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아오야치] 발렌타인데이 뒷북글

연성질/안녕큐 2016. 2. 15. 20:32
 봉사활동에 다니게 되었다. 후쿠로다니의 엄청나게 미인인 매니저씨가 소개시켜준 곳인데, 도쿄에서 하는 일이라 매주 일요일마다 신칸센을 타게 되었다. 그렇게 예쁜 사람과 함께 봉사활동이라니...! 나, 이번엔 정말 암살 당할지도 몰라. 긴장하며 두리번거렸는데 아직까지는 수상하다던가 무서운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다행이야, 그치만 긴장을 늦춰서는 안돼!

 지하철 문이 열리고 어쩐지 하나 남은 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아서 달려가 앉아버렸다. 헤헤, 꽤 럭키일지도. 옆에서 달달한 밤 냄새가 나 돌아보았다. 크, 크다, 것보다 무서워..! 봄고 대회 때 본 적 있는, 다테 공업의 어마어마하게 커다랗고 무섭게 생긴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 살려주세요...!

 "과자."

 "으에, 에?"

 "과자 먹어도 된다."

 그 달콤한 냄새는 그가 손에 꼭 쥐고 있는 밤과자에서 나는 듯 했다. 다소 붉어진 얼굴로 내게 과자를 하나 내밀었다. 나, 나 또 사람을 얼굴만 보고 판단해버렸어! 벌 받을 거야!

 "감사합니다! 맛있어요!"

 그는 뻣뻣하게 굳은 목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 뭔가 또 실수했나? 어쩌지. 어떡하면 좋지? ―에?

 내 손 위로 아직 반이나 남은 과자봉지를 내려놓고는 벌떡 일어섰다. 큰 소리와 함께 머리를 부딪힌 것 같아서 괜찮은지 물으려고 했는데 급하게 나가는 바람에 아무 말도 못 했다. 그가 준 밤과자는 정말 달콤했다. 하얗고 상냥해.. 북극곰 같아.

_

 그 이후로, 봉사활동에 가는 날마다 커다랗고 상냥한 북극곰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매번 내 손에 밤과자를 쥐어주고는 급하게 내렸다. 이렇게 받기만 하면 안될테니까, 마지막 봉사활동에 가던 날 쿠키를 만들었다. 근데 사실 과자는 밤과자 이외에 안 먹는다던가.. 모양이 못생겨서 싫어한다던가.. 으아아 어떻게 건내주냐고!

 "저, 저기.."

 "아오네."

 "아! 네, 그, 아오네씨 매번 밤과자 주셔서 그러니까 이건 보답이라기엔 굉장히 못생기고 밤 맛이 나는 것도 아니고...!"

 "잘 먹겠다."

 우와. 받아줬어! 기뻐서 그런지 자꾸만 두근거려서 얼굴로 피가 몰렸다. 혀, 혈액순환 지나치게 잘 돼. 오늘은 차에서 내릴 때까지 화끈해진 볼을 매만지며 혈액순환에 대해 생각해야만 했다.

 _

 봉사가 끝난지 일주일이 지났다. 오늘은 무려 발렌타인 데이!  ―그렇다고 해서 내가 초콜릿을 받는 일은 없겠지만. 달콤한 것을 주고 받는 날인 만큼, 구름도, 하늘도, 태양도 달콤했다! 행복해!

 "얏짱 오늘 유난히 들떴네. 초콜릿 많이 받았어?"

 "전혀요!"
 
 "그렇다면 주고 싶은 사람이라도?"

 주고 싶은 사람?

 '과자 먹어도 된다.'

 왜인지 스가와라씨의 말을 듣자 북극곰씨.. 그니까 아오네씨가 생각 났다. 우와, 나 또 두근거려. 그 날 내 쿠키를 받아준게 아직도 기쁜 거야?

 "있구나? 늦으면 후회할 거라고~"

 "에이, 없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꾸만 아오네씨가 생각났다. 얼굴이 뜨끈뜨끈해지는 느낌. 왜 오늘같은 날 자꾸 아오네씨가 생각나는 거지? 오늘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인데.

 "허억. 나 혹시..!"

