐 걱정되었다. 그러나 츠키시마가 잡아챈 나의 손목이, 그곳으로 느껴지는 따뜻한 열기가 이곳에 현실임을 이야기해 주었다. 붉어진 귓바퀴. 반대쪽을 향한 눈동자. 수줍어 보이는 그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다. 조금 보태자면, 그 날의 츠키시마와 굉장히 비슷했다.

 

“나 아픈 거 같아, 츳키!

 

“감기면서 밤 중에 돌아다니고 그러는데 안 아픈 쪽이 이상한 거지.

 

 잔뜩 인상 쓴 표정으로 건네준 컵을 받아들었다. 그 안에 가득 담긴 유자향이 달콤했다. 그의 기분도 이럴까. 그렇다면 완전히 나와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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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다이치] 잔재(殘在)

연성질/안녕큐 2016. 2. 6. 01:11

*카라스노가 전국 준결승에서 네코마에게 패했다는 전제의 이야기 입니다.

 30점이 넘어섰다. 목구멍에서 피맛이 나는 것 같았다. 기진맥진한 정신을 겨우 붙잡고 공을 응시했다. 힘겹게 살려낸 공격이 막히고, 또 다시 리시브에 매달렸다. 공이 날아온다. 지금 발을 내딛어도 늦을지 몰라. 0.1초. 그제서야 몸을 날렸다.

카라스노 敗

 바닥에 내팽개쳐진 공이 눈 앞으로 튀어올랐다. 고작 한 걸음, 1cm 앞에서 울려온 소리가 고막을 강타했다. 턱이 얼얼한 것이 바닥에 부딪힌 것 같다. 그러나 통증은 오히려 귓가에서 느껴졌다. 숨이 막혔다. 강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속이 울렁거렸다. 휘슬이 울렸다. ‘전국 우승’. 거대한 벽이 조그만 글자 사이를 가로막았다. 3년간 바라보며 달려왔던 정상이 한순간 사라졌다. 신기루 였을까나. 모두 헛된 시간이었어. 그렇게 나의 배구는 끝이 났다.

“카라스노 출신?”

“아, 네.”

“우와. 카라스노라면 그 배구강호? 대단하잖아, 다이치!”

 웃었다. 억지 웃음은 아니었다. 고작 몇 주 전의 그 날이 영화처럼 느껴져 우스웠다. 눈 앞에 떨어진 공이 여전히 생생하다. 바닥에 부딪혀 얼얼했던 턱의 감촉이 남아있다. 그러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고, 결말은 배드. 멍청한 주인공이 망설인 시간이 결국 실패를 빚은 영화.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 난 그것이 두려워 도망쳤다. 다시는 코트 위에 설 수 없겠지. 지쳐서 망설인 0.1초의 대가이다.

[다이치 잘 지내? 카라스노 갈 건데 같이 갈래?]_스가
[다이치상 연습 도와주러 오세요!]_노야

[바빠서, 미안. 나중에 함께 하자!]

 바쁘다니 뭐가. 배구보다 중요한 일이 뭐가 있는데. 그러나 더는 패배의 무게감이 견딜 수 없이 싫었다. 벗어나서 좋아. 진심으로.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모두를 비워내려고 노력했다. 잊기위해 뭐든 열심히 했다. 날씨가 후덥지근해졌을 때 즈음, 마음이 편해졌다. 그랬다고 여겼다. 과제를 마치고 뒤늦게 눈을 붙였다. 쉬고 싶었다. 눈이 떠진 시간은 5시.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뭉쳐진 잔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목구멍에 먼지가 잔뜩 낀 듯, 매캐한 느낌이 들었다. 이를 내치기위해 들이킨 물이 씁쓸하다. 인터하이가 다가왔다. 카라스노는 정신없이 바쁘겠지. 더 이상은 나와 관계 없지만.

