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스가와라] 백색 까마귀

연성질/안녕큐 2016. 2. 11. 20:49

*카라스노가 전국 준결승에서 네코마에게 패했다는 전제의 이야기 입니다.

*스토리와 깊은 관련은 없지만, 약 스포가 있습니다. 싫으신 분은 화면을 꺼주시면 됩니다.

*캐붕과 스가의 과거 날조가 있습니다.

 

 휘슬이 울렸다. 카라스노에서의 배구는 이제 끝이다. 어쨌거나, 우리가 져버렸지만 내가 아직 남아있는 시점에 쓰레기장 결전 이란 것을 만들어내서 다행이다. 코트에 남아있고 싶어, 아쉬움이 컸지만 후회가 남는 3년은 아니었다. 어디선가 당당히 말할 수 있잖아, 나도 배구를 했다고. 꿈이, 청춘이 있는 코트에 나도 함께 서 있었다고.

 

 “자네, 입부 할건가?”

 

 “예, 예? 아니, 저….”

 

 “은발미남이라니, 우리 배구부에 꼭 필요한 마스코트라구요. 절대로 설득하세요!”

 

 대학 배구부에 들 생각은 없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으니 추천서가 올 일도 없었고, 애초에 배구가 진로는 아니었으니까. 꾸준히 공부를 해왔고, 가끔 지칠 때 숨통을 트이게 해준 취미생활이었다. 다이치를, 아사히를 만나서 단순한 취미 이상의 의미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카라스노를 졸업한 시점에서 내게 배구는 그저 과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어쩌면, 배구에 미련을 갖고 있었을지도. 대학 배구부 코치님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을 때, 정말 날 듯이 기뻤다. 두근거렸다. 카라스노에 입학했던 그 날 처럼.

 

 “얼레? 상쾌군 이 학교였어? 것보다 배구 계속 하는 거야?”

 

 “그게 이렇게 되어버렸네, 하하.” 

 

“안됐다, 그런데. 언제나 벤치조네, 상쾌군은.”

 

 작년에는 토비오쨩에게, 올해에는 내게 밀려서. 틀린 말은 아니지. 나는 오이카와나 카게야마 보다는 실력이 떨어지는 세터니까. 그렇지만 이대로 부주전에 남아있을 생각은 없다고. 게다가, 주전이 아니라도 관계없어. 괜찮은 걸, 여전히 배구 할 수 있다면.

 

“…여전히 열받은 포지티브네.”

 

_

 

“저, 싱크로라던가, 핀치서버, 투세터라면 경험이 꽤 있어서 할 수 있습니다.”

 

“확실히 스가와라는 공격의 새로운 수가 되는 구만, 그래. 과연 카라스노 출신이야.

 

“그러게. 코시쨩은 늘 착실한 세터의 느낌이라 카라스노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는데, 역시 잡식고교는 달라.”

 

 나는 멈춰있었다. 갑작스레 밀려 온 재능덩어리들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머물러 있었다. 다들 새로운 것들을 연마하며 성장 해 나가는데  나는 도저히 뭘 해야할 지 몰랐다.  ‘스가와라상, 토스 올리는 법 가르쳐주세요.’ ―도쿄의 녀석들을 만나서 진심으로 다행이야. 니시노야들이 나와 함께 호흡을 맞춰주어서 진심으로 다행이야. 니시노야의 토스로 보란듯 성공해낸 싱크로 공격의 감촉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곳에서는 나도 새로운 걸 할 수 있었어. 당연한 거라고.

“―잡식 강호죠, 카라스노는.”

 

 자랑스럽게 웃었다. 한 때 나 자신조차 카라스노에 어울리는가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 백색 까마귀. 그러나 나 역시 결국은 까마귀인 걸. 1학년에게 주전을 빼앗겼던 카라스노의 착실한 세터였기에, 늘 그렇게 내 자리를 지켜왔기에 코트에 설 기회도, 새로운 기술도 생긴 거야. 카라스노가 나의 배구야. 내가 미련을 갖고 있던 건 아무래도―

 

[엔노시타, 오늘 카라스노 놀러 가도 돼?]

 

 어리숙한 까마귀들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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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다이치] 잔재(殘在)

연성질/안녕큐 2016. 2. 6. 01:11

*카라스노가 전국 준결승에서 네코마에게 패했다는 전제의 이야기 입니다.

 30점이 넘어섰다. 목구멍에서 피맛이 나는 것 같았다. 기진맥진한 정신을 겨우 붙잡고 공을 응시했다. 힘겹게 살려낸 공격이 막히고, 또 다시 리시브에 매달렸다. 공이 날아온다. 지금 발을 내딛어도 늦을지 몰라. 0.1초. 그제서야 몸을 날렸다.