 "야치."

 "흐에엑! 아, 아오네씨!"

 여기 분명 카라스노 앞인데, 어째서 아오네씨가! 나 무의식 중에 다테공업 앞까지 와버린 거야? 그럴리가 없잖아, 저기 니시노야씨들도 있고! 이곳, 설마 공간의 경계라던가.. 여길 넘어가면 다테공업에 갈 수 있는 건가? 하하, 그럴리가 없지, 나도 참~ ... 그렇다면 아오네씨는 여기 왜 있는 거지?

 "초, 초콜릿이요?"

 "오늘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면 기뻐할 거라고 후타쿠치가 말했다. 지난 번에 기뻐서 오늘은 야치가 기뻤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알겠다. 이제야 알아버렸어. 나 어쩌면 엄청나게 둔할지도. 입가에 걸린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손 위에 올려진 초콜릿의 무게가, 실제로는 60g이 고작이겠지만, 대단히 무겁게 느껴졌다. 이거 진심이야. 정말, 진짜라고!

 "응! 엄청 기뻐요!"





+) 지나가던 모니와
"아, 아오네가 두 문장이나 말했어..!"(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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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쿠로츠키] 그 남자의 사정

연성질/안녕큐 2016. 2. 14. 03:30
*폰작업 저퀄, 캐붕 주의. 쿠로오 자존감 낮음 주의.
*쿠로오와 츠키시마는 여름합숙 때부터 사귀었다는 전재입니다.

 안경 쓴 까칠한 녀석이었다. 자존심이 강해 조금만 건드려도 자극할 수 있는 쉬운 타입이면서도, 어딘가 단단히 어긋나 금세 손을 놓아버렸다. 그 알 수 없는 건조함에 관심이 생겼다. 여름 합숙의 짧은 기간에 관심은 더욱 깊은 감정으로 변하였고, 내가 내민 손을 그는 조금 망설이더니 기꺼이 잡아주었다. 손에 가득 채워지는 그의 온기가 따뜻했다.

 처음에는, 맞잡은 나의 손마저 놓아버릴까봐 걱정했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그의 손을 붙잡은채 매달려야할지, 아프지 않게 보내주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들이 정말 쓸데 없는 걱정임을 알았다. 더욱 견고하게 조여오는 손가락 사이의 압박감이 적어도 나의 고백을 거절하지 못하여 사귀는 것은 아니라고 안심시켜주었다. 어른인척 구는 그가 이따금씩 내게 기대어 온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 그는, 항상 감추려하지만, 감정을 쉽게 들키는 타입이었다. 싸움도 없이, 단란한 연애였다. 츳키와의 연애는 매일이 행복했다. 나는 그 행복을 유지하기를 원했다.

 츳키는 고등학생, 나는 성인이다. 공부에 치이는 그와 돈에, 학점에 허덕이는 나는 서로에게 소홀해질지도 모른다. 나는 지레 겁을 먹었다. 어느 순간 그가 도쿄에 오는 것을 껄끄러워하면 어쩌지. 나와 만날 시간이 사라지면 어쩌지. 과제에, 알바에 밀려 더 이상 츳키와 시간을 맞출 수 없으면 어떡하지. 그저 나의 노파심이었다. 우리는 문제 없이 앞을 향했다. 다만, 그는 고집이 강했고, 나는 그런 그에 대한 걱정을 잊으려 저런 의미없는 생각을 되뇌었을 뿐이다. 나로인해 츠키시마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포기해버릴 까봐. 그렇게 된다면 내 쪽에서 그를 놓아줘야할테니까.

 츳키가 고3이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사귀는 중이다. 그는 공부할 시간을 버리며 나를 찾았고, 나는 이기적이게도 그런 그를 거절하지 못했다. 가끔은 밤을 새워 피곤한 눈을 하기도 했는데, 오늘치 일을 몰아서 끝내느라 그랬다고 대답했다. 사랑의 시작은 어슬프기에 위험하다. 그는 온전치 못한 마음을 내게 주려다 조금씩 망가지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결심했던 말들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던 거짓을 내뱉었다. 그 여름날, 얼음이 녹아도 짙어, 씁쓸하던 커피 앞에서.