[오늘 3시에 네코마와 연습 있어요. 시간 있으면 와주세요.]_치카라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한참을 그 문자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네코마.’ 그 한 마디에 불타올랐던 시간도 있었다. 1년 전, 타케다 선생님의 노력으로 겨우 닿았던 인연이 카라스노를 전국까지 이끌었다. 그러나 그 뿐이다. 우리는 네코마에게 패했고, 까마귀는 무대 위에 남지 못했다.

“어라? 사와무라? 이 학교 였어?”

“... 쿠로오?”

“이야, 이거 대단한 우연인데. 운명인가?”

 그의 실 없는 소리에 웃음지었다. 급하게 끈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불편해. 나는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보란듯 여전히 배구를 해왔다. 불편한데. 그 날의 기억이 나를 괴롭혔다. 더 이상 공을 만질 수 없었다. 코트에 설 수 없었다. 카라스노의 그들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근데 말야, 카라스노의 주장.”

 네코마를 향한 원망? 모든 원망은 나를 향했다. 쉬고 싶었다. 그 생각이 카라스노를 경기장 밖으로 내쫓았다. 나의 실수다. 내게는 더 이상 배구를 할 자격이 없어. 그런데, 그게 분명한데,

“안 갈 거야?”

하고 싶어. 코트 위에서 이전처럼 그들과 위를 보고 싶어.

_

 무겁게 문을 열어젖혔다. 이리저리 튕겨진 공. 체육관을 가득 메운 기합. 1년의 공백이 우스울 정도로 익숙했다. 본래 나의 것인양 그 소리들이 나를 반겼다. 꼭 그런 것만 같았다.

“사와무라 선배?”

“우왓, 진짜잖아! 다이치상!”

“다이치, 늦었잖아!”

 바보 같아. 헛된 시간일리 없잖아. 그만둘 수 있을리가 없지. 난 오직 배구 뿐이었는 걸.

“연습 좀 끼워줘. 오래 쉬었더니 몸이 근질거리네-”

 카라스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더 이상 이들과 함께 ‘다음이 없는 시합’을 뛰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그 쪽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나는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다.

“그거면 충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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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카라스노] 오프레ver.

연성질/안녕큐 2016. 2. 5. 03:07

 

컷!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다이치 ; 다들 저 쪽에서 수건과 물 사용하시면 됩니다! 다음 촬영도 잘 부탁 드립니다!

아사히 ; 아, 물! 저,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물.. 그니까, 네! (막내)

니시노야 ; 그런 것 쯤은 스스로 하게 둬, 아사히상.

(캐릭터=본인성격)

 

스가와라 ; (찰칵) 오늘도 촬영 끝! 힘든 촬영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카라스노 #하이큐

타나카 ; 열정의 #하이큐 오늘도 본방사수 필수! 열일하는 타나카의 미모

 

관람도 필수!

(SNS 업데이트형)

 

히나타 ; 제 팬들이 보내준 선물들 받아가세요!

츠키시마 ; 히나타네 팬들은 늘상 열심히네. 내 팬들은 뭐하고 있으려나

카게야마 ; 호오, 굉장히 예쁜 손목 아대! 우리 팬들한테 자랑해야지!

(아이돌형)

 

나리타 ; 아, 덥네, 더워. 에어컨 없나?

키노시타 ; 아사히 물 좀 가져다 줘!

다이치 ; 그러니까 그런 것들은 스스로…! / 아사히 ; 가, 가요!

(알고보니 대스타형)

 

엔노시타 ; 다들 스케줄 어때? 오늘 회식하자, 회식!

(오락반장형)

 

야마구치 ; 저, 저는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알고보니 대스타형2)

 

야치 ; 저기 야마구치군! 다음 대본 받아가야지!

시미즈 ; 다이치 남은 수건 창고에 넣는 것 좀 도와줘.

(뼛속까지 매니저형)

 

우카이 ; 핫하 늦게 왔더니 벌써 촬영이 끝나버렸네?

타케다 ; 그러게요. 구경하려고 나름 빨리 오려한 건데.

(신혼부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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