카라스노 敗

 바닥에 내팽개쳐진 공이 눈 앞으로 튀어올랐다. 고작 한 걸음, 1cm 앞에서 울려온 소리가 고막을 강타했다. 턱이 얼얼한 것이 바닥에 부딪힌 것 같다. 그러나 통증은 오히려 귓가에서 느껴졌다. 숨이 막혔다. 강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속이 울렁거렸다. 휘슬이 울렸다. ‘전국 우승’. 거대한 벽이 조그만 글자 사이를 가로막았다. 3년간 바라보며 달려왔던 정상이 한순간 사라졌다. 신기루 였을까나. 모두 헛된 시간이었어. 그렇게 나의 배구는 끝이 났다.

“카라스노 출신?”

“아, 네.”

“우와. 카라스노라면 그 배구강호? 대단하잖아, 다이치!”

 웃었다. 억지 웃음은 아니었다. 고작 몇 주 전의 그 날이 영화처럼 느껴져 우스웠다. 눈 앞에 떨어진 공이 여전히 생생하다. 바닥에 부딪혀 얼얼했던 턱의 감촉이 남아있다. 그러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고, 결말은 배드. 멍청한 주인공이 망설인 시간이 결국 실패를 빚은 영화.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 난 그것이 두려워 도망쳤다. 다시는 코트 위에 설 수 없겠지. 지쳐서 망설인 0.1초의 대가이다.

[다이치 잘 지내? 카라스노 갈 건데 같이 갈래?]_스가
[다이치상 연습 도와주러 오세요!]_노야

[바빠서, 미안. 나중에 함께 하자!]

 바쁘다니 뭐가. 배구보다 중요한 일이 뭐가 있는데. 그러나 더는 패배의 무게감이 견딜 수 없이 싫었다. 벗어나서 좋아. 진심으로.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모두를 비워내려고 노력했다. 잊기위해 뭐든 열심히 했다. 날씨가 후덥지근해졌을 때 즈음, 마음이 편해졌다. 그랬다고 여겼다. 과제를 마치고 뒤늦게 눈을 붙였다. 쉬고 싶었다. 눈이 떠진 시간은 5시.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뭉쳐진 잔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목구멍에 먼지가 잔뜩 낀 듯, 매캐한 느낌이 들었다. 이를 내치기위해 들이킨 물이 씁쓸하다. 인터하이가 다가왔다. 카라스노는 정신없이 바쁘겠지. 더 이상은 나와 관계 없지만.

[오늘 3시에 네코마와 연습 있어요. 시간 있으면 와주세요.]_치카라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한참을 그 문자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네코마.’ 그 한 마디에 불타올랐던 시간도 있었다. 1년 전, 타케다 선생님의 노력으로 겨우 닿았던 인연이 카라스노를 전국까지 이끌었다. 그러나 그 뿐이다. 우리는 네코마에게 패했고, 까마귀는 무대 위에 남지 못했다.

“어라? 사와무라? 이 학교 였어?”

“... 쿠로오?”

“이야, 이거 대단한 우연인데. 운명인가?”

 그의 실 없는 소리에 웃음지었다. 급하게 끈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불편해. 나는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보란듯 여전히 배구를 해왔다. 불편한데. 그 날의 기억이 나를 괴롭혔다. 더 이상 공을 만질 수 없었다. 코트에 설 수 없었다. 카라스노의 그들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근데 말야, 카라스노의 주장.”

 네코마를 향한 원망? 모든 원망은 나를 향했다. 쉬고 싶었다. 그 생각이 카라스노를 경기장 밖으로 내쫓았다. 나의 실수다. 내게는 더 이상 배구를 할 자격이 없어. 그런데, 그게 분명한데,

“안 갈 거야?”

하고 싶어. 코트 위에서 이전처럼 그들과 위를 보고 싶어.

_

 무겁게 문을 열어젖혔다. 이리저리 튕겨진 공. 체육관을 가득 메운 기합. 1년의 공백이 우스울 정도로 익숙했다. 본래 나의 것인양 그 소리들이 나를 반겼다. 꼭 그런 것만 같았다.

“사와무라 선배?”

“우왓, 진짜잖아! 다이치상!”

“다이치, 늦었잖아!”

 바보 같아. 헛된 시간일리 없잖아. 그만둘 수 있을리가 없지. 난 오직 배구 뿐이었는 걸.

“연습 좀 끼워줘. 오래 쉬었더니 몸이 근질거리네-”

 카라스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더 이상 이들과 함께 ‘다음이 없는 시합’을 뛰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그 쪽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나는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다.

“그거면 충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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