 “벌써 2년째네, 우리 만난 거.”

 “그렇네요. 쿠로오씨랑 2년이나 만나게 될 줄이야.”

 “2년이나 됐으니까 이제 그만둬도 괜찮잖아? 오래 만났으니까.”

 2년이나 만났으니 헤어져도 좋다니. 우습지도 않은 말을 내뱉고는 일어섰다. 넘쳐 흐르던 감정은 그 작은 커피잔에 몰아넣고 모두 녹여냈으니 더는 신경쓸 것도 없다. 츳키는 뭐든 철저하니까 내가 없다면 더는 망가지는 일도 없을 것이고, 분명 금세 좋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은 성숙해진 것으로 진짜 사랑을 이룰 것이다. 나와의 연애는 그저 성장을 위한 연습 경기였으니까. 배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다음이 없다는 것, 정도일까.

 츳키가 보고 싶어지면, 욕심 내지 않은 자신을 탓했다. 가끔씩, 술에 취할 때 라던가, 모른 척 그에게 전화를 걸면 항상 꺼져있는 츳키의 핸드폰이 그를 대변해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너무 힘들어서, 나와의 이별이 못견디게 괴로워서 아프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들려오는 소식 속 그는 여전했다. 다행이야. 분명 그게 맞는데, 어쩐지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서운하긴 하네.

 오늘은 억지로 이끌려 나갔던 소개팅에서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고 누군가를 소개 받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하고는 멋있게 도망쳤다. 츳키와 헤어진 계절은 여름이었는데, 어느새 바닥에는 낙엽이 잔뜩 깔려있다. 그 날 이후로 그 카페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커피에는 입도 댈 수 없었다. 그를 잊기위해 모든 추억을 돌고 돌아 피했다만, 언제나 가장 최악의 순간에 마주쳐 나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오늘, 바로 지금처럼.

 “쿠로오씨.”

 머리가 멈추어 버렸다. 가끔 시험지를 보고서 이랬던 경험이 몇 번 있지만, 오늘은 유난히 당황스러웠다. 심장 소리에 묻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조금 마른, 그렇지만 여전히 심술궂은 그 얼굴이 반가워 울음이 터져나올 뻔 했다. 아, 츠키시마. 바보 같은 호명이 내 최선의 대답이었다. 성대가 제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을 간신히 꺼내어 내뱉은 말이니까.

 “잘 지내시는 것 같네요. 그럼 가볼게요.”

 츳키가 너무나도 의연해서, 당황해서 머리까지 멈추었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눈 밑이 따끔거리고, 목구멍이 꽉 막혀 아팠다. 그가 걸어온 길을 따라 반대편으로 멀어졌다. 돌아보지 않는다. 미련 갖지 않는다. 이 끔찍한 카페 앞을 지나치며 나는 절대 울지 않는다.

 아마 내가 겪어본 상황들의 안에서, 후회하지 않는 선택은 없다. 어떤 것이든 반드시 끝에 다다르면 가슴을 치고 원망할 것이다. 그러나 그 옛날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이 선택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다른 어떤 선택들 보다 이것이 베스트란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스치듯 지나쳐 사라진 것들이 알게 모르게 흔적을 남기고, 후회는 그저 눈에 띄는 한 종류일 뿐이다. 후회가 남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한 때 마음을 함께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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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쿠로츠키] 낙홍(落紅)

연성질/안녕큐 2016. 2. 12. 00:38

*폰작업 저퀄, 캐붕 주의. 낙엽에 츠키시마의 첫사랑을 이입해주세요!
*쿠로오와 츠키시마는 여름합숙 때부터 사귀었다는 전재입니다!

 “벌써 2년째네, 우리 만난 거.”

 “그렇네요. 쿠로오씨랑 2년이나 만나게 될 줄이야.”

 “2년이나 됐으니까 이제 그만둬도 괜찮잖아? 오래 만났으니까.”

그의 이별선고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는 표현은 확실히 과장이었을까. 오히려 모두가 이상하리만치 정상적이다. 쿠로오씨가 먼저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다소 놀랐지만, 그게 전부. 고작 고교시절의 연애를 가지고 슬퍼한다거나 미련을 갖는 쪽이 오히려 웃긴 것이다. 언제라도 준비했다는 듯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나가고, 나는 홀로 남아 쇼트케이크를 먹었다.

 “... 맛 없네.”

 모두 내버려둔 채 나와버렸다. 그 카페에 남은 것은 먹다 만 쇼트케이크 이외에도 많았지만, 나는 모른척 고개를 돌렸다. 마음을 가볍게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랬기에 이것, 저것을 챙겨나올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핸드폰을 들었다. 그렇게 싫다고 거부하던 배경의 쿠로오씨를 어쩐지 나는 바꿀 수가 없었다. 전원 버튼을 길게 눌러 핸드폰을 꺼버렸다. 심심할 때, 쿠로오씨가 생각날 때 즈음이면 어김없이 울리던 것이 잠잠할 테니까. 사람도 이 같다면 좋을텐데.

 정말 금세 잊혀졌다. 고3이니까 공부라던가, 마지막이 될 배구에 집중해서일까. 아니, 어쩌면 애초에 쉽게 지나갈 사람이었을지도. 그랬으니까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버린 거겠지.

 “츳키! 오늘은 네코마 주장 만나러 안 가?”

 “아, 헤어졌어.”

 “헉. 미, 미안!”

 “괜찮아, 별 거 아닌데.”

 “별 거 아닐리 없잖아, 2년이나 만났는데.”

 “괜찮다니까?”

 “괜찮다면 왜 아직 핸드폰 꺼 놓은 건데?”

 걸음이 우뚝 멈춰섰다. 야마구치의 말 때문이 아니라 그저 핸드폰에 무언가 온 것 같아서. 꺼내려고 손을 움직이다 그만두었다. 여전히 꺼져있는 핸드폰이 울릴리가 없잖아. 스스로 전원을 꺼 놓은 주제에 도대체 무슨 연락을 기대하는 거야.

 “별 거 아니라면 아닌 거잖아.”

 “... 응, 미안해, 츳키..”

 야마구치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맞는 이야기만 했는 걸. 그렇지만 어딘가 잔뜩 꼬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전히 핸드폰을 꺼 놓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심한 녀석이다. 켜버린다면 곧바로 그에게 전화해서 왜 내게 헤어지자고 했는지 따질지도 모른다. 그걸 물어서 쿠로오씨에게 어떤 것이든 답을 듣는다면 어쩔건데. 다음을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은 해서는 안돼. 나는 그 모든 리스크를 감수할 자신이 없으니까.

 사랑에 빠진 순간, 인간은 변한다. 지금껏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푸르던 나뭇잎이 붉게 물든 시점에서야 내가 사랑에 빠졌음을 깨달았고, 우리가 늘 갖고 있던 온도차는 한 쪽이 달아오르면 다른 한 쪽은 식어버리는 것이었다. 비로소 마음을 깨달은 때는 너무 늦어버렸다. 그리고 단풍은 떨어질 차례만을 기다린다.

 “쿠로오씨.”

 “아.. 츠키시마.”

 츳키도, 케이도, 안경군도 아닌 츠키시마. 누구에게나 불려지던 나의 성이 이토록 듣기 싫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는 운동을 열심히 하는지, 살이 조금 빠진 것 같았고 늘 하고있는 뻗친 새집머리가 아닌 단정한 꼴을 하고 있었다. 여자라도 만나려는 듯이. 난 지금 누구에게 이렇게까지 화가 난 거지? 뭐가 이렇게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건데. 도대체 왜야.

 “잘 지내시는 것 같네요. 그럼 가볼게요.”

 아마도 번호가 바뀔 때까지 핸드폰을 켜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 없으니까.

 바람이 불었다. 나뭇가지에 붙어 흔들리던 잎들이 그에 맞추어 떨어졌다. 개중에는 새빨갛게 물들어진 몸을 잔뜩 웅크린 것도 있었다. 바스락- 작은 소리에 부서져 흩어지는 그런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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